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어우러진 '풀뿌리를 씹는 이야기'

[읽고 쓰는 삶 230일 차] 홍응명 지음, 박영률 옮김 <채근담 하룻말

by 윤서린

도저히 밑줄을 그을 수 없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어머, 이 책은 사야 돼'라는 마음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분명 집에 이미 <채근담> 책이 있음에도.


명나라 시대 학자인 홍응명(홍자성)이 쓴 고전.

"채근담"은 송나라 왕신민이 말한 소학에서 연유해 나온 말로 "사람은 누구든지 나물 뿌리를 씹으며 살아도 만족할 줄 안다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독서글 44일 차에 만났던 <시로 풀어쓴 채근담>에 이어 두 계절을 지나 다시 펼치는 <채근담>, 하지만 오늘 펼치는 채근담은 좀 다르다.


책 만듦새가 예쁘다. 예쁘면 집으로 데려와서 어여삐 여겨줘야 한다.

그것이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자 책의 임시보호자인 나의 역할(?)이다.



<채근담 하룻말> 홍응명 짓고 제백석 그리고 박영률 옮기다


홍응명의 글을 박영률이 옮겼다.

그는 '글자를 놓고 맞다 틀리다를 너무 따지지 않길 바란다. 글자는 시간을 모른다. 글자를 따지다 보면 세월이 아쉬워진다'라고 말한다. 홍응명의 글을 옮김에 있어 고심을 많이 한 흔적이 서문에 보인다.


"우리말로 입에 넣기 좋은, 혀 위에 올려놓고 재미있게 굴릴 수 있게" 옮겼다고 하니 편한 마음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한자를 풀이해 해석을 달아 놓은 다른 채근담 책과는 달리 이 책은 글과 그림에 여백이 있고 미학적으로 만든 책이니 그 좋은 점을 취하면 될 터이다.


이 책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중국화가 제백석(1863~1957)의 그림이다.

이 그림 때문에 이 책을 샀다는 게 맞다.

내가 언젠가 그려보고 싶은 정감 있고 소박하고 다정하고 그림.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 독학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 끊임없이 노력하여 많은 작품활동을 했고 중국 근현대미술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채워진다.

만듦새에 비해 24,500원이라는 책값이 한없이 저렴하게 느껴진다.

나 같은 출판계의 빛과 소금, 책들의 임시보호자인 독서인들은 그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깔끔하고 담백한 편집, 미학적인 물성에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다.

책 내용은 이미 검증된 고전이므로 망설일 필요가 없다.



글을 마무리하고 사진을 올리려다 오류가 나서 글의 중 후반부분이 다 사라졌다. 전부 다.

밤새 컴퓨터를 껴놓았다가 열려있던 브런치스토리에 이어서 새벽독서글을 썼는데 사진 업로드가 안되며 "인증에 실패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뜨더니 다시 로그인하며 살아난 글이 이것뿐이다.

중간중간 저장하지 않은 내 탓이겠지. 누굴 원망하랴만 잠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분명 독서글 마지막에 삶의 태도는 내가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썼는데. 바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어쩔 수없다. 간략하게 다시 써야지. 왜 바쁠 때 꼭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이러니하다. 시부모님 아침 챙겨드리고 "브런치스토리 10주년 팝업스토어"가야 해서 마음이 영 바빠서 평소보다 일찍 깨서 새벽독서글을 썼건만, 이 또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어가야겠지 싶다. 오래 곱씹으면 마음만 부스러진다.

덕분에 좋은 문장을 다시 읽고 다시 적어본다. 오히려 좋아! 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마음에 욕심이 없ㅅ으면

가을 하늘, 갠 바다 부럽지 않고

앉은 자리에 악기와 책이 있으면


그 곳이 신선의 집이로다.




바쁠 때 헤매지 않으려면

한가할 때 맘을 닦아 말게 해 두고

죽을 때 허둥대지 않으려면

살아가는 때때로 삶의 이치를 파악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제 맘에 진정한 세계가 있다.

명곡이 아니어도 스스로 희열을 느끼고

명차가 아니어도 스스로 맑은 향기에 취한다.

생각을 맑게 하고 마음을 비워라.

걱정을 잊고 형식을 벗어나라.


그 가운데 스스로 자유로워지리니.



얼마 전에 내 마음가짐에 대한 자세를 바꾸는 일이 있었다.

며칠 전 독서글에 "모든 시인이 새가 되기를 열망하지만, 시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새는 없다"라는 미셀 루플의 문장을 공유하고 다른 작가님과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자유롭고 싶어서 새가 되고 싶은 게 아닐까라는 말을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자유는 내 안에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순간 나는 내 안의 새를 스스로 가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잠겨있던 새장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에 자유가 있다'는 이 자명한 진리를 왜 나는 깨닫지 못하고 먼 곳에서 찾으려 헤맸던가.


나 스스로가 자유롭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이미 온 세계가 내 안에 있다는 것.

매일 같은 하루 속에서도 그 의미를 내가 찾아낼 수 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작고 소소한 것들을 더 많이 관찰하고 사랑하며 내 삶에 희열과 향기를 더하리라.

더 비워내고 더 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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