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못해! 리코더 수행평가

by 윤서린

윤이는 한글에 대한 이해도가 늦었기에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에도 큰 거부감이 있었다.

태권도는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다녀 4년을 즐겁게 다녔는데 악기를 배우는 건 겁을 내고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 이유 중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악보였다.

커다란 피아노책에 빼곡히 그려진 음계는 윤이 눈에 한글보다도 더 복잡한 암호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윤이는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도 올려보지 못하고 4학년이 됐다.

문제는 4학년 수행평가가 리코더 연주였는데 음계를 읽지 못하는 윤이는 음악 시간을 몹시 힘겨워했다.

계이름이 적혀있어도 음의 높이나 음표의 길이를 이해하지 못하니 무조건 멜로디를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늦은 퇴근시간에 집에 돌아와 보니 윤이가 다 구겨진 악보를 이불에 펼쳐 놓고 리코더에 손가락을 올려 ‘삑삑‘ 바람 빠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일이 리코더 수행평가인데 손가락 운지도 잘 되지 않고 겨우 첫 부분 한 두 마리를 어설프게 부르는 윤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음악 시간에 합주를 할 때는 친구들 리코더 소리에 가려져 자신의 어설픈 소리나 놓친 박자를 숨길 수 있었는데 수행평가는 오롯이 혼자 독주를 하는 것이니 그 부담감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윤아, 너무 힘들면 그만하고 자도 돼. 벌써 11시가 넘었어. “

“이 노래 1절까지 다 못하면 점수 하나도 못 받는데 어떡해 엄마…”

아이는 곧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윤아, 엄마는 네가 이 연주를 끝까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너무… 무리..”

“싫어요. 나 연습하고 잘래요.”


윤이는 음표를 보고 연주하는 게 아니라 계이름이 적힌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니까 높은음을 구별할 수 없어서 손가락 운지를 자꾸 틀렸다.

한글로 쓰여있는 계이름의 ”도 “와 “높은 도“의 구분을 할 수 없는 탓에 낮은음을 부르다 이게 아닌데 하며 다시 높은음을 찾아 불어야 했다.

윤이가 연습하는 “가랑잎 엽서”라는 연주곡은 높은음이 많아 그 자체로도 손가락 운지가 복잡했다.


나는 A4용지에 계이름을 다시 적었다.

악보의 계이름을 검정 펜으로 써주면서 높은음은 빨간색 펜으로 “도” “레”라고 써서 윤이만의 악보를 만들었다.

음의 길이도 물결 모양을 길게 늘여서 그려주는 방식으로 멜로디의 속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그렸다.


유튜브에서 리코더 연주 영상을 찾아 한 마디씩 끊어가며 손가락 운지를 익혔다.

윤이 혼자 다시 불러보고 막히는 부분은 다시 영상을 보고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수십 번을 반복하다 보니 낮은음과 높은 음의 글씨색을 구분하게 되면서 손가락은 주춤거려도 제대로 된 음에 손가락을 올리게 됐다.

속도도 더디고 운지가 틀려서 삑 소리가 중간중간 났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보다도 인내심이 강했다.


어느덧 뚝뚝 끊어지던 첫 소절이 부드러워지고 그다음 마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자신감이 붙은 윤이는 지치지 않고 손가락과 입술을 움직였다.

가끔 손가락이 저린지 손을 주먹 쥐었다 폈다 반복하면서도 입은 쉬지 않고 계이름을 소리 내 외웠다.

윤이가 더듬거리지만 1절 끝까지 연습을 끝내니 시간은 벌써 새벽 12시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 이제 연습 그만하고 자도 될 것 같아요.”. 아이는 긴장이 풀렸는지 길게 하품을 한다.

“그럴까? 연습하느라 너무 고생했어. 벌써 1시가 다 되는 시간인데 엄청 피곤하겠다. 푹 자야 내일 연주도 잘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이만 자자. “

아이는 피곤했는지 금세 옆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내가 저녁시간에 출근하지 않고 같이 있어서 차근히 연습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지고 머리가 복잡해서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었다.


다음날 오후, 출근이 없는 날이라 거실에서 윤이를 기다린다.

“띠띡띠띡~ 띠리릭~~”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속도가 남다르게 빠르다.

분명 윤이가 급한 용무가 있는 것 같다.


“엄마~~~ 엄마~~~ 나 완전 리코더 수행 평가 점수 잘 나왔어요~”

“와~~~ 정말? 몇 점인데?”

“4점이요! 저 잘하면 2점이나 1점 정도 받을 줄 알았는데 4점 만점이에요. 선생님이 저 엄청 열심히 잘했다고 칭찬해 줬어요.”

“오~!! 대단한데~~ 어떻게 그렇게 점수가 잘 나왔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불러서 그랬나? “

“음악 시간이 5교시라서 쉬는 시간이랑 점심시간에 안 놀고 계속 연습했거든요? 선생님이 제가 악보 보고 연습하는 거 보시더니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학생은 처음 봤대요~~~“

아이의 기분 좋은 웃음이 거실에 가득 퍼진다.


윤이는 악보를 못 보더라도 손으로 눈으로 익혀서 리코더를 분다.

비록 소리가 매끄럽지 않고 멜로디가 조금은 제 멋대로일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해낸다는 것.

그것만은 어른인 나보다도 11살인 아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포기하고 싶었던 나와 포기하기 싫었던 윤이.

승자는 당연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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