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 <월든>,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하루 중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시간인 아침은 각성의 시간이다. 이때는 졸리다는 느낌이 가장 적다" (130면)
네??? 소로 님 저 지금 졸린데요.
어제저녁에 아래층 시부모님과 저녁을 먹고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남편과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씻고 다시 내려오길 기다리며 어머님 침대 옆에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주말에는 간병인 여사님이 안 계셔서 나와 남편이 어머님 곁을 밤새 지켜야 한다.
나의 잠을 깨운 건 남편이 아니라 시어머님의 헛구역질 소리였다.
저녁 드신 게 채한 모양이다.
등을 두드려드리고 가스 활명수 찾아서 드린 후 남편에게 전화했다.
자정이 넘은 12시 15분.
나는 잠이 깼다. 낭패다.
잠깐... 아니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히려 럭키잖아!
이 시간에 밀린 연재를 써서 올려야겠다.
<엄마의 유산-도전의 항해일지>와 <허드레꾼의 허튼 생각>을 쓰다 보니 새벽독서 알람이 울린다.
12:30-4:50분까지 글 두 개 연재
5시-6시까지 새벽독서
6시-6:45 "글 쓰는 트레일러" 작가의 재능기부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요가 배우는 시간
7시-8시 <건율원> 유튜브 라이브 "인문학 강의" 듣기
그리고 지금... 8-11시 다시 독서와 글쓰기
너무 졸려서 읽어도 읽어도 그 문장 그 페이지에서 멈춘다.
어차피 오늘은 일요일.
좀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이 글을 마무리할까? 약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때 들리는 지담 작가의 한마디 "바늘구멍"을 조심해라!
풍선의 바람을 서서히 빠지게 해서 결국 쭈그려뜨리는 작은 바늘구멍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렇지, 오늘 하루 좀 미뤘다 나중에 쓸까 하는 이런 생각이 바로 무서운 바늘구멍이지.
정신 차리고 다시 시작하자.
<월든-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를 이어서 읽어본다.
"깨어나야만 비로소 어둠은 열매를 맺고, 빛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중략) 깨어 있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뜻이다." (130면, 131면)
잠도 깨고 의식도 깨워야 하는 아침이라고 소로는 내게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생활을 세세한 부분까지 잘 관리하여, 하루 가운데 가장 숭고하고 소중한 시간에 대해 깊이 관조해 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 (131면)
스스로가 자기의 삶과 시간을 잘 관리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생각 없이 살면 하루하루가 늘 바쁘고 할 일이 쌓인다.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바로 읽어야 할 책을 먼저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과 일맥상통이다.
"모든 지성은 아침과 함께 깨어난다. (주 1). 시와 예술, 그리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기억할 만한 인간의 행위는 바로 아침 시간에 이루어진다." (131면)
보통 시와 예술은 고뇌와 감성이 꽉 찬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 태양이 뜨기 전에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소로 말처럼 새벽 시간에 이루어지는 시와 예술은 뭔가 희망차고 순수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제 동네 독립서점에서 구입한 이슬아 작가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라는 책을 읽어보려 한다.
2년여 전 <세상을 바꾸는 15분> 강의에서 이슬아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유니크한 외모에 더 유니크한 그녀의 과거 "누드모델" "기자" "글쓰기 교사"라는 소개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 젊은이 뭔가 있다 싶었다. 지금은 <일간 이슬아>로 이메일 연재를 하면서 연재 노동자가 된 그녀.
그녀를 호기심 어린 관심으로 봤지만 정작 그녀의 책을 읽은 것은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집어든 <날씨와 얼굴>이라는 책에서였다. 몽글몽글한 글자체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들로 채워졌던 그녀의 책을 읽고 그녀를 스토킹... 아니... 팔로우했다.
간간히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그녀의 근황, <가녀장의 시대> 소설을 쓰고 동명 소설로 드라마 대본을 쓰는 그녀. 그녀의 자전적 내용이 살짝 들어간듯한 첫 소설은 판권이 세계적으로 팔렸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가녀장의 시대>를 읽지 않고 나는 이 책을 먼저 읽는다.
(죄송해요. 저는 소설을 아직 읽지 못하는 집중력 떨어지는 독서초보자랍니다.)
표지 띠지의 사진부터 멋지구나. 이슬아 작가는 긴 생머리였다가 짧게 머리를 자른 모양인데 이게 또 너무 얼굴이랑 찰떡으로 잘 어울린다. 깡마른 어깨가 드러난 사진과 달리 이슬아 작가가 그린 자신의 모습은 펑퍼짐한 청바지와 줄무늬 셔츠차림.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라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오토바이, 돈다발, 속옷, 담배, 누드화 스케치까지...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감도 안 오는 그녀의 책을 나는 내용도 보지 않고 샀다.
목차를 읽지 않아도 첫 문장을 보지 않아도 믿고 살만한 작가의 글이라는 게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가.
자료를 찾아보니 이 책은 2018년 책으로 내가 먼저 읽은 <날씨와 얼굴> 이전의 책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슬아의 과거를 탐험하러 떠난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역사, 혹은 한 몸에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우정. (...) 서로가 서로를 고를 수 없었던 인연 속에서 어떤 슬픔과 재미가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1960년대생 여자와 1990년대생 여자가 살아가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일 테다. 나를 씩씩하게 만든 이야기니 가까 누군가에게도 힘이 된다면 좋겠다. (...) 미래에는 내 몸과 마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확장되고 따뜻하게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도록 건강하고 싶다. 2018년 10월 이슬아"
작가의 말에 쓰인 글처럼 사는 동안 여러 책을 쓰고 싶다는 그녀는, 건강하고 싶다는 그녀는. 2025년 그 꿈을 잘 이뤄내고 있는 것 같다.
첫 주제 <짝짓기>부터 미쳐버리겠다.
그녀의 엄마 복희 씨는 어린 딸에게 제대로 된 매콤한 성교육을 시킨다.
아니 첫 페이지부터 생식기를 표현하는 B급 단어와 그림이 난무한다.
어린 이슬아가 상상한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정자와 난자의 짝짓기에 대한 상상은 복희 씨에게 무참히 짓밟힌다.
책을 안 펼쳐보고 산 게 다행이다. ㅎㅎㅎ
졸렸던 졸음이 싹 달아나는 이슬아 작가의 글과 그림.
닭발과 짝짓기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느냐 궁금하면 읽어보시길.
그녀의 엄마 "복희"씨는 젊은 시절 꽤 매력적인 인물로 표현된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복희 씨와 결혼하게 된 아빠 "웅이" 이야기가 나온다.
시 한 편을 써서 어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지만 예민한 영혼이라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 엄마 또한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이 없어서 입학을 못했다고 한다.
어쩐지.. 작가가 된 이슬아의 몸에는 엄마, 아빠의 문학적 피가 흐르고 있었구나.
그림체는 귀여운데 어린 이슬아와 내용은 또 그렇지 않다.
어... 나 울리지 마라....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알아버린 상실이라는 감정과 죽음으로 표현되는 엄마와의 연결이 마음 아프고 진실되게 그려진다.
나도 모르게..
슬아야, 다시는 그러지 마...
눈물이 맺힌다.
나 아무래도 이 책 다 읽으면 이슬아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세공되지 않은 모난 원석같이 간간히 받은 햇빛에 반짝거려서 예뻐 보여서 좋아했다면 이제는 야리야리한 순두부를 수저 가득 뜨는 마음처럼 그녀를 조심조심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어린 슬아를 보면서 지금의 이슬아 작가와 겹쳐본다.
글머리에 "나를 씩씩하게 만든 이야기니까 누군가에게도 힘이 된다면 좋겠다"라는 작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부디 뒷이야기로 갈수록 어린 슬아가 힘들지 않길 바란다.
감정에 예민한 어린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지 나는 조금 알고 있다.
어린 슬아가 그림 속에서 작은 손을 내게 내민다.
늘 혼자였던 어린 늘그래와 너무 예민해서 아픈 아이 이슬아가 시간을 넘어 서로의 친구가 된다.
주 1> [베다] : 고대 인도 종교인 브라만교의 경전
참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열림원 2022. 10쇄
참고> 이슬아 글그림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2020년 9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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