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사람 207일 차]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우연이란 참 이상하게 얽혀서 내 앞에 나타나는 것 같다.
최근 박정민 배우의 <쓸만한 인간>을 사서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몇 번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두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나는 영화를 안 보니 그가 어떤 연기를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저 제목에서 느끼지는 위트가 좋아서 어떤 사람인지 살짝 궁금하던 터였다.
그러다 얼마 전 동네 독립서점에 들렀다가 내가 살 수 있는 책이 이것뿐이라 들고 왔던 적이 있다.
앞서 단편소설을 여러 권 추천받아 이미 내가 사고 싶은 건 다 산 후에 재방문이어서 더 그랬다.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다.
누군가의 글을 읽다 보면 괜히 어떤 문장에서 그 사람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이 쌓여버린다. 내게 박정민 배우가 그렇다.
그가 "넷플릭스 왜 보나, 성해나 소설 읽으면 되는데"(?)라고 추천사의 메가 히트 카피를 내 뇌리에 꽂는 바람에 안 사고 빌려 읽으려던 성해나 작가의 <혼모도>도 산 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 유튜브 <민음사>에 <무제> 출판사 대표로 나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또 살짝 반한다.
그런 그가 추천한 안규철 작가의 <사물의 뒷모습>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렇다.
자신이 어떤 그림이 좋아서 그걸 소장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게 누구 작품인지 잘 몰랐다. 그러다 훗날 이 책을 읽었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작품이 이분 작품이었다. 글도 그림도 너무 좋아서 좋아하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근데 제목이 낯설지 않다.
내 책장에 비닐채 싸여있는 책, <사물의 뒷모습>이 번뜩 떠오른다.
한 달 전쯤 브런치스토리에서 인연이 된 <엄마의 유산 2>의 출간 축하를 위해 <위대한 시간>에 참여하러 낯선 동네에 갔을 때였다. 행사가 끝나가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역과 이어진 곳에서 만난 <알라딘> 서점 한 구석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투명한 비닐로 싸인 책. <사물의 뒷모습>
대부분 이런 책은 내 경험상 그림이나 사진이 있고, 안의 내용은 심플하며, 쓱 훑고 지나가면서 사지 않고 내려놓을 가능성이 있는 책, 혹은 그 안의 내용이나 그림, 사진이 좋아서 사람들이 자꾸 펼쳐보기에 책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는 책. 책표지가 약해서 오염이나 망가질 우려가 있는 책, 새책에 준하는 책, 바로 보물같은 책이다.
내가 왜 이 책에 대한 사설이 이렇게 긴가 하면, 나는 이 책을 내 운명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는 확신한다.
자신의 이야기와 손그림이 있는 책,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나를 그 길로 이끌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상상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드디어 인생의 선물 상자 같은 이 책의 비닐을 벗기고 읽는다.
표지그림에서 사다리를 탄 남자를 살짝 손으로 가려본다.
벽에 설치된 나무선반들이 모두 반듯하지 않고 기울어있다.
그렇게만 보면 이건 삐뚤게 잘못 설치된 선반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높은 사다리를 놓고 한 손에 공을 든 남자가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이 선반의 기울기와 단차로 위에서 아래로 미끄럼을 타듯 가속도를 붙이며 목표에 골인한다.
그런데 목표지점에 있는 양동이가 불투명해서 얼마만큼의 공이 성공해 그 안에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주변에 실패해서 떨어져 있는 공이 3개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남아있는 공은 실패의 결과물이 아니다.
남아있는 도전의 횟수다. 나는 그림 속 남자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공 하나만 들고 계단에 오른 모습을 바라본다. 나 같으면 한 손에 공을 더 들고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올랐을지도 모르는데 그림 속 사람은 요행을 바라거나 빠른 결과를 내려고 하지 않는 소신 있고 성실한 사람으로 보인다.
사다리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겁내지 않고 오르는 마음, 포기하지 않고 다음 걸음을 옮겨 오르고 또 오른 그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
실패인 것 같았던 지난날의 내 결과물이 나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물로 바뀌는 순간!
그러니 실패가 아니라고 오히려 기회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그림에서 위로를 받는다.
책머리를 읽는다.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만이
내게는 예술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다.
뛰어난 능력과 감각으로 대리석 덩어리에서 다비드를 발견하고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로 글이 시작된다.
조각가란 돌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사람이었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기억될 것과 잊힐 것을 구분하고
그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일이었다.
세계는 형태와 형태가 아닌 것,
남는 것과 버려지는 것으로 나뉜다
"기억될 것과 잊힐 것을 구분하고 그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일"이라는 말에 묵직한 울림이 있다.
어찌 보면 내 삶에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과 잊고 싶은 것을 편집하는 주체는 '나'이고 내가 쓰는 글이나 그림 또한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 버릴지 선택하는 것도 '나'다.
그 경계를 매번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
매일 아침 책을 몇 장이라도 읽고 좋은 문장을 수집하고 내 생각을 몇 줄 곁들여보면서 내 사유의 깊이도 조금씩 성장해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
작가의 말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매일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말과 글과 사유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미켈란젤로와 그의 후배들이 세상의 모든 대리석 속에 숨어 있는 형태들을 끌어낸 지금 우리는 결국 그 잔해들 속에서, 버려진 파편과 먼지 속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고"(12면) 있다는 말처럼.
나는 오늘 무엇을 기억으로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나는 오늘 몇 번의 "천사가 지나가는 순간"을 알아차리며 어떤 <사물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늘 쓰고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