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20일 차]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행복론>
연휴 마지막날 2000년 전의 인물에게 말을 걸어 본다.
책장 한편, 철학도서코너에 잠자는 책 <세네카의 행복론>을 펼쳤다.
올해 초 인문교양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고전 철학도서를 온라인으로 여러 권 구입했었다.
내가 고른 책은 완역이 아닌 편역이 된 책이었다.
제대로 잘 알아보고 샀으면 최대한 완역본을 샀을 텐데 그때는 마음이 너무 앞섰다.
책의 내용은 엮은이가 각 제목과 함께 한 페이지의 짧은 분량으로 편집을 한 형태로 읽기 편하다.
다만 이렇게 짧게 편역이 된 경우에는 원래 의도를 깊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글의 맥락을 잘 살펴가며 읽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목표를 향해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문장을 읽으니 내가 정한 목표로 나가지 못하고 주춤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목표가 있으면 '최대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나는 지금 출발선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상태인 것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작게나마 오늘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매일매일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기준이 없으니 오늘 못하면 내일, 그마저도 못하고 또 내일로 미루고 있는 상태다.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지,
어떤 길로 갈지,
경험이 많은 길잡이의 도움을 받아서
명확히 결정해야 한다.
세네카는 행복으로 가는 여정은 여타의 여행과 많은 부분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로 가지 않고 목동을 따르는 양 떼처럼 그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향하지 않는 것"(21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향하는 곳에 행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속임수인 경우가 빈번"(20면) 하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가운데 먼저 앞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 중에 내가 멘토로 삼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누가 있을까?
자연 속에서 정원을 가꾸며 목가적인 삶을 살았던 그림책 작가 "타샤 튜더"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는 또 다른 멘토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성을 따르지 않고 남들처럼
그들에게 맞춰진 공식에 따라
사는 것은 피해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남들의 말만 믿고 휩쓸러 가는 것은 파멸로 이르게 된다는 세네카의 말에 공감이 되면서도 나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심지 있게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건강한 삶을 회복하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은 누군가 이미 걸어가 만들어 놓은 길을 쫓아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갈림길에서 갈팡질팡 하더라고 순간의 선택이 틀려 되돌아가야 하더라도 자신의 목표, 결승점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걸어가는 삶은 그 자체로도 위대할 것이다.
조금은 늦더라도 조급하게 지름길을 찾지는 않겠다.
매일의 꾸준함으로 내가 목표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는지 가늠할 수 있는 계획적인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매일매일이 작게 쌓여 지속적인 행복이 된다는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