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04일 차] 크리스티앙 보뱅 <그리움의 정원에서>
병원은 생각보다 하루가 일찍 시작된다.
새벽 5시에 피검사와 주사 바늘 위치를 바뀌기 위한 간호사 처치가 있어서 잠이 깼다.
오늘 오전에 기관지 내시경을 하기로 해서 좀 긴장된 상태다.
일반적인 감기로 인한 폐렴이 아니라는 소견이 기정화 되면서 조직검사 이야기가 나왔다.
수면내시경으로 할 거라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도 기침이 많이 나와 도중에 깰 수도 있다고 하니 살짝 걱정된다.
마음이 복잡히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독서등을 켜고 책을 펼친다.
잠시 후 전체 점등을 알리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병실 불이 켜진다.
지금은 새벽 6:30분.
크리스티앙 보뱅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읽는다.
보뱅이 사랑했던 여인 지슬렌이 44세의 나이에 파열성 뇌동맥류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그녀를 향한 추모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쓴 글.
사실 그녀는 두 번의 결혼을 했었고 자녀가 있는 상태.
보뱅은 지슬렌을 지켜보며 가장 바쁘고도 고요한 방식으로 사랑했다는 표현이 책 소개에 나온다.
짝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사랑은 오늘 읽는 부분에서 보뱅의 마음이 숨김없이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바로 '질투'라는 감정이다.
삶 전체를 사랑하던 사람 지슬렌, 그런 지슬렌을 사랑하는 보뱅.
그의 솔직한 감정을 읽어본다.
질투는 눈물과 비명으로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증명한다고 믿지만,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편애를 표현할 뿐이다.
"질투에 세 사람이 연루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두 사람도 아니다. 불현듯 자신의 광기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39면)
너의 사랑과 지성을 사랑했다
보뱅이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보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고백이 나온다.
"화가 난 아이는 죽기 위해 보름의 시간이 필요했다. (...) 질투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내 불평 앞에서 네가 터뜨리던 웃음 덕분이었다. 독선적인 아이의 마음에 네 웃음의 정수가 쏜살같이 날아와 박혔고, 너의 순수한 자유가 불현듯 내게 모든 길을 열어주었다. 독선적인 아이가 죽은 후, 그리고 이 죽음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어린 시절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방랑하는 사랑과도 같은 어린 시절, 웃음 가득하고 지위와 소속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그런 어린 시절을." (42면)
질투라는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순수한 자유와 웃음 덕분이었다고 말하는 보뱅.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삶 자체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보뱅의 <그림움의 정원에서>를 읽어가면서 '지슬렌,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순수한 궁금증이 커져간다.
당분간 보뱅의 마음을 따라 읽어가며 삶을 사랑했던 지슬렌과 그런 지슬렌을 사랑했던 보뱅의 삶을 더 알아가는 가는 시간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