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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독 28일차] 간소하게, 글에 투신할 준비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은유 <쓰기의 말들>

by 윤서린

평소에 쓰지 않은 근육을 쓰면 몸이 찌뿌둥하다. 오히려 더 피곤한 것 같다.

평소에 읽지 않는 글을 읽으면 머리가 복잡하다. 오히려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몸도 머리도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


평소에 쓰지 않은 근육을 스트레칭해서 굳어진 자세를 바로 잡아줘야 한다.

평소에 쓰지 않던 감각과 이성을 잘 펴서 우리 삶을 빳빳하게 다려야 한다.


오늘은 중학교 동창생과 함께 읽기로 약속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을 읽는다.

내일 페이스톡으로 영상통화를 하면서 두 시간 동안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거라서 빨리 진도를 빼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1:1 독서도 감사하게 이 책으로 함께 하기로 해서 나는 이 책을 2명의 지인과 함께 읽어나가게 됐다.


역시 두꺼운 책은 서로 으싸으싸 응원하며,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여되어야 진도가 나간다.


나도 처음 <월든> 읽으려고 사뒀다가 몇 장만 읽고 덮었고 다시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만약 이 글을 읽는 글벗들도 집에 <월든>이 있거나 읽을 계획이었으면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독서처방전 "읽어야 할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부분을 이어 읽는다.


소로는 자신이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에만 직면해도 인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죽을 때 내가 인생을 헛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다.". (132면)


소로가 말하는 삶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의 방향성을 잡아 의도적으로 살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는 일, 자연의 선물에 감사하며 그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며 욕심부리지 않고 간소하게 사는 것. 그런 것이었을까?


소로는 말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일을 백 가지나 천 가지가 아니라 두세 개로 줄이도록 하자. (...) 문명생활이라는 이 험한 바다 한복판에서는 먹구름과 폭풍과 암초 등 수많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배가 침몰하여 항구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려면 추측항법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다. 간소화하고 또 간소화하자. 하루 세끼를 먹는 대신, 필용요하다면 한 끼만 먹자. 백 가지 음식 대신 다섯 가지로 만족하자. 다른 것들도 그런 비율로 줄이자.". (133면)


전혀 인생을 간소하게 살지 못하는 나는 또 소로 님의 호통에 뜨끔하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나는 왜 이리 물욕이 많은지. 왜 궁금한 거 다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지.

왜 좋은 건 종류별, 색깔별로 갖고 싶은지. 지금 책상에도 형광펜이 종류별, 색깔별로 가득가득하다.

아마 지금까지 사들인 펜만 쓴다고 해도 100살까지는 밑줄을 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핑계는 내가 원하는 색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걸 써본 결과 나한테 딱 맞는 3~4가지의 색을 찾아냈다.

그래서 이제는 내게 필요한 몇 가지 색만 채우면 된다.


내 삶도 조금은 간결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없이 찾아 헤매 발견한 나의 형광펜처럼.

나한테 어울리는 일, 사람, 소명

그 모든 것들이 명확하고 간소했으면 좋겠다.


새벽독서가 28일 차에 접어들면서 나는 거의 3주 동안 다른 연재를 못했다.

모든 에너지를 <독서처방전과 밑줄프로젝트>, <엄마의 유산> 공저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써야 할 것 먼저 쓰고, 쓰고 싶은 것도 반드시 써야 한다.

안 그러면 병이 난다.

(지금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나는 글로 와다다 수다를 떨고 싶은데 진중한 글을 써야 할 때는 꾹꾹 눌러써야 해서 에너지가 다르다.

다큐멘터리도 좋은데 시트콤도 좋아하는 것처럼 내가 쓰는 글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균형을 잡고 싶다.


그런 고민이 깊어지면서 <독서처방과 밑줄 프로젝트> 글의 양을 줄이고 핵심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연재글은 책 이야기반, 내 사설반이었다.


이 글에서는 책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해서 간략하게 쓰는 습관을 들이고, 나머지 시간에 글 한 편을 쓰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아침시간 3:30분을 "새벽독서와 글연재". "기존 연재 브런치 글 한편 구상 또는 쓰기"로 루틴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과연 아침에 글 두 개를 쓸 수 있을지는 도전해 봐야 알겠지만 안 그러면 도저히 다른 브런치북을 쓸 여력이 없다.

여기서 잠을 더 줄이수도 없고.


오늘 읽은 은유 <쓰기의 말들>에서 내가 딱 고민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또한 심리학자 카를 융의 "공시성(Synchronicity)"이라는 걸까?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


내가 고민하던 부분이 책에서 해답처럼 나타날 때 그때의 희열은 말해 무엇하리.


은유작가는 퇴근 후 매일 글쓰기가 어렵다는 걸 깨닫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수입의 불안정보다 글쓰기의 불안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39면)


"글쓰기의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만나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웬만해선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39면)


맞다. 매일 글쓰기를 위해 내가 해왔던 다른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예전처럼 다 할 수 없다.

은유 작가가 직장을 그만둔 것처럼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에 할 만큼 최대한의 효율적 글쓰기를 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자고 할까 싶다가도 그 시간에 휴식을, 그 시간에 글 한편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선다.


요즘 좋아하는 BTS 석지니의 예능도 피곤하니까 밀려서 못 보고.... 슬프다.

사실 이건 볼 꼼수가 떠오르긴 했다.


나의 BTS 덕질을 만천하에 당당하게 공표하고 그 이야기를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브런치를 개설한다면 이건 잠을 줄여서라도 미친 듯이 쓸 것 같다.


잠들기 전 인스타그램에 일수도장 찍듯이 들어가서 알고리즘에 뜨는 광고를 타고 들어가는 나 자신 반성하자.

그 시간이면 잠을 10분 더 자고, 책 3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직시한다.

정말 내 삶에 필요한지 묻는다.



참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열림원 2022. 10쇄

참고 > 은유 <쓰기의 말들> 유유 2019. 1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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