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12일 차] 박연준 시인 에세이<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우연이 연속되면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목차를 읽다가 눈이 번뜩 떠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미쳤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말이 마음에서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순서상으로 되짚어 본다.
책방 무사의 대표이자 가수 요조 님을 몇 년 전부터 좋아한다.
그녀의 솔직한 글을 좋아하는데 강연을 듣고 더 좋아하게 됐다.
박연준 시인의 <듣는 사람>을 서점에서 구입해서 독서 40일 차에 짤막한 독서 후 기록을 남겼다.
훗날 요조 님이 박연준 시인을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을 추천사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9일 차에 메리 루플의 산문집 <가장 별난 것>을 읽고 너무 좋아서 신나게 독서노트를 썼다.
팟캐스트를 듣다가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이야기가 나와서 요조 님이 떠올라 책을 주문했다.
어제 도착한 책의 포장을 풀고 책의 목차를 훑어보다가 "메리 루플- 내리는 눈처럼 무구히 시작하는 태도"를 발견한다.
뭐지? 뭘까? 요조, 박연준, 메리 루플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가 나와 겹치다니!
"비슷한 결"의 만남!
좋아하는 사람 옆에 좋아하는 사람, 그 옆에 또 좋아하는 사람.
필연 같은 우연! 이것은 너무나 설레는 운명 같은 만남!
역시나 메리 루플을 언급한 부분을 먼저 읽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시인이 새가 되기를 열망하지만,
시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새는 없다.
- 메리 루플 <가장 별난 것>, 카라칼 67면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여기서 또 만나다니.
박연준 시인도 글의 첫머리를 메리 루플의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너무 슬펐다.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 멀리 날아올라 떠나고 싶다는 생각, 제 목소리로 울 수 있는 새가 되고 싶었다. 마음속에 새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새는 누군가를 열망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묵묵히. 새가 되지 못한 어떤 이들은 이 문장에서 얼굴을 묻고 운다. 새보다 더 가냘프게.
"이 문장을 읽고 울었다. 얼굴을 손에 묻고 울었다. 손은 부드러운 그릇처럼 얼굴을 받아준다. 손은 얼굴을 끌어안는다". (182면)
박연준 시인이 메리 루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한 존재의 뭉툭한 마음 귀퉁이를
뚫어주는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메리 루플은 그런 일을 한다.
이게 그녀의 일이다."
(184면)
- 메리 루플 <가장 별난 것> 13면
메리 루플의 강렬한 첫 문장이 박연준 시인의 글에서도 언급된다.
나 역시 이 문장에서 힘을 느꼈는데 나의 부족한 언어로는 미처 표현을 못했었다.
다만 그 느낌을 남겨두기 위해서 독서노트에 과감하게 이 문장을 써 놓았더랬다.
박연준 시인이 내 마음에 일어난 동요를 대신 표현해 주는 것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이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 문장이 책을 열고 걸어 나오는 첫 순간, 내리는 눈처럼 무구히 시작하는 태도에 반한다. 열 번이고 백번이고 반하고야 만다." (187면)
'나만 이 문장에 반한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또한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를 길어 올려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시인이고 작가구나 싶다. 메리 루플과 박연준 시인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딱 붙어서 내 마음 주머니에 들어온 것 같다. 나도 내 마음 주머니를 이들의 글과 사유로 뚫리고 싶다!!
세상엔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
자신의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와 없는 작가,
메리 루플은 전자다.
이상한 일이지.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다.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박연준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188면)
사실 나는 메리 루플을 잘 모른다.
이제야 겨우 그녀의 짧은 글 몇 편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만 밑도 끝도 없이 반하고 말았다.
어떤 작가의 책을 읽다가 다른 작가를 알게 되고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작가를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작가가 마침 내가 첫눈에 반한 작가라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 아침에 이 책을 읽다가 혼자 너무 신나서 흥분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박연준 시인의 고백 같은 글을 읽으며 다시 메리 루플의 책을 펼쳤다.
박연준 시인과 내가 같이 밑줄 친 미셀 루플의 문장을 찾아 읽어보느라 미처 이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출근했다.
퇴근 후 다시 아침의 설렘을 느끼며 독서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내가 왜 메리 루플에게 반했는지 그녀의 문장 하나를 놓고 간다.
삶을 살아왔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 메리 루플 <가장 별난 것> 25면
곧 그녀의 또 다른 책과 문장을 소개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