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01일 차]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만 헤세 [데미안]을 며칠 전부터 읽는다.
[싯다르타]를 읽으며 문학의 맛을 살짝 봐버린 독서초보자는 [삶을 견디는 기쁨]을 통과하며 [데미안]에 이른다.
몸이 아플 때 진통제 먹으며 읽어가는 책이라 그런지 싱클레어가 온갖 방황을하며 헤매서인지, 내 삶에서 일탈을 꿈꿨던 내 욕망이 썩어 곪아가서였는지 나는 결국 나가떨어졌다.
며칠간 독서기록을 남기면서 200일 차로 이 연재를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몸이 아프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몇 장 더 읽고 습작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핑곗거리를 기웃거리며.
그러다 어제 200일 차를 채우자마자 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정말 아침독서랑 매일 글쓰기 그만할 거니?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핑계고 그냥 예전처럼 편해지고 싶은 건 아니고?’
이 질문은 내 안에서 나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싱클레어에게 나타나 말을 거는 데미안처럼.
새벽 응급실 침대에서 폐렴으로 인해 산소호흡기 치료를 받으며 생각한다.
아파도 201일 치를 발행해야겠다.
그냥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야겠다.
입원준비물로 책 목록을 나열했더니 그냥 편히 쉬지 무슨 책이냐며 둘째 딸이 걱정 섞인 타박을 한다.
심심해서 그렇다는 이유로 얼버무렸다.
원래 입원할 땐 책이 필수 항목 아니던가? 한 장도 안 펼쳐볼지언정. 책이 내 보호자고 내 친구다.
새벽에 병실로 올라와 침대 독서등을 켠다.
앞서 읽었던 부분을 다시 훑어 읽고 진도는 더 나가지 않는다. 줄거리 진도를 뺄 만큼의 정신과 체력은 되지 않기에.
유튜브에서 [데미안] 낭독을 틀어 이어폰을 한쪽에 끼고 누워 첫 문장부터 듣는다.
눈으로 안 읽고 누가 읽어주니까 좋다.
근데 확실히 번역마다 느낌이 다르고 눈으로 읽는 것과 소리로 듣는 게 다르다는 걸 알겠다.
분명 읽었는데 낯설게 들리기도 하고 더 생생하게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기도 한다.
싱클레어는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데미안에게 끌리면서도 거부하고 그러면서도 그리워하는 혼란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필 아플 때 이 부분을 읽으니 마치 내가 싱클레어랑 한바탕 술에 취해 널브러져 골골거리는 것만 같다. 아… 물론 나는 진짜 아파서 골골거리는 거다.
방황하는 싱클레어와 나에게 데미안이 말한다.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아.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마음속으로 내 안의 데미안에게 말을 걸어본다.
‘데미안…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난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거겠지?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 그게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 내 안의 목소리를 더 잘 들어볼게. 귀 기울여 들을게. 널 만난 게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괜히 생각이었어. 꽤나 오랜 시간 네 말에 귀 기울이지 못했지만 내 인생에 다시 나타나줘서… 이렇게 내가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호흡기치료하는 동안 앉아있어야 해서 그 시간을 이용해 휴대폰으로 오늘 글을 쓴다.
더 이상은 무리다. 열이 다시 오른다.
누워서 멋진 목소리로 낭독해 주는 데미안을 다시 들어야겠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첫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