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읽고 쓰는 삶 235일 차]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by 윤서린

그녀의 시를 내 30대에 끌어와 읽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더 비관적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녀처럼 "내면이 바뀌지 않으면" 그 어디에 있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 빨리 알게 됐을까?


어제저녁 우연히 인스타에 광화문글판이 올라온 게시물을 보게 됐다.

마냥 아름다운 글귀가 아니라 마음의 줄을 당겼다 놓는 느낌의 글귀.

최승자 시인의 문장이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사이에 끼여있는 그녀의 책을 응시했다.

내 마음이 출렁였다.


시를 몇 편 읽었을 때 이런 시를 쓴 "시인"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시 한 권을 다 읽지 않고 멈춘다.


도서관에서 매번 뽑았다가 표지만 보고 다시 꽂아 놓았던 이 책을 집으로 데려온 건 화요일이다.

집에 데려 온다고 읽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표지를 들춰 첫 페이지를 읽으면 내 마음속에 어떤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질 것 같아서다. 서서히 그리고 온통 그 색으로 물들면 어떡하나 겁이 났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몇 편 읽고 아직은 감당할 수없겠다고 느끼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녀의 책을 빌리자마자 그녀의 글귀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다니 이제 나는 그녀를 알아가도 되는 나이가 된 걸까.



이상하지,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20년 후에, 지(芝)에게


최승자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 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빨과 흰 꼬리를 치켜들고

푸른 파도를 타고 달려오잖니.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나는 깊이깊이 추락해야 해.

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 들어가며, 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

나는 알지


어느 알지 못할 꿈의 어귀에서

잠시 울고 서 있을 네 모습을,

이윽고 네가 찾아 헤맬 모든 길들을,

- 가다가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동냥바가지에 너의 소중한 은화 한 닢도

기쁘게 던져 주며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 시집 <즐거운 일기>, [문학과 지성사] 1984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


그녀의 20대는 시대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시절이다. 그의 첫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 (...)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거대한 타의 - 오로지 물욕만을 따라 외골수로 뻗어가는 광기,

조직과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돌진하는 무서운 능력, (...)


내가 꿈꿀 수 있는 꿈이 줄어들고, '인간답게'라는 가치 기준이. 진리가 자꾸 모호해져 간다.

그래서 때로 한 10년쯤 누워 있고만 싶어질 때가 있다. 모든 생각도 보류하고 쉽게 꿈꾸는 죄도

벗어버리고 깊이깊이 이 한 시대를 잠들었으면.


(...)

그 거대한 타의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간답게 죽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항해서 싸우는 필사의 길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밤에도 나는 이를 갈며 일어나

앉는다. (...) 모든 것이 억울하고 헛되다는 생각의 끝에서, 내가 깨닫는 이 쓸쓸함의 고질적인 힘으로, 허무의 가장 독한 힘으로 일어나 앉는다.


잠들지 않고 싸울 것을, 이 한 시대의 배후에서 내리는 비의 폭력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독보다 빠르게 독보다 빛나게 싸울 것을. 내가 꿀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의 꿈이라도 남을 때까지.

(...) 다시 나는 젊음이라는 열차를 타려 한다. 내가 잠시 쓸쓸해져서 슬며시 내려버렸던 그 열차를.

인생의 궤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싸워가면서 사는 법, 살아야 하는 법을 철저히 배우기 위해, 공부하듯이...

(1976년)


최승자 시인의 시가 무거운 건 사실이다.

허무주의와 비관론적인 부분이 있지만 삶에 대한 애착도 함께 있다는 걸 그녀의 수필을 통해 조금은 알 수 있다.


<20년 후에, 지에게>라는 시도 절망을 견뎌온 한 시인이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서 감당해 나가야 할 세상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인은 아이의 눈빛 속에서 희망을 본다.


삶은 아슬아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인의 작은 축복을 나도 소리 내어 따라 읽어 본다.


큰딸이 출근 전 버스 시간이 남았다며 내 옆에 잠시 앉는다.

나는 최승자 시인의 시의 한 구절을 딸에게 소개한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길을 헤매는 20대의 청춘.

그녀는 아무 말이 없이 내가 읽어주는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까지 이어 듣다가 버스 시간이 됐다며 일어난다. 딸의 밝게 인사하는 뒷모습에서 나는 꿈과 직업의 선택에 짓눌린 청춘의 무게를 본다.


나도 글을 마무리하고 아르바이트 갈 준비를 한다.

최승자 시인의 시와 수필을 읽으며 조금은 무거워진 마음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기로 한다.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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