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내면소통>,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새벽독서 인증사진을 찍어놓고 정작 다른 책 이야기를 하게 되는 오늘 아침이다.
우선 읽어야 할 책으로 내가 독서처방한 책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을 먼저 정리해 본다.
[복수의 자아에 관한 뇌과학 연구 사례들]
김주환 교수는 한 사람 안에 복수의 자아가 (혹은 자의식 모듈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다음 사례를 든다.
자동차 사고로 뇌의 특정 부위를 심하게 손상입은 제이슨이라는 환자가 있다.
그는 말도 못 하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눈만 뜨고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는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평소 아버지가 옆에 있어도 좀비 상태처럼 아무 말도 못 하던 제이슨이 아버지가 옆방에서 전화를 하면 딴사람이 된 듯 의식을 회복해 멀쩡하게 아버지와 전화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제이슨의 이런 증상을 '텔레폰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였다.
제이슨은 시각중추가 손상된 상태여서 시각정보가 주어지는 순간 그의 의식은 전체적으로 마비됐지만 청각중추 부위는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화통화로 청각정보만 주어질 때에는 의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160~161면 참고)
"제이슨의 사례는 인간의 의식이 단일 개체가 아니며, 여러 일차적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 이차적 상위 시스템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뇌에는 진화 초창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다양한 일차적 시스템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뇌는 점차 진화하면서 일차 적인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들을 종합하고 이에 다양한 의미와 스토리텔링 을 부여하는 이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곧 의식이다. 결국 우리의 '의식'은 다양한 하위 시스템들이 서로 경쟁하고 선택적으로 통합되면서 떠오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161면)
김창완 아저씨의 산문 <이제야 보이네>를 매일 아침 읽으려고 한다.
오늘은 [이별은 가슴에 남아]를 읽었는데 새벽독서글에는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별의 상징" "이별의 터"에 관한 이야기는... '어쩌나... 어떡해'로 끝난다.
그러니 어찌 그 내용을 이 아침에 여러분들과 나누겠는가.
어슬렁어슬렁 책장을 둘러보다 1년 만에 꺼내든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걷기 예찬>을 펼쳐 읽어봤다.
내가 어디에 밑줄을 그었나...
학창 시절 밑줄은 자대고 반듯이 그어야만 했던 나였다.
나이 들어 엄격한 그 기준을 버리고 삐뚤게 그어놓은 책 속의 문장들을 다시 읽어본다.
마치 늘어진 고무줄 같은 마음을 땡겨 묶듯이 삐뚤어진 밑줄의 문장을 팽팽하게 당겨 마음에 담아 본다.
오늘 내 마음을 붙잡은 건 다음 문장.
“너무 급격한 심리적 파열을 방지하려면 그 번데기 상태로부터 아주 점진적으로 빠져나와서 한 마리 나비처럼 아직 축축한 날개를 고요의 볕에 말리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걷기 예찬 74면]중 인용된 Peter Matthiessen [눈 속의 표범] 중에서.
이 문장에 밑줄 친 이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팡질팡한 현재의 내게 1년 전의 내가 들려주고픈 이야기였을까?
나는 지금 번데기에서 젖은 날개를 펼치는 첫날을 맞은 나비인 걸까.
날기 위해 축축한 날개를 힘껏 펼쳐보는 그런 하루.
햇살 드는 창가에서 젖은 날개를 펼쳐놓고 꾸벅꾸벅 졸며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싶은 오후.
기다리던 오늘을 맞이한 내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볼 곳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