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것

[읽고 쓰는 삶 234일 차]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by 윤서린

강렬한 책표지다.

뿔테 안경을 쓰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여자 아이가 풍선을 "들고" 있다. 머리에 커다란 핀을 꽂고 조끼까지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 아이. 뭔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풍선이 땅을 향해 있다. 보통 저 포즈는 풍선을 처음 받고 신나서 높이 들고 다니는 것과는 반대다. 몹시 지쳤거나 시큰둥 해졌거나 귀찮아졌거나 뜻대로 되지않아 화가 났을 때, 뺏기기 싫을 때... 놀이동산에 가서 아이들이 갖고 싶다는 풍선을 사주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저런 자세가 나온다.


놓아버리고싶지만 놓지 못하는 상태? 혹은 놓기 싫지만 놓아야하는 상태?

표지 속 아이를 계속 쳐다보니 나랑 기싸움을 하는 느낌이다.

이 아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다 보면 연관된 책들이 추천된다.

그때 몇 번 이 책을 추천받았는데 표지가 너무 강렬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도 또 뜬다. 평소와 달리 목차를 보지 않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는 이름이 보인다. "김겨울", "박연준". 박연준 시인이 추천사를 썼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전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작가를 따라서 그의 독서를 따라가는 여정은 나를 새로운 독서의 길로 안내해 준다.

맨날 내가 서성거리는 골목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 다른 풍경이 있는 곳.


이 책도 그렇다.

우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마이라 칼만의 그림은 많은 영감을 준다.

고흐의 그림과 영혼을 사랑하지만 앙리 마티스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나란 사람에게 맞는 그림체랄까.

색이 화려하고 붓터치는 거침없다. 인물들의 표정은 꾸미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다.


책 내용을 보자.

굉장히 짧은 단편의 글이 몇 개 나오고 대부분 그림과 제목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트북"이다.

덕분에 앉는 자리에서 다 읽었다.

나에게 오랜만에 완독의 성취감을 준 책.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책은 계속 펼쳐보게 되는 책이 될 거라는 확신이다.


이 책에는 무언가 "들고"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사물이기도 감정, 또 다른 무엇이기도 하다.

"holding"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궁정을 장악한 여자" (Woman holding court)

"현대 미술에 의견을 가진 여자 (woman holding opinions about modern art)"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barely holding it together)"



테러는 온 세계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부상을 당한다.


절대 두려워할 일이 없다면 정말 좋겠지.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게 두렵다.




우리 주변의 것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담고 있다


모든 걸 갖는 건

힘든 일이며

결코 끝나지 않는다.




(...) 그리고 아마도 당신과 함께 걷는 누군가는

잠시 무언가를 들어달라고 부탁하겠지.

그가 구두끈을 매는 동안.


대답은 "물론"

"당신이 원하는 만큼"



꼭 버티세요

hold on



마이라 칼만은 자신의 글과 그림을 통해서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무엇이고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라고.

때로는 소중하게, 간절하게, 혹은 버티면서 들고 지고 안고 있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를 우리답게 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가 들고 있는 것들을 놓아야 하는 때도 있음을.

하지만 버겁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것이라면 한껏 높이 들어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놓지 말고 꼭 버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책표지의 소녀가 내게 말한다.


"꼭 버티세요"


나는 답한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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