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 미래로 보내는 선물

[읽고 쓰는 삶 214일 차]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by 윤서린

어느덧 가을비가 익숙해지는 날씨가 되었다.

어제 병원 가서 피검사와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주일 정도만 더 약을 먹으면 되고 한 달 후에 폐사진을 다시 찍어서 확인한다고 한다.

기분이 좋아서 나를 위한 선물로 책방에 갔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찜했던 작가들의 책을 한 아름 안고 집에 돌아오는데 그 안에 김신지 작가의 책이 한 권있다.


얼마 전에 독서기록에 쓴 <제철행복> 김신지 작가 맞다.

최근 에세이분야 작가로 가장 좋아하는 분이기도 하다.


늘 기록에 대한 열망은 있는데 매년 실패하고 있는 나다.

이유가 뭘까?

우선 내 강박이 문제다.

예쁜 글씨체로 단정하게 기록해야 한다. (내가 악필이라 그렇다)

분야별로 기록해야 하며 기록 뒤에 이어서 쓸 여지의 추가 공백이 무한 존재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이 부분을 해결하는 방법을 발견했지만 이곳에 기록을 꾸준히 하지 않는 이유는 예쁘지 않아서다)

기록 노트 자체의 물성이 예뻐야 한다.

세월이 지나도 같은 크기 디자인의 노트로 기록해서 정렬을 맞추고 싶다.

기호는 통일하고 색깔마다 주제, 소재, 중요도에 따른 색을 쓴다.

그 외 가죽 표지였으면 좋겠고, 미색의 종이, 똥이 나오지 않는 볼펜, 만년필 글씨가 뒷면이 비치지 않는 종이, 비뚤어지지 않는 선, 글자 수정 테이프 자국을 남기지 말 것 등...


학창 시절에 어느 정도였냐면 글자가 틀렸거나 볼펜 똥이 나왔거나 줄이 비뚤어지면 그 페이지는 더 이상 보기 싫었다. 그래서 칼로 잘 오려보는데 그래도 티가 나면 그 다이어리는 영영 나와 작별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몇 장 쓰고 쟁여두기의 반복.

매년 다이어리를 사지만 한 권을 온전히 채우지 못하는 나.


세월이 지나 지금은 그런 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

그 예가 책에 자 없이 밑줄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문구점에 가면 15cm 자를 구경하고 사 온다.)

책은 읽어야겠고 밑줄도 쳐야 되는데 자를 올려놓고 밑줄을 친다? 지금보다 더 진도가 안 나간다.

만약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자를 옮기는데 펜이 번진다면 그것은 내게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자를 쓰지 않고 비뚤어도 밑줄을 긋기로 마음 먹고 요즘은 그렇게 독서를 한다.


어제 이 책을 안고 돌아와서 20년 전에 쓴 육아일기와 싸이월드에 기록했던 글을 오랜만에 펼쳐서 읽었다.

그때 당시에도 내 손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휴대폰으로 기록했고 그것을 프린트해서 한 권으로 갖고 있다.

별별 사건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내 기억에서 사라진 일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꾸준히 이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우울증이 시작된 이후로는 거의 아무 기록도 쓰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꾸준히 사진은 찍어두었다는 것.

하지만 사진은 그때의 내 감정까지는 아쉽게도 다 기록해주지 못한다.

김신지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기록에 대한 열정을 다시 품고 싶다.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


메모가 한 알 한 알의 구슬이라면,
기록은 그것을 꿰는 일


기록은 삶이 건네는
사소한 기쁨들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돕는다


기록해 둔 '지금'은 분명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려줄 테니까요.


매일 자신의 삶을 기록하면서 사소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

자신의 기록으로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꾸준히 내 삶을 가꾸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기록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으니까요

조금 비뚤어진 글씨더라도 칼같이 줄 맞춰 쓴 단정한 글이 아니더라도 괜찮을지 모른다.

내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말이다.

요즘같이 모두 타이핑으로 글씨를 쓰는 시대에 제대로 인간미 흐르는 손글씨 기록물이 더 가치가 있어질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지 모른다.

하루 두 세줄이라도 손글씨로 뭔가를 기록해보고 싶다.


매일 조금씩 '나'를 기록하고 싶다.

내 감정을 오롯이 간직하고 싶다.

미래의 나에게 오늘의 나를 선물하고 싶다.


새벽에 2010년에 썼던 내 일기를 펼쳐 읽고 놀랐다.

"요즘 나의 관심사"에서 언급한 손바느질, 책 고르기, 손그림, 들꽃 그림과 손글씨....

15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일들을 사랑하는 내가 놀랍고 아직 제대로 실행을 못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부디 10년 후에는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쓰는 사람, 사부작 거리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 책을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기! 그리고 그 여정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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