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안에서 끊임없이 방랑하는 우리에게

[읽고 쓰는 삶 219일 차]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by 윤서린

평소 큰 관심이 없던 과학책을 몇 권 샀다. 사실 아직 책장 배치는 못 받고 책상 위 책기둥 맨 위에 아슬아슬 쌓여있다.


이번에 구입한 칼 세이건 <코스모스>는 꼭 읽어야 할 필독서 목록에 있는 책이다. 구입한 사람은 많지만 완독한 사람은 많이 없다는 전설을 가진 책. 나 역시 문외한인 과학분야라 아예 펼쳐볼 엄두도 나지 않아 구입을 미뤘는데 이번에 마음을 먹고 구입했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으면 아름다운 우주 안에서 작아지는 존재가 되는 느낌으로 평온하게 스르르 잠이 들어서 불면증에 도움을 받는다는 우스개 소리에 혹한 것도 사실이다.)


같이 구입한 <창백한 푸른 점>이 <코스모스>보다 늦게 나온 책이지만 우선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로 한다. 두께가 얇아서 나름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긴다. (지금 확인해 보니 400 페이가 넘는다. 상대적으로 얇아 보여서 얼마 안 된다고 착각했나 보다.)


어쩌다 평소에 관심 밖이던 과학책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냐면 며칠 전에 읽기 시작한 SF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 때문이다.

평소 산문, 에세이 종류만 읽는 내가 올해 들어 단편소설을 몇 편 읽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SF소설도 읽게 됐고 덕분에 우주에 대한 동경, 경의로움을 간접 체험해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기웃거리게 된 것이 나름 매일 독서 219일 차가 넘어가면서 얻은 소중한 소득이다.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우선 책 자체가 양장본이라 마음에 든다. 안에 종이질도 매끈한 잡지표지 같은 재질로 반들반들한 것이 촉감도 좋다. 일반적인 책 보다 사이즈가 큰데 우주에 관한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니 판형을 키운 책인 듯싶다. 선명한 사진들이 아름답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는데 겉돌지 않고 잘 스며서 이 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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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문장으로 서문이 시작된다.


그러나 말해다오, 이 방랑자들이 누구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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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초부터 방랑자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였다.
혼자 한다는 것은 한 곳에 정착하는 일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책 제목의 <창백한 푸른 점>은 해왕성 궤도 밖에서 보이저 2호가 찍은 사진 속 태양광선 속의 지구를 말한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애초에 방랑자였으나 인류가 지난 1만 년 동안 온화하고 풍족한 곳에 정착하면서 모험심과 방랑 생활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멀리 떨어진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은 나를 괴롭힌다. 나는 금지된 해역으로 항해하기를 원한다.

- 허먼 멜빌 <백경>중에서


인류는 방랑 생활을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먼 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심이 있는 것이다.


먼 옛날 인류가 새로운 탐험을 꿈꾸고 망망대해의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을 찾아내고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쓴 것처럼 이제 우리 인류는 우주대양을 꿈꾸며 미지의 기회를 찾아 헤맨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찾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태양계를 가로질러 우주탐사선을 보내 새로운 세계를 관찰하고 탐험한다. 이 드넗은 우주에서 우리가 아닌 다른 생명체를 찾고 있다. 우리의 새로운 터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품어 본다.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다음의 질문들에 답을 하고자 한다.


- 다른 세계들 거기서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그들은 우리 자신에 관해서 무엇을 알려 줄 것인가?

- 현재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가 있는데도 과연 탐사 여행을 결행해야 할 것인가?

- 우리는 긴급한 문제를 우선 해결할 것인가? 혹은 이 문제들 때문에 우리는 떠나야 하는 것일까?



“지구 전체는 하나의 점에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곳은 그 점의 한구석에 지나지 않는다.”


-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로마 황제)의 명상록, 170년 경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무대 속에서
하나의 극히 작은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작은 티끌 하나의 존재감이다. 그 티끌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라는 존재는 그 티끌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요소일 뿐이다.

그런 나의 번뇌, 고민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그 무엇도 아니다. 그러니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내 마음과 어깨를 짓누르게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우리의 100세 인생은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그저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일 뿐이다. 그 짧은 시간을 불안과 부정적인 사고로 채우기엔 너무 아깝다.


좋건 나쁘건 현재로서는 지구만이
우리 삶의 터전인 것이다


태양과 달, 행성과 별들이 우아하게 꾸며진
우주 시계의 부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인류가 화성에 대한 탐사를 하며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살아갈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것은 어쩌면 지구가 유일한 우리의 터전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지구를 버리고 우리는 과연 새로운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자부심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데 우리의 조그만 천제를 멀리서 찍은 이 사진 이상 가는 것은 없다. 사진은 우리가 서로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인 이 창백한 푸른 점(지구)을 보존하고 소중히 가꿀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27면)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별은 이제 거기에 없을지도 모른다”(30면).

우리가 바라보는 별은 아주 오래전 폭발한 후고 그 빛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에게 보이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별의 과거를 보는 것이다.


아주 먼 훗날 우주의 생명체가 지구의 존재를 인식하고 다가왔을 때 부디 한때 지구로 불렸던 우리의 “창백한 푸른 점“ 이미 사라진 존재가 아니길 바라본다.


우주 안에서 끊임없이 방랑하는 우리들이 결국 돌아올 것은 우리의 터전, 우리의 집, 지구일 것이다. 그것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은 더 이상 몇몇의 환경운동가의 일이 아닌 바로 나와 우리가 몫이라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아름다운 ‘우주의 티끌’을 사랑하는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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