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06일 차] 헤르만 헤세 <데미안> 명문장 총정리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된 <데미안, 한 젊음의 이야기>는 헤르만헤세가 마흔이 넘어 출간한 책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전 세계적으로 읽히는 책이고 워낙 <데미안>이라는 책 제목과 명문장이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책. 그래서 청소년기에 접하지 않았다면 읽지 않고 넘어간 사람들도 많았을 테고 나 역시 그랬다.
나는 긴 책을 읽어내는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이기에 고전이나 장편소설은 거의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 헤르만헤세의 글도 그의 산문집을 통해 처음 접했다. <삶을 견디는 기쁨>을 읽고 그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니 그의 작품도 당연히 관심이 갔고 도서관에서 <싯다르타>를 빌려서 읽은 게 제대로 된 입문이었다.
<싯다르타>가 나의 인생책의 반열에 오른 것은 당연했고 그 후 그의 작품을 차근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은 <데미안>을 청소년 추천 도서라고 말하니 마흔 후반인 내 나이에 이걸 읽는 게 맞는지 자꾸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읽어보니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현재 사회의 모습과 나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준비된 답변처럼 그의 문장이 다가왔다.
1919년 작품, '에밀 싱클레어'라는 작품 속 화자의 이름으로 가명 출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문장이겠지만 총정리하는 마음으로 오늘 시간이 오래 걸려도 독서기록에 다시 남겨본다.
책을 열자마자 이 문장이 나오는데 이걸 읽고 어떻게 이 책을 안 읽고 다시 덮을 수 있겠는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는 헤르만헤세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있음을, 내 존재가 소중한 존재임을 아래 문장 통해 다시 알게 되고 큰 위로를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하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누구 속에서든 정신은 형상이 되고, 누구 속에서든 피조물이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속에서든 한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싱클레어가 유년시절 부모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거짓말과 비밀이 생기며 고백하는 부분의 이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상처는 보듬어지고 치유된 것 같지만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고 있고 남몰래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는데 누군가 내 마음의 상처를 알아주는 느낌이 들어서 울컥한다.
"누 군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우리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은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있으며 계속 피 흘린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한테 편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원하지
오래된, 해묵은 이야기들은 늘 사실이야.
그러나 언제나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언제나 사실대로 설명되지도 않지
그 누구도 두려워 할 필요 없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준 데서 비롯해.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나에게 주체적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주는 문장도 나온다.
밑줄 쫙~!!
그런 두려움이 우리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거야.
그런 건 떨쳐 버려야만 해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인간에게 거슬리는 것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자립적으로 살아가려 고통받는 것보다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쉬운 길이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가는 길에 선뜻 발을 들이길 겁내한다. 나조차도 그냥 지금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을 다 잡아 본다.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었다
우리가 인생의 분기점에서 느끼는 주변 세계와의 갈등, 고독에 대한 감정이 우리 인생을 끈질기게 남아있음을 안타까워하는 문장도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늘 후회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했던 나날들. 이제는 그만 털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는다.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바라봐.
그러면 그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네가 더 잘 알게 돼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고.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살 때에만 가치 있어
'금지되었다'라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하지 않아,
바뀔 수 있는 거야.
우리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 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자아"를 발견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며 포기하지 말고 해나가야 할 과업이 아닐까?
이 문장을 읽고 나 스스로에게 더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하고 핵심적인 문장이 아닐까 한다. 번역가는 "투쟁"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헤르만헤세가 말하려는 원어에 가깝게 문장을 그대로 번역에 살렸다고 말한다. '껍데기를 깨다'라는 독일어가 있지만 굳이 "투쟁"이라는 단어를 헤르만헤세가 썼기 때문에 그 치열함을 문장으로 살려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무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것으로 인도한 것이다."
"(...) 가능성을 예감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그 가능성들은 자기 것이 된다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이 문장을 읽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행동, 말....
어쩌면 그게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안의 검은 그림자였을까... 하는.
그걸 들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 수치심, 그 어떤 것들이 나를 그렇게 반응하게 하지는 않았나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네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해,
그러고는 정말로 네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
그걸 하면 돼.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에게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169면)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결코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편 가르기식 연대를 꼬집는듯한 문장도 보인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왜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 답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사람의 기억은 개인이 편집한 상태로 저장된다고 한다.
내가 그토록 괴로웠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 삶,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개 젓는 그 시절.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정말 어렵고 힘든 시간들만 존재했을까? 분명 눈부시게 아름답고 웃음 짓던 찰나의 순간도 분명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그 길이 쉬어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하면 안 돼요.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는데요.
언젠가 그것은 완전히 당신 것이 될 거예요.
당신이 꿈꾼 대로요. 당신이 변함없이 충실하면요.
내 꿈을 찾는 것, 나 자신을 찾는 것, 그것이 인간의 과업이라면 나는 어느 지점에 와있는 걸까?
내가 찾아가는 꿈에서 조금은 벗어나거나 돌아간다고 그게 틀린 것일까?
길이 아닌 곳에서 어쩌면 새로운 꿈을 찾는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닐까?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그저 나 자신을 믿으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내 삶과 꿈을 향해 나가는 것.
그것이 조금은 더디고 늦더라도 옳다는 것을 이 문장을 통해 다시 배운다.
"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었어."
"당신이 믿지 않는 소망들에 몰두해서는 안 돼요. (...) 아니면 완전히 올바르게 소망하든지요. 일단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성취를 확신하며 소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성취도 있는 거예요" (196면)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리지 않고 스스로 끕니다." (197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계속 되뇌며 고민한다.
연인 간의 부부간의 사랑이 아닌 포괄적인 "사랑"에 대해,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이 열려있는지, 사랑이라는 마음을 받아들이고 건강히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에게 항상 묻는다.
나는 사랑을 불멸하게 소유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사랑받길 원하기보다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한 싱클레어가 부상을 당하고 의식이 희미할 때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된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날 거야. 너는 어쩌면 다시 한번 나를 필요로 할 거야. (...) 그럴 때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어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알아듣겠니?"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데미안의 마지막 '그(Er)'라는 단어는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그"라고 대문자로 표기함으로써 '자아의 소중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번역자의 해설이 달려있다.
우리 마음속에 누구나 "데미안"을 가지고 있다.
다만 기귀울여 듣지 않아 자각하지 못하거나 또는 자기 안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를 애써 거부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헤르만헤세가 첫 장에서 말하듯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그것을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 아닐까. 비록 그 길이 "그토록" 어려울지라도 자신을 믿고 충실히 자신의 삶을 완전히 다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아닐까 생각한다.
폐렴으로 입원한 지 6일 차인 오늘 홀로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독서글을 마무리한다.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주의를 줘서 집에서 좀 쉬려고 했다.
하지만 오자마자 화분에 물 주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몸이 지친다. 그래도 이렇게 밑줄치고 감동받은 <데미안>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타이핑하며 내 생각도 함께 적으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이번에 몸이 아프면서 든 생각은 내 꿈을 위해 난 무엇을 시작하고 꾸준히 해야할까, 어떻게 건강하게 삶을 유지할 것인가, 무리하지 않고 내 삶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봤다.
아플 때 읽었던 책이라서 그런지 원래 헤르만헤세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 독서가 마음과 영혼을 꽉꽉 눌러 채워주는 느낌이다.
역시 집이 최고다. 산소호흡기 없이 숨 쉴 수 있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온 세상이 다 예뻐 보인다. 비록 집은 엉망이고 치울 일도 걱정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