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18일 차] 박연준 산문 <소란>
비가 오는 날에는, 특히 새벽에 빗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릴 때에는 시인의 글을 읽는 걸 좋아한다.
어제 혼자 카페 나들이를 가서 메리 루플의 <가장 별난 것>을 읽다가 메리 루플을 좋아한다는 박연준 시인이 떠올랐다. 박연준 시인이 떠오르면 요조가 생각나고... 뫼비우스 띠처럼 요조-박연준-메리 루플이 무한 반복이다.
아마 올해 가을은 박연준 시인을 알아가는 계절이 되지 않을까.
아직 그녀의 시는 모르지만 그녀의 산문 몇 권을 드문드문 아껴 읽으며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그녀의 마음결을 스치다 보면 문득 그 안으로 빠지고 싶어 질 테고. 그러면 그때야 그녀의 시를 읽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사랑에 관한 글이고 2013년 여름, 비 오는 날에 쓰였다.
어릴 때 싫었던 장마가 이제는 퍽 좋아졌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 오는 날을 노곤함을 사랑하는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장맛비를 뚫고 그녀의 사랑을 뒤쫓아가 본다.
그때 나는 어렸고, 오래 죽어 있었고,
가끔 살아나면 소란스러웠지요.
이 문장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 요즘 꽤나 소란스러웠다고.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재잘거렸다고.
죽어 있던 내가 그들을 만나면서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내향인이 됐다고.
아... 나.... 살아나서 신났었구나. 좋았구나!
사랑은 한곳에 심을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생각한 내가 마음에 듭니다.
하필. 어찌할 수 없음으로 시작되어 끝을 맺은 사랑을 시인은 노래한다.
그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고.
작가는 장마가 지나가고 더 맹렬하게 '푸른 독'을 뿜어낼 여름의 소멸을 이렇게 표현한다.
"계절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습니다. 여름이 가을에 잡아먹히면 그다음은 차가운 미소를 짓는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안심이에요. 자꾸 잡아 먹혀도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닐 거예요." (34면)
독서 노트를 기록하면서 몇 줄의 생각이 덧대졌다.
따로 글을 떼어내서 <알알샅샅이 기록한 하루>로 옮겨보려 한다.
빗소리 때문인지 박연준 시인의 문장들 때문인지 마음이 잘익은 홍시처럼 말캉해지는 아침이다.
누군가가 건드리면 톡 하고 얇은 껍질이 터져버려 손쓸 수없게 흐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