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에서 낭독으로 가는 길 - 이야기꾼의 탄생

by 윤서린

윤이는 어느덧 4학년 겨울방학을 지나고 있다.

난독증으로 고생하고 힘겨웠던 1, 2학년을 거쳐 적응하고 평균에 가까워진 3, 4학년의 시간들.

그러나 여전히 맞춤법은 엉성하고 글씨는 삐뚤빼뚤이다.


독서도 저학년 수준에서 머뭇거리고 공부보다 태권도가 태권도보다 게임이 좋은 아이다.

그럼에도 나는 감사하다.

평범하게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같은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고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게 더없는 축복이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비하면 우리 아이는 학습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느린 아이다.

이걸 인정한다는 게 부모로서 쉽지만은 않다.

예습이 기본이라지만 한 학기 선행학습은 시키지 않는다.

다들 받는 독서왕 타이틀은 먼 나라 이야기다.

방학 동안 수학문제집 두 권 독파는 꿈도 꾸지 않는다.


출발이 늦었다고 해서 아이를 쉬지 않고 달리기 해 앞서가는 아이들을 따라잡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없을 테고.

그걸 인정하는 것, 내 욕심을 비우는 것,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어쩌면 나의 이런 태도가 윤이가 난독증을 이겨내게 된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첫째를 키울 때 나는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생각하는 보통 엄마들이 하는 착각 속에서 유년기 몇 년을 보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아이를 인정해야 했다.

그러다 학교 제도 따위 관심 없다는 큰 아이의 사춘기를 함께 겪으며 많은 욕심을 내려놓았다.

둘째 때도 남은 욕심을 버렸고, 셋째 때는 아예 마음을 비웠다.


아무리 등 떠밀어도 자신들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아이들과 넘어지고 깨지며 알았기에 넷째인 막내 때에는 더 빨리 수긍하고 인정했던 것 같다.


윤이는 스스로 하는 독서량이 많지 않다.

아직도 나와 책을 읽으려 한다.

일하고 돌아와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기다리는 윤이 때문에 누워서도 책을 읽어야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만큼 책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두 팔이 후들거리고 저렸다.

결국 누운 채 거치해서 읽을 수 있는 신식 독서대를 샀고 그 덕분에 나는 팔뚝이 더 두꺼워지지 않아도 됐다.


아이의 책을 읽어주며 성우까지는 못되더라도 목소리도 역할극처럼 다르게 하고 나름 재미있게 읽어주려 노력했다.

긴 시간 읽어가는 책에 목이 칼칼해져 마른기침이 나왔다.

때론 너무 졸려서 나도 모르게 같은 줄을 계속 읽기도 했고 잠꼬대처럼 책을 엉뚱한 내용으로 읽어서 아이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그때 잠에 취해 엉뚱하게 읽어 내려간 문장이 어쩌면 아이의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윤이는 지금 어느 정도 스스로 하는 독서에 익숙해서 더 이상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

가끔 보어를 빼먹고 읽거나 서술어를 변형해서 읽어서 문장을 모호하게 파악할 때가 있어서 그것만 조심스레 한 번 더 짚어서 읽어준다.


윤이는 나를 닮아 내성적임에도 상상력은 나 못지않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함께 읽었던 초등 저학년 동화책 두 권을 인물과 에피소드를 짝지어 연결한 후 책의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을 내게 보인 것이다.

그 이야기 구성과 각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를 내게 쉬지 않고 30분 넘게 이야기했는데 그건 대본이랄 것도 없었고 흔한 독후기록지도 없던 상태였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윤이가 얼마나 그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굴렸을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말하는 것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이 내용을 녹음을 하고 싶다고 하소연했을 정도다.

윤이는 녹음하면 쑥스러워서 이야기하기 싫어진다고 휴대폰을 꺼내는 나를 말렸다.


”이 이야기 정말 재미있는데 어쩌지? 엄마는 기록해두고 싶은데… 녹음 정말 싫어? “

“녹음하면 나 못하는데… 엄마 어차피 내가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요.”

아이는 씩씩하게 다음 스토리를 풀어낸다.

이런 윤이를 보니 윤이와 나는 난독증이라는 시련을 넘어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낭독“의 시대에 첫발을 딛는 것 같았다.


나는 윤이와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윤이가 상상하는 이야기를 내가 글로 옮겨주는 것.

우리 둘이 서로의 이야기를 덧붙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보는 동화 짓기 놀이를 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 첫 주제는 “윤이의 공책요정”이 될 것 같다.

윤이와 얼마 전 난독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어려움을 가진 친구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 시간이 있었다.

난독증을 가진 주인공 윤이가 공책요정을 만나게 되면서 글 읽기와 글쓰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판타지동화!

우리 둘은 신나서 끝말잇기처럼 이야기를 덧이어 갔고 어느덧 초입 부분을 구상해 두었다.


이 재밌는 놀이가 얼마 후 가시화 된다면 우리는 진정한 <난독의 낭독> 시즌 2에 이 이야기를 풀어볼 예정이다.


난독을 넘어 낭독으로 가는 길!


그때도 우리 윤이와 함께 웃고 울어 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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