[Hormone as Protocol] 1화 - 질문
밥을 먹고 혈당이 오른다. 그러면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한다. 인슐린은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면서 근육세포, 지방세포, 간세포에게 포도당을 받아들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잠깐. 왜 혈액인가.
뇌는 전기 신호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눈에서 빛이 들어오면 전기 신호가 시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된다. 신경 신호는 초당 수십에서 수백 미터 속도로 달린다. 밀리초 단위로 정보를 전달한다.
그런데 인슐린은 혈액을 타고, 느리게, 온몸을 돈다. 왜 더 느린 방식을 택했는가. 왜 신경 신호처럼 전기로 빠르게 보내지 않는가.
이 질문이 이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이 글은 비전공자의 창의적 해석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생물학적 사실은 공개 학술 자료를 참고했으며, 의학적 조언이나 진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건강 관련 판단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AI 정보
우리 몸은 하나의 중앙 서버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각자의 역할을 가진 노드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합의해 나가는, 분산원장 네트워크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그 네트워크 안을 흐르는 신호들이 왜 이런 방식으로 설계됐는지를 따라간다.
우리 몸에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신호 체계가 함께 작동한다.
하나는 신경계다. 전기 신호가 뉴런을 따라 달린다. 빠르고, 정확하고, 특정 목적지로 향한다. 손가락이 뜨거운 것에 닿으면 0.1초도 안 되어 손이 당겨진다. 이것이 신경 신호다.
다른 하나는 내분비계다. 호르몬이라는 화학물질이 혈액을 타고 흐른다. 느리고, 넓게 퍼지고, 수신자를 미리 특정하지 않는다. 인슐린, 코르티솔, 도파민, 에스트로겐 — 이것들이 호르몬 신호다.
두 체계가 왜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는가.
통일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체계는 서로 다른 문제를 풀기 위해 존재한다. 같은 문제를 두 가지 방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문제를 담당한다.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전기 신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부터 봐야 한다.
신경 신호는 강력하다. 빠르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물리적 배선이 필요하다.
뉴런과 뉴런이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신호가 전달된다. 뇌가 손가락 끝까지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뇌에서 척수를 거쳐 손가락 끝까지 뉴런들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연결이 끊어지면 — 척수 손상이 생기면 —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이 신경 신호의 근본적인 설계 원리다. 점대점(point-to-point) 통신. 연결된 곳에만 닿는다.
```mermaid
flowchart LR
A["신호 발신 뉴런"] -->|"시냅스 연결 필요"| B["다음 뉴런"]
B -->|"시냅스 연결 필요"| C["다음 뉴런"]
C -->|"시냅스 연결 필요"| D["목적지 세포"]
style A fill:#4dabf7
style D fill:#51cf66,color:#fff
```
자, 이제 문제를 생각해 보자.
췌장이 혈당이 올랐다는 것을 온몸의 근육세포들에게 알려야 한다. 전신의 근육세포 수는 수십억 개다. 거기에 지방세포, 간세포까지. 이 모든 세포에 신경을 연결하려면 — 배선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뇌가 전신 세포 하나하나에 신경을 뻗는 설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에너지 대사라는 것은 전신의 거의 모든 세포가 동시에 알아야 하는 정보다. 지금 포도당이 충분한지 부족한지. 지금 비상 상황인지 일상인지. 이런 정보는 특정 몇 개의 세포가 아니라 네트워크 전체가 수신해야 한다.
신경 신호만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호르몬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혈액이라는 기존 인프라를 브로드캐스트 채널로 쓴다.
혈액은 이미 온몸을 순환하고 있다. 심장이 수정 후 22일부터 뛰기 시작해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만들어온 순환. 그 순환망이 이미 존재한다. 호르몬은 그 위에 올라탄다.
인슐린이 혈액에 분비되면 — 혈액이 닿는 모든 곳에 인슐린이 도달한다. 별도의 배선이 필요 없다. 추가 인프라가 필요 없다. 이미 있는 것을 쓴다.
```mermaid
flowchart TD
A["췌장: 인슐린 분비\n혈액으로"] --> B["혈액 순환망\n(심장이 만든 기존 인프라)"]
B --> C["근육세포"]
B --> D["지방세포"]
B --> E["간세포"]
B --> F["기타 전신 세포"]
style B fill:#4dabf7
style A fill:#51cf66,color:#fff
```
그런데 인슐린이 온몸에 퍼진다고 해서 모든 세포가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세포가 인슐린 수용체(receptor)를 갖고 있어야 한다. 수용체가 없는 세포는 인슐린이 옆을 지나가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호르몬 신호 체계의 핵심 설계 원리다.
보내는 쪽은 수신자를 특정하지 않는다. 받을 준비가 된 노드만 수신한다. 수신 여부는 수신자 쪽의 수용체 유무로 결정된다.
네트워크 언어로 하면 이것은 브로드캐스트(broadcast)다. 신호를 전체에 뿌리고, 해당 수용체를 가진 세포만 수신한다. 발신자가 수신자 목록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 수신자가 스스로 구독 여부를 결정한다.
신경 신호가 TCP라면 — 연결을 확인하고, 수신을 보장하고, 목적지를 명확히 지정하는 — 호르몬은 UDP 브로드캐스트에 가깝다. 보내는 쪽은 그냥 보낸다. 받을 준비가 된 쪽이 받는다.
수용체가 수신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같은 신호에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페인을 생각해 보자. 카페인은 아데노신이라는 신호 분자의 수용체를 차단한다. 아데노신은 뇌가 활동하면서 ATP를 소비할 때 부산물로 생성되며, 수면 압력을 높이는 “피로 신호”다.[1] 깨어 있는 동안 아데노신이 축적되면 수면 압력이 높아진다. 카페인은 이 수용체에 아데노신과 비슷한 구조로 결합하지만 활성화는 하지 않는다. 수용체를 점거해서 아데노신 신호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1]
그런데 같은 양의 커피를 마셔도 어떤 사람은 밤새 잠을 못 자고, 어떤 사람은 마신 후 금방 잠든다. 왜인가.
아데노신 A2A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ADORA2A)의 변이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2] 이 유전자의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은 수용체의 감도가 높아 카페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른 변이를 가진 사람은 같은 양의 카페인에도 수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2] 커피를 마시고도 잘 자는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수용체 설계가 다른 것이다.
이것이 패러다임 관점에서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 시리즈의 다른 편들에서 반복되는 질문 — “왜 같은 상황에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하는가” — 의 답이 여기에 있다. 같은 신호가 왔을 때, 수신자의 수용체 밀도와 감도가 다르면 반응이 달라진다. 신호의 문제가 아니라 수신 레이어의 문제다.
내향형과 외향형이 같은 사회적 자극에 다르게 반응하는 것,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버티는 것 — 이 모든 차이의 물리적 기반 중 하나가 수용체의 개인차다. 브로드캐스트 신호는 동일하게 전달됐지만, 각 노드의 수신 설정이 다른 것이다.
수용체가 수신 여부를 결정하고, 수신 설정이 개인마다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호르몬 신호는 결국 그냥 느린 신경 신호인가.
아니다. 다른 용도를 위한 다른 설계다.
신경 신호는 빠르고 짧다. 밀리초 단위로 발생하고 사라진다. 이것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뜨거운 것에 손이 닿았을 때, 공이 날아올 때, 위험한 상황에서 즉각 반응해야 할 때.
호르몬 신호는 느리고 길다. 혈중 농도가 올라가면 수 분에서 수 시간 동안 유지된다. 이것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밥을 먹고 나서 수 시간 동안 전신의 에너지 대사 상태를 유지해야 할 때. 스트레스 상황에서 몸 전체를 비상 프로토콜로 전환할 때. 성장 과정에서 전신의 세포들이 장기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발달하도록 유도할 때.
신경 신호가 순간 반응을 위한 것이라면, 호르몬 신호는 상태 변화를 위한 것이다.
```mermaid
flowchart LR
subgraph 신경 신호
A["발생\n(밀리초)"] --> B["전달\n(밀리초)"] --> C["소멸\n(밀리초)"]
end
subgraph 호르몬 신호
D["분비\n(분~시간)"] --> E["유지\n(분~시간)"] --> F["소멸\n(분~시간)"]
end
style A fill:#4dabf7
style D fill:#fab005
```
같은 네트워크 안에서 두 체계가 공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빠른 처리가 필요한 문제와 상태 유지가 필요한 문제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3]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것이 불가능해진다.
한 가지 더 짚어둘 것이 있다. 두 신호 체계 중 어느 것이 먼저 등장했는가.
화학 신호가 먼저다. 훨씬 먼저.
세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기제는 다세포 생물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단세포 생물의 세계에 이미 존재했다. 효모 같은 단세포 진핵생물도 짝짓기 준비가 됐을 때 펩티드 신호 분자를 분비해 같은 종의 다른 세포에 신호를 보내 번식을 준비하게 한다.[4]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신경계가 필요하지 않았다.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그것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갖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내분비 신호를 내보내는 세포들은 신경계가 없는 동물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내분비 세포는 신경계 등장보다 먼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5] 신경계는 이 오래된 화학 신호 체계 위에 나중에 더해진 빠른 처리 레이어다.
효모의 G단백질 연결 수용체가 인간의 광범위한 수용체 패밀리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이 신호 체계가 효모와 인간의 공통 조상에 이미 존재했음을 의미한다.[4]
패러다임 언어로 하면, 호르몬 신호는 이 네트워크가 단일 노드였던 시절부터 쓰던 언어다. 신경계는 네트워크가 복잡해지면서 추가된 고속 채널이다. 오래된 언어가 느린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필요한 다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를 짚어둬야 한다.
이 패러다임 안에서 “감정은 신호다”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데 이제 “호르몬은 신호다”라는 시리즈를 시작하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충돌이 아니다. 레이어가 다르다.
감정은 **메시지(message)**다. “지금 이런 상태다”를 네트워크가 알아야 한다는 정보 자체. 슬픔은 네트워크에 보내는 503 상태코드, 기쁨은 200 같은.
호르몬은 그 메시지를 **물리적으로 전달하는 프로토콜(protocol)**이다. 감정이라는 정보가 실제로 몸 안에서 어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가.
이메일로 치면 — 감정은 이메일의 내용이고, 호르몬은 SMTP 프로토콜이다.
OSI 7 계층 모델을 떠올리면 더 명확하다. 같은 네트워크 통신 안에서 애플리케이션 레이어와 전송 레이어가 다른 것처럼, 감정(애플리케이션 레이어)과 호르몬(전송 레이어)은 같은 신호 시스템의 다른 층위다.
이 시리즈가 다루는 것은 전송 레이어다. 정보를 어떻게 실어 나르는가. 어떤 프로토콜들이 있고, 각각 어떤 상황을 위해 설계됐는가.
```mermaid
flowchart TD
A["애플리케이션 레이어\n감정 = 메시지\n(슬픔·기쁨·공포·기대)"] --> B["전송 레이어\n호르몬 = 프로토콜\n(인슐린·코르티솔·도파민·옥시토신)"]
B --> C["인프라 레이어\n혈액 순환망\n(심장이 만든 기존 채널)"]
style A fill:#4dabf7
style B fill:#fab005
style C fill:#51cf66,color:#fff
```
첫 번째 호르몬은 인슐린이다.
당뇨 편과 췌장 편에서 이미 인슐린이 등장했다. 혈당이 오르면 분비되고, 세포들이 포도당을 받아들이도록 문을 열어주는 신호라고. 1형 당뇨는 이 신호를 만드는 노드가 파괴된 것이고, 2형 당뇨는 이 신호를 받아야 할 노드들이 반응을 줄여가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들은 인슐린이 실패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서는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할 때의 이야기를 한다. 이 프로토콜이 어떤 설계로 만들어졌는지. 왜 하나의 신호가 이렇게 많은 세포에 동시에 다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 프로토콜이 다른 신호들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호르몬을 “몸의 메신저”로 보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Max Nieuwdorp, The Power of Hormones (2024, Scribner) — 네덜란드의 호르몬 전문의가 쓴 대중서로, 호르몬이 기분·관계·노화·질병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환자 이야기와 함께 다룬다. 호르몬을 “몸의 메신저”로 프레이밍 하며, 스마트폰과 수면 호르몬의 연결까지 다루는 넓은 시야가 특징이다.
“Understanding the biochemistry of hormones – message in a bottle” (PMC, 2025) — 제목 자체가 “병 속의 메시지”다. 호르몬을 정보를 담은 메시지로 읽으며, 내분비 세포들을 “풍부한 호르몬 언어를 통합하는 대사 통합자”로 표현한다. 언어와 신호라는 프레임이 이 시리즈의 방향과 겹친다.
“메신저”가 기능의 언어라면, “프로토콜”은 설계의 언어다. 그리고 흔히 쓰이는 “신호 전달 물질”이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다시 읽힌다 — 호르몬이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 아니라, 그 물질 자체가 신호이자 프로토콜이라는 것. 두 접근은 같은 현상을 다른 해상도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두 접근 모두 “왜 전기가 아닌 화학물질인가”를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다. 호르몬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다루지만, 그것이 왜 이런 방식으로 설계됐는지 — 배선 없는 브로드캐스트, 수신자가 수용체로 선택한다는 것, 속도와 지속 시간의 교환 — 를 설계 원리의 문제로 읽는 접근은 따로 없다.
이 시리즈가 다른 자리에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 Reichert CF, et al. “Adenosine, caffeine, and sleep–wake regulation: state of the science and perspectives.” Journal of Sleep Research. 2022;31(4):e13597.
[2] Rétey JV, et al. “A genetic variation in the adenosine A2A receptor gene (ADORA2A) contributes to individual sensitivity to caffeine effects on sleep.” Clinical Pharmacology & Therapeutics. 2007;81(5):692–698.
[3] Hall JE, Guyton AC. Guyton and Hall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14th ed. Elsevier; 2020.
[4] Alberts B, et al. “General Principles of Cell Communication.” In: Molecular Biology of the Cell. NCBI Bookshelf. 2022.
[5] Hartenstein V, Stollewerk A. “The neuroendocrine system of invertebrates: a developmental and evolutionary perspective.” Journal of Endocrinology. 2006;190(3):55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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