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어느덧 새벽독서 30일 차에 접어들었다.
독서초보자인 나를 위해 "읽어야 할 책" ,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서 매일 읽고 쓰는 습관을 들였던 한 달이었다.
한 달이 꽤 긴 것 같기도 겨우 인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4:41분 알람 소리가 울리면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그때 딱 하나만 생각한다.
우선 일어나서 세수만 하자!
세수를 하면 정신이 들고 그다음부터는 책상에 앉기 위해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인다.
머리를 감고, 차를 마시기 위해 뜨거운 물을 끓이고, 그 사이 고양이와 강아지 간식을 주고, 강아지 화장실을 치운다.
서둘러 옷을 입고 줌을 켜고 책상에 앉는다.
독서를 바로 시작해야 되는데 오늘은 출판권 설정 계약서를 읽고 이메일을 보내느라 새벽독서가 생각보다 늦어졌다.
두 달 전 시 한 편을 응모했는데 출판사에서 시가 선정됐으니 메일을 확인하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지은이와 목차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PDF파일을 받았다.
출판되어 내 손에 들어와서 펼쳐봐야 실감이 날 것 같다.
하필 만우절에 이메일을 확인해서 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축하해 줘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2025년에 세운 상반기의 목표 하나가 성공했다.
이렇게 되면 신이 나서 2025년 상반기 추가 목표를 향해 달릴 원동력이 생긴다.
1. 시 응모 (2025. 4.1 선정, 계약서 작성)
2. 창작동화 응모 준비 (5월 마감, 플롯 구상 중)
3. <엄마의 유산> 출간 프로젝트 (7월 예정, 초안 작성 중)
목표 있는 삶이 나를 이불속에서 일어나게 만든다.
오늘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만나서 <월든> 호숫가 오두막으로 떠난다.
오늘 읽은 부분은 <월든-숲 속의 소리들> 부분이다. 어느덧 500페이지 중에 171페이지에 접어들었다.
혼자 읽었다면 조금 읽다 덮어놓고 읽지 못했을 텐데 내가 이 책을 읽자고 절친 중학교 동창도 꼬시고, 1:1 독서모임 작가님도 꼬셔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책 펼치자마자 어제도 언급했던 "공시성" (주 1)을 느끼게 하는 책 구절을 발견한다.
정말 책 속에 나의 문제의 해답이 숨어있는 것처럼.
"자신의 운명을 읽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라.
그리고 계속 전진하여 미래 속으로 들어가라." (172면)
사실 어제 시 공모 선정 이메일을 확인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상반기 계획 중에 3번, <엄마의 유산>만 신경 쓰고 있었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여력이 없어서 그것만 잘 해내도 나의 상반기는 재만 남을 정도로 다 소진될 것 같았다.
그런데 덜컥 1번 계획이 성공하면서 잊고 있던... 아니 일부러 외면했던 2번 계획, 창작동화 투고가 불쑥 다시 고개를 내민 것이다.
일주일에 브런치 글 8-9편을 쓰면서 <엄마의 유산> 출간 프로젝트 글을 쓰고 수정하면서 동시에 창작동화 원고를 쓴다??? 아르바이트하며, 새벽독서를 하고 저녁잠을 4시간을 줄인 상태인데... 이 상태로는 전혀 불가능한데...
그런데 왜 오늘 아침 하필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난 것인가!!!
"자신의 운명을 읽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라.
그리고 계속 전진하여 미래 속으로 들어가라." (172면)
미래 속의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본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질 미래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오늘은 내가 어떻게 하면 2번 계획을 실행할 시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나는 내 생활에 여백을 남겨두기 좋아한다. (...) 동트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에 둘러싸인 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적막 속에서 조용히 공상에 잠기곤 했다. (...) 나는 동양인들이 말하는 명상과 무위가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다. (...) 하루는 마치 내 일을 얼어주려는 것처럼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 아침이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지금은 어느새 저녁이다." (172면)
내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읽으면서 가장 원했던 문장이 이 챕터에 있는 것 같다.
내 브런치스토리 작가소개글에도 있지만 나는 "달력과 시계가 필요 없는 전원의 삶"을 꿈꾼다.
알람 없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떠서 아침을 시작한다.
따사로운 햇살을 등에 업고 뒹굴거리며 책을 보고 배가 고프면 텃밭에서 채소 조금 뜯어다가 샐러드나 비빔밥 한 그릇을 비벼먹는다. 배부르면 바람을 이불 삼아 덮고 낮잠 한숨 자고 꿈결에 떠오른 생각을 잡아 글을 쓴다.
나뭇가지의 그림자와 꽃잎의 흐느적거림을 캔버스에 옮겨와 그린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촛불 하나 켜 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보다 잠든다.
이렇게 자연의 흐름대로 하루를 온전히 살아보고 싶다.
몇 시인지 무슨 요일인지 몰라도 되고 알 필요도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아마 나의 노년은 이런 흐름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견디는 기쁨을 주위를 둘러 찾아본다.
"인간은 자기 안에서 삶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 정말이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해서, 인간의 게으름을 나무라지 않는다." (173면)
어쩌면 나의 이런 몽상적인 생활을 게으르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지난 나의 48년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충분히 바빴고, 소란스러운 삶이었고, 고단했다.
앞으로의 60 이후의 20년은 이렇게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다행히 소로가 나의 편을 들어준다. 자연은 인간의 게으름을 나무라지 않는다고... 그래도 된다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평온하게 사는 하루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늘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멈춰있다 발길을 돌렸던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를 읽어보려 한다.
글쓰기 모임의 작가 한 분이 인생책이라고 해서 나도 꼭 읽어보고 싶었다.
결국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를 나란히 내 책장에 들였다.
책 표지에 작은 소제목이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이라고 쓰인걸 보니 문체가 짐작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왠지 나를 피식 웃게 만들 거 같은. 조금은 씁쓸한 미소도 짓게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기대감으로 책을 펼친다.
사노 요코가 내가 아는 그 그림책의 사노 요코가 맞았다.
[100만 번 산 고양이], [아저씨 우산] 등…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그림책 작가.
엄마들이라면 대부분 이 책을 읽어봤을 것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작가의 문장.
맞는 말이다. 자신과 잘 놀아주고 자신에게 친절하고... 어려서는 그런 걸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는 가까운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 다정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나의 절친은 바로 나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70의 인생을 그림책을 그리고 글 쓰는 작가로 살아온 그녀가 남긴 말. 인생을 뭔가 통달한 느낌이랄까.
아침에 일어나서 슬리퍼를 끌고 카페에 가서 담배 한 대 피우며 주변 독거 할머니들을 관찰하는 그녀의 시선이 냉소적이면서도 엷은 미소를 짓게 한다.
헤어질 위기에 처한 친구와 여자친구 사이에서 그녀는 슬픔과 고뇌에 빠져있을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요리를 알려달라고 전화를 한다. 친구가 그녀와 헤어지면 자신과의 관계로 끊어지고 결국 그 요리비법을 못 배우게 될 테니까. 정말 독특한 캐릭터다.
앞부분만 읽어봐도 심상치 않은 사노 요코의 삶의 내공과 시크함이 말 그대로 문장에서 묻어난다.
나는 이 책을 에세이 교본집처럼 읽게 될 것 같다.
나의 긴 중문을 고쳐줄 참고서가 될 것 같다.
또한 나 자신과 주변을 자세히 바라보고 다양한 시선을 글로 옮길 수 있는 교과서를 읽는 마음으로 읽게 될 것 같다.
그녀의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시선이 글에서 계속 이어질지 조금은 따스하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뒷부분이 너무 재미있겠지만… 아르바이트를 위해 이만 차에서 내려야 한다.
산수유와 귀룽나무가 노랗고 연두연두하다.
자못 봄이다.
참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열림원 2022. 10쇄
참고>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마음산책
주 1> 공시성 ( synchronicity)은 「의미가 있는 우연의 일치」로 비인과적인 복수의 사상(사건)의 발생을 결정하는 법칙원리로써 종래 알려져 있던 [인과성]과 다른 원리로써 카를 융에 의해서 제창된 개념의 영역이다.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