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오늘은 새벽독서에 이어서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친구와 영화통화를 하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의 독서토론을 했다.
우리가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눈 곳은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독서"부분이다.
앞부분에는 자연처럼 유유히, 하루 종일 즐겁게 살아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삶을 고안하고 구상하는 데 생애를 바쳐보자. (...) 하루를 자연처럼 유유히 살아보자. 철도 위에 견과류 껍질이나 모기 날개가 떨어질 때마다 탈선하는 기차처럼 되지는 말자. (...)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고 조용히 평온하게 지내보자. (...)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내기로 결심하자. 우리는 왜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야 하는가? 정오의 얕은 여울에 자리 잡은 점심이라는 이름의 무서운 격류와 소용돌이에 휩쓸려 압도당하지 말자. 이 위험만 뚫고 나가면 우리는 안전하다. 나머지 길은 내리막이니까.". (104-141면)
작은 일상의 변화에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건 그만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나의 하루가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찬다면 얼마나 괴로운가.
그저 자연처럼 유유하게,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잘 보내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감사하면 즐겁게 살기로 다짐해 본다.
큰딸이 이른 아침부터 라면을 먹는다고 내 것도 끓여준다.
어제 초저녁에 잠들어서 허기진 차에 잠시 라면을 먹으며 딸과 나란히 해가 뜨는 창밖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낮밤이 바뀐 아이는 새벽독서를 하는 나에게 종종 쿠키, 치즈스틱 등을 권한다.
소소하게 행복하다.
소로는 "독서", "고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제대로 된 독서, 즉 참된 책을 참된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이 운동은 현대의 풍습이 높이 평가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힘든 노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운동선수가 참고 견뎌야 하는 것과 같은 훈련을 요구하며,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평생 일관되게 간직해야 한다. 책은 그것이 쓰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읽어야 한다. ". (154면)
나는 차분하게, 정성껏, 훈련, 의지, 노력이라는 말에 진노랑 형광펜을 칠한다.
나의 독서법이기도 한 천천히, 정성껏 에 큰 의미를 둔다.
나는 정독, 숙독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 문장으로 몇 분, 몇 시간, 며칠, 몇 년을 사유하는 걸 좋아한다.
하루에 몇 페이지 읽었다거나 완독을 했다거나 일 년에 몇 권을 읽었는지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시간이 많으면 더 읽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빠듯한 시간을 쪼개 읽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게 더 중요하다.
남들한테 있어 보이기 위해 베스트셀러 몇 권을 읽었다고 자랑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 나름의 속도로 내가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을 차분이 읽는다.
소로는 "고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전이란 인류의 가장 고귀한 사상의 기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전이야말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유일한 신탁이며, 그 안에는 델포이나 도도나(제우스의 신탁소)도 줄 수 없는 가장 최근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는 것이다." (153-154면)
고전에 최근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는 말은 나도 공감한다.
내가 고전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인간의 고민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마치 100여 년이 지난 고전이지만 바로 지금 우리 사회, 나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글귀를 만나게 된다.
"글로 기록된 말이야말로 역사적 유물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유물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예술품보다 우리에게 친근하고 보편적이며 삶 자체와 가장 가까운 예술품이다. (중략). 책이란 이 세상의 귀중한 재산이며, 모든 세대와 모든 민족을 거쳐 물려받은 유산이다. (...) 독자를 계몽시켜 주고 고무시켜 주는 한, 상식을 가진 독자라면 책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156면)
소로는 책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우리의 "쉬운 읽을거리"만 읽으려는 행태를 비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부를 적거나 거래에서 속지 않기 위해 셈법을 배우듯 사소한 편의를 위해 읽기를 배울 뿐, 고귀한 지적 활동으로서의 독서에 대해서는 거의 혹은 전혀 모른다. (중략) 이른바 훌륭한 독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조차 좋은 책을 읽지 않는다. (...) 인류의 기록된 지혜인 옛 고전이나 경전들은 알려고만 하면 누구나 쉽게 구해볼 수 있을 텐데도, 그것과 친해지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60면)
나도 그동안 읽기 쉬운 책 위주로 듬성듬성 독서를 해왔다.
고전은 머리 아픈 거라 생각해서 아예 읽을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새벽독서를 하면서 내게 내린 독서처방으로 읽어야 할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진작에 읽었더라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 책을 권해줬더라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책이 인생의 모든 해답이 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삶에 대응해 답을 얻을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우리가 쉬운 읽을거리가 아닌 독서 수준을 올릴 수 있는 양서,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할 이유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 우리의 기적을 설명하고 새로운 기적을 계시해 줄 책이 우리를 위해 존재할 것이다. (...) 지금 우리를 동요시키고 혼란시키고 현혹시티는 문제들은 일찍이 모든 현인들에게도 일어났던 것들이다. (...) 그들은 저마다 능력에 따라 말과 삶으로 그 문제들에 해답을 주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들의 지혜와 함께 관용도 배우게 될 것이다.". (162-163면)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인을 위한 교육시절이 도서관을 제외하면 동네마다 얼마나 되는가?
소로는 강 위 다리를 하나 더 놓든 것보다 필요하다면 길을 좀 돌아가더라도 그 비용으로 성인을 위한 배움의 공간을 만들자고 한다. "무지의 검은 심연 위에 구름다리 하나를 더 놓아보자"라고 말한다. (166면)
나도 나의 "무지의 검은 심연"에 "고전"이라는 다리를 놓아본다.
이슬아 작가의 글과 그림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를 쓰고 그린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다시 이어 읽어본다.
같이 독서토론하던 친구에게 이슬아 작가를 간단히 소개하고 이 책을 먼저 읽고 다른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친구는 제목부터 슬프다고 말한다.
나 역시 제목이 한 편의 시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운동회"에 대한 추억이 나온다.
학교에서 열리는 가을 운동회의 풍경이 그려지고 어린 슬아는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다.
누구나 그런 추억이 있을 것이다.
아니.. 나만 있나?
다른 가족들은 일찌감치 돗자리를 펴고 자리 잡아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도시락을 먹는데 엄마, 아빠가 오지 않는다. 나는 가끔 멋쩍게 친구네 가족 틈에 끼여서 김밥 몇 알로 허기를 채우다 뒤늦게 도착한 가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바쁜 부모님 대신 운이 좋으면 친구 돗자리 모서리나 돌계단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엄마 김밥은 맛있었다. 맛있어서 조금 더 서러웠을지도 모른다.
바빠서 못 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깜짝 이벤트로 저 멀리서 나타나지 않을까 운동회가 끝나도록 목을 빼고 엄마, 아빠를 닮은 사람들의 뒤태를 기웃기웃 거렸었다.
다행히 슬아 엄마는 운동회에 늦긴 했지만 맛있는 도시락을 두 손 가득 들고 나타난다.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늘 그렇듯이 학부모 달리기 경주가 열리면 모두의 속마음처럼 달리다가 우리 엄마, 아빠가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꼴찌만 안 했으면 빌게 된다. 슬아도 마찬가지다. 슬아 엄마가 킬힐을 신고 운동장을 달린다.
과연 슬아의 엄마는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을까?
작가는 어린 시절 운동회를 회상하며 엄마의 뛰어난 외모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가 탤런트 공채 모집 원서를 내러 간 이야기를 에세이로 썼다.
"복희는 가끔 생각할까. 그녀가 될 뻔한 자신의 모습을... 놓쳐서 날려버린 기회와 가능성들을. 그게 아쉬울까. 혹시 아무렇지도 않을까." (97면)
슬아는 어려서 생각한다. 자신의 엄마, 복희는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그런데 주부였던 복희가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여러 직업을 거쳐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꿈도 놓치고 잃어버린 채 사는 게 어린 슬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녀는 자주 그런 질문을 했다. 사는 게 뭘까, 슬아야,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95면)
알 수 없다. 복희가 고민하듯. 지금의 나도, 예전에 나도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날려 버린 기회와 수많았던 가능성들.
그것에 대한 후회.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하고 그 가능성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과 고민.
하지만 어쩌면 그 해답은 내 안에 이미 있을지도 모른다.
정답이 아닐지 모르지만 답을 찾아 써보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이다.
복잡한 인생의 문제를 어쩔 줄 몰라 손 놓고 지켜보던 과거의 나.
지금은 뭐라도 적어보려는 내가, 아는 만큼이라도 풀어보려는 내가 기특하다.
틀려도 지우고 다시 풀면 된다.
내 옆에는 나를 믿고 지우개를 빌려줄 사람들이 있다.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답을 나는 오늘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책과 책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나의 사유와 그들의 사유를 통해서.
참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열림원 2022. 10쇄
참고> 이슬아 글그림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2020년 9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