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소란'을 밑알로 삼기

[읽고 쓰는 삶 215일 차] 박연준 산문집 <소란>

by 윤서린

산문은 시인의 마음을 풀어놓은 풀이집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시를 읽기 전에 시인의 산문을 먼저 읽는다.

사람을 먼저 들여다보고 시를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시인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내 마음 발자국을 잠시 포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시를 잘 모르지만 나도 가끔 시를 쓴다.

사실 시가 아닐지도 모르는 그저 끄적임일지라도 훨훨 날아가기 전에 붙잡아 둔다.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과 단어의 빈자리에 숨통이 트인다.


박연준 산문집 <소란>

['어림'을 사랑하는 일]

어린애같이 왜 저런담,
끝내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작가는 <소란>을 '어림'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 이라고 소개한다.


"'어림'에는 여림, 맑음, 유치, 투명, 슬픔, 위험, 열렬, 치졸, 두려움, 그리고 맹목의 사랑 따위가 쉽게 들러붙죠.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비껴 앉게 되는 것, 피하거나 못 본 척하거나 떨어뜨려 두려고 하는 것들이요. 진짜 삶은 '어림'이 깃든 시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어림에서 멀어집니다."

모든 소란은 고요를 기를 수 있는 힘이 있다

작가는 케이크 접시 위를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를 잡다 놓친 일화를 통해 '가벼운 소란'을 이야기한다.

"작은 것과 싸울 때조차 포크를 휘두르던 제 모습이 떠올라 멋쩍게 웃을 것입니다. (...) 이 일이 '오늘 겪은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든 소란은 고요를 기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모든 소란은 결국 뭐라도 얻을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루살이 미소 같은 것."


우리가 겪은 모든 소란(騷亂)은
우리의 소란(巢卵)될 테니까요.


작가는 책 제목에 대한 언급을 한다.

시끄럽고 어수선함을 나타내는 소란.

암탉이 알 낳을 자리를 바로 찾아들도록 둥지에 넣어주는 달걀. 밑알을 뜻하는 소란.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소란들은 결국 우리 삶의 밑알이 되어 제자리를 찾게 해 줄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무난히 흘러가는 하루 속에도 '가벼운 소란'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낳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삶.

그 둥지에 밑알이 될 '어림'과 '가벼운 소란'이 왁자지껄 말을 거는 나날이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박연준 작가가 언급한 메이슨 커리의 문장을 여러 번 되새기며 오늘 화실에서 내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마무리해야겠다. 조금은 아픈, 그러나 희망 한 줄기 담긴 그런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지 않고는
아무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뭔가를 느낄 수 없어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려면
아주 강해져야 하죠.

-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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