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08일 차] 미셀 투르니에 <외면일기>
병렬독서가인 나는 오랜만에 다시 미셀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를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서 건져낸다.
예전에 독서기록을 한 게 있어서 브런치스토리에 돋보기 기능(검색)을 이용해 내 글을 찾아본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나 말고 <외면일기>에 대해 쓴 다른 작가님들의 글이 눈에 띈다.
매번 내 글쓰기에 급급해서 다른 작가님 글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같은 책을 읽고 어떻게 서로 생각이 연결될지 궁금하다. 색다른 사유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있고.
이 책은 서울나들이 갔을 때 들린 <알라딘>에서 약속시간에 쫓겨 금방 사들고 나온 책이었다.
비닐에 싸여있어서 작가 검색도 못하고 목차도 못 본 상태였는데 단순히 <외면일기>라는 생경한 단어와 "김화영 옮김"이라는 번역가의 이름을 보고 망설임 없이 들고 나온 책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마왕>을 쓴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철학가. 나에게는 500페이지가 넘는 그의 작품을 읽는 게 너무 큰 진입장벽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문학의 세계를 모르는 내가 이제라도 이렇게 서서히 좋은 작가들은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아니나 다를까 그가 수첩을 들고 다니면 기록한 일기는 그 시대의 풍경, 사람, 생각, 자연, 세계에 대해 작가의 시선과 관찰, 짧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사유와 위트가 적절히 섞인 글이었다.
다시 김화영 번역가 이야기로 돌아간다.
내가 이분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된 것은 어느 책에서 인터뷰 글로 이분의 생각이 꽤 멋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책 제목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여러 인물들 사이 이분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만 각인된다. 그래서 프랑스 문학이 번역된 책은 "김화영"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믿고 산다. <걷기 예찬>도 내가 좋아하는 자연과 삶이라는 무드와 김화영 번역가가 직접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번역을 하기로 한 사실에 끌려서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프랑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고 알베르 카뮈전집 20권을 20년 넘게 번역한 분. 아마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들은 익히 그분을 알고 계실 테지만 이제 책이라는 걸 제대로 읽기 시작한 몇 달 된 독서초보자는 얼마 전에야 이분의 존재를 인식했다.
같은 소설을 다양한 버전으로 번역가들의 문장을 비교한 게 있는데 나는 좀 예스러운 느낌이 들어도 문학적인 느낌을 살린 김화영 번역가의 번역을 선호하는 편이다.
독서글에서 김화영 번역가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이유는 <외면일기> 뒷부분에 미셀 투르니에 작가를 만나 인터뷰한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먼저 읽었으면 <외면일기>에 대한 감상이 또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뒤늦게 읽은 게 아쉽다.
물론 책의 몇 퍼센트밖에 읽지 않았으니 그 감상에 푹 젖을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김화영 번역가는 미셀 투르니에를 여러 차례 찾아가 친분이 있는데 이번 방문 인터뷰도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역으로 마중 나온 80에 가까운 트루니에의 차를 타고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거주하는 사제관에서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서 <외면일기>를 출간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작은 출판사를 하는 투르니에의 친구가 작가의 여행기 겸 일기인 노트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졸라서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가 조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김화영 번역가가 듣지 못하고 이 원고를 이날 보지 못했다면 이 책은 한국에 그렇게 빨리 소개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2004년 1월 출간)
작가는 항상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생각나는 이것저것들을 적는데 "여행 중에 관찰한 것, 생각난 것, 책 읽다가 힌트를 얻은 것 등도 같이 적혀"(322면) 있고 이런 수첩이 30여 권이 된다고 한다.
이 중에서 편의상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로 나눠 "아무것도 덧보태지 않고 그냥 추리기만 한 것"으로 <외면일기>의 원고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건 책으로 열기 위해서 아무것도 덧보태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의 날것 그대로라는 뜻인데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손 메모를 컴퓨터가 아닌 타이프로 쳐서 쓴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타자기는 아닌 것 같고 나름 최신형이라 (2002년 기준) 타이핑 소리가 잘 나지 않아 좋다고 말한다.
투르니에가 빅토르 위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시 한 부분을 외워 들려준다.
- 빅토르 위고 [세기의 전설] 속에 실린 시의 일부
"이런 시를 써놓으면 나같이 늙어가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밖에..."라고 말하는 투르니에.
김화영 번역가는 그의 책 <짧은 글 긴 침묵>을 번역하면서 76세까지만 살 것 같다며 자신의 추도사를 책 끝에 써넣은 투르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드디어 그 나이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셨으니 축하드립니다.". (그의 인터뷰 당시 나이 78세)
"하이고, 맙소사. 난 그만 죽음을 놓치고 말았어요."
그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 연세에 돌아가셔서 자기도 그때 죽지 않을까 생각해서 써 놓은 거라는 말에 죽음을 당황하지 않고 준비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2016년에 사망했으니 91세로 장수하신 투르니에.
사람은 이렇게 매일 뭔가를 배우는 거예요
김화영 번역가가 글에서 고백하듯 투르니에 작가는 사전을 펼쳐 놓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자 "치열한 관심과 소설가 특유의 관찰력"이 있다고 한다.
독신으로 살았지만 아이들을 좋아해서 자신의 작품을 어린이용으로 출간하는 작가, 노쇠해 자신의 다리를 절면서도 인근 아픈 아이들만 수용하고 있는 병원의 초대에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작가, 오후 3시에 점심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자상한 관심이 있는 작가 투르니에.
이런 작가의 배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니 그가 쓴 일기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들린다.
마지막 오늘 읽은 그의 일기의 몇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삶이란 '여러 시기들'의 연속이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삶을 견디려거든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라"(프로이트 ), 삶의 필요불가결한 요소인 죽음, 충만하고 온전한 삶은 그 스스로의 죽음을 내포한다.
알렉상드르(아홉 살) :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해?
나 : "그럼, 물론이지!"
알렉상드르 : "아 그래? 나도 그렇게 믿어. 그러니까 우리는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다 같이 만나겠네."
아홉 살 어린아이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를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겠다고 말하는 건 그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2016년에 91세의 나이에 하늘로 떠난 작가 미셀 투르니에, 그는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여행일기를 작성하고 있을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미셀 투르니에의 작품[짧은 글, 긴 침묵]에 미리 써둔 묘비명을 옮겨본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김화영 번역가도 어느새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니 우리는 운이 좋으면 그가 번역하는 몇 권의 새로운 프랑스 작품들을 더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번역가님께 좋은 작품들을 많이 번역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부디 천천히 나이 드시길, 건강하시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