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자가 되어 다시 보기

[읽고 쓰는 삶 217일 차] 김신지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by 윤서린

낭패다. 이 책을 읽고 오래전 쓴 <육아일기>를 꺼내 아이들에게 조금 읽어줬다.

별별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담겨있었다.

어떤 글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어이없어서 한참 웃기도 했다. 잠시 아이들과 추억여행을 떠났다.

문제는 초등 5학년 막내아들이 자신의 육아일기도 읽어 달라고 했는데 임신초기에 쓴 글만 남아 있었다.


큰애들 셋을 키울 때는 싸이월드에 기록했던 것을 따로 모아 일일이 프린트해서 한 권의 육아일기를 만들었었다.

넷째는 카카오스토리에 조금 쓰다 말아서 기록이 프린트물로 따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뭔가 기록한다는 것이 버거울 만큼 힘든 삶의 연속이기도 해서 한 곳에 꾸준히 기록한 글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진은 계속 찍어뒀지만.


더, 더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달라는 아들에게 '네 것은 없다'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지난 10년 넘게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던 걸까?

뭔가를 끄적인 흔적들이 SNS 이곳저곳에 흩어져 남아있겠지만 막내아들만을 위한 육아일기는 따로 없는 것 같다. 순간 미안한 마음에 기억 속에 아직 살아남은 유아기의 에피소드 몇 가지를 들려줬다.

이 일을 통해 그동안 미뤄뒀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됐음을 알았다.


기록을 한 군데 모아 둘 필요가 있다!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은 잘 기억되고 있나요. #5년 다이어리]


김신지 작가는 <제철행복>이라는 책을 통해 24 절기 동안의 삶을 기록한 작가다.

아마 이렇게 기록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오래전부터 있는 사람이라서 그의 삶이 녹아든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일기를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특히 한 다이어리를 끝까지 쓰는 사람이 최고 부럽다.

저번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이상한 강박이 있어서 조금 쓰다가 글자가 틀려 자주 수정하거나 지저분해 보이거나 날짜를 빼먹거나하면 아예 그 다이어리와 작별을 한다.

기록은 늘 하고 싶은 사람이라서 매년 다이어리에 눈독을 들이고 쌓아뒀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꾸준히 쓰지 못하는 나한테 불필요한 소비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다이어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5년 다이어리, 10년 다이어리다.

매년 같은 날 몇 줄씩의 일기를 한 페이지에 기록하는 형식. 분량도 적고 매년 같은 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는 형식의 일기라서 흥미로웠다.


김신지 작가는 5년 일기를 쓰면서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쓸만한 것이 없다'라고 여겼던 날도 있었습니다.


작가는 일기를 쓰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어'라는 마음에서 '오늘은 기억할 만한 일이 있었네'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기록했다고 한다.


재생이 끝난 하루를
가만히 '다시 보기'하는 마음


과거는 흘러가고 우리의 기억은 한정적이라 잊히고 만다.

뚜렷하고 선명하게 기억되는 순간도 존재하지만 내 안에 있었던 것조차 잊어버린 감정과 일상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 기억을 글과 사진, 영상으로 붙잡아 기록하고 여럿이 함께 추억하고 싶다.


요즘은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다시 보기' 기능으로 과거의 추억을 소환해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일상은 스스로가 기획자이고 주인공이고 소비자다.

자신이 공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에피소드들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지금의 힘들었던 순간도 미래의 나에게는 '이런 시절을 걸쳐 지금의 내가 된 거구나'라는 작은 위안 같은 선물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일상 기록가"로 활동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수집해 보면 어떨까?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다시 보기'로 펼쳐지는 나만의 세상.

그 안에서 여러 사람들과 웃고, 울고, 감탄하고 위로받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

때로는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하루를 들여다볼 시간.

평범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소소하게 기록하고 싶다. 오늘처럼.

2025. 10. 6. 월. 추석. AM 4:22 ~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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