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바닥만큼의 책임"

[읽고 쓰는 삶 205일 차] 안희제 <식물의 시간>

by 윤서린

병원에 가져온 책이 몇 권 되지 않아서 도서관의 전자책을 대여해서 읽기로 한다.


안희제 <식물의 시간>

표지에 그려진 식물의 가지와 다양한 잎사귀들이 뒤엉킨 모습이 시선을 잡는다.

미리 보기 몇 페이지를 읽다가 작가가 궁금해서 네이버 검색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

이미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분이다. 하지만 어느 경로로 팔로우한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인류학 연구자, 문화비평가라는 소개가 있고 몇 권의 책이 함께 소개된다.


책의 머리말에 안희제 작가가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크론병이란 소화관에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으로 우리 몸의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발병한다고 알려진 자가면역질환을 말한다.


작가에게는 자기 몸도 쇠약한데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일을 한다는 건 용기이고 도전이다.

코로나 시기 아빠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서오릉의 화훼 단지에서 '청마삭'이라는 분재를 보고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갈등한다. 그런 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빠가 선뜻 5 만원의 값을 치르고 안겨준 화분.

그녀는 처음으로 분재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고 반려식물을 키우게 된다.


분재는 '분에 심음'이라는 말뜻이지만 이제는 문화예술의 한 가지 양식으로 발전한 형태로 식물을 특정 규칙과 기준에 맞춰 변형하는 일까지 포함하고 있다. 인류가 화분에 나무를 옮겨 심은 일은 기원을 따져보면 무려 4000년 전 고대 이집트, 기원전 1000년 인도까지 거슬러가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하니 놀랍다.


엄마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와 화훼단지를 드나들며 작은 분재 화분을 입양한다.

아빠와 함께 공유하는 취미가 생겼다는 것도 안희제 작가에게 한 가지 즐거움이 추가된 기분 좋은 일이다.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만큼 이런저런 부담도 늘었다. 금전 지출은 둘째 치더라도 책임지 고 신경 써야 할 생명이 늘었다. 하루라도 실수하면 나무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초보의 두려움도 날로 커져갔다.

하루하루 벌벌 떨며 물을 주고, 아침저녁으로 식물들과 흙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나는 점점 내가 정말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은 겨우 한 손바닥만큼일지도 몰라.


이 부분을 읽다가 문득 우리 집 화분들이 생각났다.

토요일에 입원했으니 나흘 넘게 물을 주지 못했다.

나머지는 흙에 심겨있으니 그나마 덜 걱정스러웠는데 책장 위 높은 곳에 위치한 화분 하나가 마음에 걸린다.

그 녀석도 분재화분처럼 작은 자갈로 채워진 화분에 심긴 아이인데 배수가 엄청 잘 된다.

한여름에는 매일 물을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이파리가 축 늘어져서 '나 이러다 죽는다'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녀석이다.


나도 식물 키우기는 소질이 없어서 많은 화분들을 데려오고 죽이고를 반복한다.

얼마 전에도 빈 화분들을 치우면서 다시는 식물을 늘리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또 초록초록한 아이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화훼농원에서 이고 지고 올게 분명하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내게 뭔가 선물하고 싶은 날에는 서점이나 화훼농원을 가는데 이제는 하도 식물을 죽인 경험이 많아서 되도록 생명력 강한 화분만 데려오려고 한다. 이왕이면 수경식물로 키울 수 있으면 나한테 최고의 반려식물이다.


화분을 하나씩 들인다는 것은 내가 책임질 것들을 늘린다는 말과 같다.

신경 쓰고 보살피고 사랑해줘야 한다.

적절한 무관심과 사랑이 동반되어야 하고 그 균형이 잘 맞아야 식물을 잘 돌 볼 수 있다.

어쩌면 식물을 키운다는 건 인간으로서 좀 더 다정해지는 걸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화분마다 적당한 습도, 온도, 햇볕이 필요하듯 누군가를 대할 때도 그 사람에게 맞는 온도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면서 욕심난다고 너무 많은 것들을 내 품에 다 안고 갈 수 없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것들을 추려내고 그것들을 소중히 돌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내 손바닥을 바라본다.

내가 쥐고 싶어 했던 관계가 아닌 지금 내 손에 들려진 책임질 소중한 관계를 손금처럼 새겨본다.

또한 날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잎사귀처럼 파릇한 우리들의 관계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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