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이라는 고백

by 윤서린

윤이가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내가 인지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가족이나 지인, 선생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참 어려운 숙제였다.

어디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할지,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흘리듯 이야기해야 할지, 나는 종잡을 수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우리 윤이를 바라보게 되는 수많은 시선들에서 나와 윤이가 받게 될 상처가 겁이 났다.

일종의 난독증 환자라는 낙인이 평생 찍혀 따라오면 어쩌지…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면 어쩌지…

나는 남들과 다른 발달 과정을 가진 아이의 학부모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할까 걱정했다.

늘 육아와 교육이 부모의 잘못, 특히 엄마의 잘못으로 아이가 저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세상의 시선이 따갑게 나를 찔렀다.


윤이가 어려서 내가 잘 못 챙겨주고 빨리 눈치채지 못해서 아이의 발달이 더 늦어진 건가 싶은 죄책감은 나를 괴롭혔다.

특히 우울증이 심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아이에게 간 게 아닐까 나를 수없이 자책하게 했다.

좀 더 세심했던 라면, 학원에 맡겨두지 않고 내가 더 끼고 한글을 가르쳤더라면. 아이는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그 생각의 무게와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처음 난독증 판정을 받고 남편과 큰 애들 셋에게 이야기할 때도 난독증이라는 게 제대로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이었지만 일종의 주문과도 같았다.

그동안 윤이가 한글공부에서 지지부진하고 낱말카드놀이나 자음모음을 매번 틀렸을 때 큰 애들은 지나가듯 말했었다.

“야~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게 헷갈려. 너 이제 학교 가야 되는데 어쩌려고 그러냐? ”

그때는 그저 장난 어린 면박이었는데 이제는 자신들의 말이 윤이에게 큰 상처였겠구나 싶어 모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후 큰애들은 윤이가 단어를 물어보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모른다고 다그치지 않고 차근히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우리는 최대한 아이 앞에서 “난독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나 또한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저 다른 친구들보다 읽는 게 조금 느려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하고 따로 시간을 내서 배우면 곧 다른 친구들처럼 읽고 쓸 수 있을 테니 조금만 힘들어도 같이 노력하자고 말했다.

아이는 1학년 입학 후 척척 책을 읽고 글씨를 쓰는 친구들을 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글을 배우는 게 많이 늦는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됐다.

수업 시간은 점점 버거워졌고 모둠활동은 늘 긴장했으며 방과 후 발달센터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자신의 일과에 지쳐갔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윤이는 자기 마음과 달리 더디고 지루한 학습에 울고 짜증 내고 화나고 순간 포기했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아이들과 방과 후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마음을 접고 발달센터로 향하는 윤이의 발걸음과 마음은 모래주머리를 찬 것처럼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웠다.


순탄치 않은 시간은 흘러가 어느덧 더듬거리며 읽게 되는 날이 기적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학습력은 뒤쳐지고 본인의 생각을 드러내거나 글로 표현하는 일은 어려움을 겪었다.

연필을 쥐는 것 자체와 글씨 쓰기를 극도로 싫어하며 거부하는 날들이 생각보다 길었다.

글씨는 여전히 상형문자 그림처럼 가독성이 없었고 맞춤법은 고사하고 단어의 띄어쓰기는 전무하며 마침표도 찍지 못했다.

어디서 말이 끝난다는 것만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마침표를 찍는 걸 가르치려 했지만 윤이는 나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내 자신감이 지하땅끝으로 떨어져서는 연필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윤이는 어느새 4학년이 됐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독서량과 독서 수준도 낮고 글로 자기표현도 서툴다.

학습력에서는 수업을 겨우 따라가지만 아직 글이나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건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한 아이다.

새로운 학년이 되고 새 학기를 맞이하는 건 아이에게 또 다른 시련의 시작과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나는 4학년 학기 초 상담 때 윤이의 난독증에 관한 이야기를 담임선생님께 할까 말까 고민했다.

내가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면 담임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

굳이 윤이를 난독증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필요가 있을까? 숨겨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면 아이들 속에서 잘 녹아들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수없이 반복하다 학기 초에 쓰는 학생기초조사에 담임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에 윤이의 1학년 생활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써서 보냈다.

담임선생님과의 면담날,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하는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다가 윤이의 난독증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 윤이에 대해 솔직하게 써주신 글 잘 읽었어요. 초반에 윤이의 행동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어머님 글을 보고 알게 됐어요. 윤이한테는 자기표현의 시간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요. 그래서 지금은 제시간에 못해도 할 수 있는 부분만 천천히 해보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어머님이 알려주지 않으셨으면 수업 시간에 집중 못하거나 하기 싫어해서 늦장 부리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었는데… 제가 이제 윤이의 특성을 알게 됐으니까 더 신경 써서 지켜볼게요. 그리고 친구들이랑 모둠활동도 잘하고 쉬는 시간에도 잘 어울리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


“네. 다행이네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어머님이 윤이의 상황을 숨기지 않으시고 저한테 알려주셔서 제가 감사해요. 대부분 이 정도로 난독증을 극복하고 있는 상황이면 부모님들이 그 사실을 숨기시거든요. 근데 아이는 아직 어려움이 남아있고 윤이처럼 학습적인 부분이나 자기표현의 자신감 부분은 아직 덜 해결된 경우가 많은데 담임이 그 사실을 알고 아이를 기다려주고 이해하는 것과 아무 정보도 없이 아이를 바라보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저는 어머님이 먼저 윤이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게 정말 감사합니다. 큰 용기를 내신 거 알아요. “


나는 선생님의 “용기”라는 말에 참았던 눈물이 꾹 다문 입술 위로 타고 흘렀다.

올해에도 윤이가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이가 5학년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난독증”이었다는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아이는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이제는 어렴풋이 자신이 “난독증”이었다는 사실도 안다.

윤이에게 어느 날인가부터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난독증의 의미와 난독증을 극복한 유명인들의 사례를 조금씩 들려주었다.

너 또한 그들과 같았고 그걸 이겨내는 과정 중에 있고 너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나 어린 동생, 어른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윤이에게 “난독증”이라는 고백을 해야만 했을까 하는 고민도 있지만 이제 4학년인 윤이가 자신이 왜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냈었는지 알아야 할 때이고 충분히 노력해서 이만큼 성장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윤이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낸 거라고 칭찬해 주고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도 이제 마음껏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윤아, 너 정말 대단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줘서 고마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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