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의 낭독]으로 시작해서 [우리 아이는 난독증입니다]로 끝맺음합니다
브런치북을 시작하고 써 내려간 저와 넷째 막내아들과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9화 연재후 몇 달 동안 이 글들을 다시 읽지 못했습니다.
쓰면서 많이 울었기 때문이죠.
사실 지금도 다시 읽을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난독증을 극복해서 잘 지내고 있는데도 말이죠.
처음 이 글의 브런치 제목은 [난독의 낭독]이었습니다.
좀 모호했죠.
제목에서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9화 연재후 조금 용기를 내서 브런치 제목을 바꿨습니다.
[난독을 넘어 낭독으로 가는 길]
이 또한 모호합니다.
저와 제 아이처럼 난독증을 겪는 아이와 부모님들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됐다면 제목은 좀 더 직관적이 여야 했지요.
하지만 글을 시작하고 글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저와 아이의 치유 쪽에 더 힘이 실려있었습니다.
힘들었던 그 순간들의 감정과 기억들이 더 휘발되기 전에 붙잡아 두고 싶은 목적이 더 컸어요.
그래서 제목 속에 저와 제 아이를 숨겼던 것 같습니다.
이 브런치북을 몇 달 묵혀두었더니 상처는 어느덧 딱지가 앉았어요.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와도 덜 아플 것 같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서 이제 드러내도 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연재 마지막 글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우리 아이는 난독증이었습니다.
글을 모르고 초등학생이 됐고 무지한 엄마는 아이가 조금 늦을 뿐 두세 달이면 눈의 틔여 곧잘 한글을 읽게 될 거라 위안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단순 한글 떼기가 더딘 게 아니었어요.
치료를 받아야 할 난독증이었습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아이의 한글 떼기가 더뎌서 고민 중인 양육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용기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이는 꾸준히 2년간 치료받아서 3학년 올라갈 때는 제가 담임선생님께 말하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초등 5학년이 된 아들은 책을 혼자 읽는 것에는 큰 즐거움을 못 느낍니다.
아직도 그때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도 진입 장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누구보다 상상력이 뛰어납니다.
저를 능가하는 이야기꾼입니다.
한글을 늦게 떼면서 아이는 세상을 이미지화하고 무슨 말이 쓰여있을까 혼자 고민하고 끝없이 상상해야 했을 겁니다. 그 두려운 시간을 아이는 상상력이라는 친구와 버텼을 겁니다.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 이 아이를 재미난 이야기꾼으로 만들어준 걸 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열심히 자음모음을 외우고 있을 우리 아이들에게, 초조한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며 아이와 함께 치료를 시작한 어른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난독을 넘어 낭독으로 가는 그 길.
함께 응원합니다.
용기 내어 이 글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자 브런치북 제목을 바꿉니다.
[우리 아이는 난독증입니다]
이제야 저와 제 아이를 온전히 드러낼 용기가 조금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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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우리 아이는 난족증입니다>의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