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ISBN'의 세계를 만나 책의 범주를 넓히기

[읽고 쓰는 삶 236일 차] 금정연 외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by 윤서린

가독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음각 형압으로 글자를 표지에 눌러 찍은 책.

책 뒷면에 작게 존재하는 책정보들을 과감하게 책표지로 디자인한 감성과 심상치 않은 책 제목.

'어머, 이 책은 사야 돼'

그렇게 간택받았지만 책장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던 책.


금정연 김보령 김지원 노지양 서성진 서해인 심우진 양선화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8명의 저자가 각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모아 묶었다.

출판사 <편않>

처음 듣는 출판사인 것 같은데 이름을 어찌 이렇게 잘 지었을까?

느낌상으로 '편안 VS 편하지 않다'의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거 아닐까 싶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과 우리 사회의 불편한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 출판사 입장은 모르겠다.


금정연 [ISBN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금정연 작가에 대한 자기소개 이야기를 풀어본다.

군대에서 책을 사보느라 생긴 빚 때문에 도서 데이터 등록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때 출판사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회의를 하던 모습을 보고 출판사 MD(merchandiser]가 됐지만 정작 출퇴근 시간에도 가방 안에 든 책을 꺼내 읽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자 결국 퇴사. 서평가로 활동. 최근 가장 많이 쓰는 것은 일기. 한동안 소설과 소원한 상태였지만 최근 화해를 결심한 상태. 책은 책등이 보이도록 세워서 꽂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사람.


고여 있는 책장은
이미 죽은 책장이다


금정연 작가는 매년 책장 밖으로 쌓이는 책을 중고로 팔거나 헌책방에 기증한다고 한다.

나도 오래전에 읽고, 혹은 읽지 않고 이사할 때마다 이고 지고 온 책들이 있다. 항상 책장 한 구석에 꽂혀있으면서 자신의 처분을 기다리는 책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혹은 언젠가 나에게 읽히거나 다시 읽힐 책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독하게 처분하질 못한다.

요 며칠 책장을 다시 뒤집고 정리하고 분류하는 중인데 있는 줄도 모르는 책도 있고 독립서점에 갔을 때마다 사들고 온 똑같은 책도 있었다. 연말에 한 번씩 책장을 다시 물갈이하듯 뒤집어 새롭게 배치하고 나눌 것은 나누고 처분할 것은 처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ISBN은 13자리로 이루어진 도서번호 시스템을 말한다.

작가는 1,800여 권의 독립출판물을 살펴보고 연국한 <NO_ISBN>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자신이 그동안 'YES-ISBN'의 주변만 맴돌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독립출판물을 일종의 엘리트주의의 태도로 곁눈질하고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고 고백한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정작 독립서점에 가서 다양한 출판물을 보지만 정작 손에 들고 나오는 것은 ISBN이 박힌 출간물이다.

왠지 ISBN의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책이 마치 글의 질을 보증하는 품질보증서처럼 느껴졌달까.

이상하고(좋은 의미의 이상한) 매력적인 책도 많았는데 나는 왜 그런 독립출판물에 지갑 열기를 주저했을까.


작가는 알고리즘에 장악된 자신의 음악플레이스트를 듣는 것처럼 책 또한 그랬다는 것을 알아간다.


어쩌면 문제는
책이 너무 많은 게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책의 범주가
너무 좁은 게 문제이다.



나 또한 음악도 책도 알고리즘의 노예다.

아직도 몇십 년 전 노래가 최고인 줄 알며 최신 노래를 흥얼거려도 하트는 용납하지 않는다. (내 알고리즘이 꼬일까 봐 그렇다.)

책도 검색하면 그와 비슷한 결을 온라인 서점에서 추천해 주고 나는 결국 그것들을 산다.

내 취향이 반영되니 대부분 만족스럽지만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는 세상 속에만 머문다.

결국 고여있다.

요즘은 의식적으로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SF소설이나 과학 분야의 책들을 조금씩 읽는다.

물론 안 읽던 분야를 보려니 진도가 안 나간다.

그럼에도 단어 하나하나 찾아가며 골머리 아파가면 읽는 문장들 속에서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독립출간물도 내가 모르는 전혀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줄지 모른다.

더 추워지기 전에 일전에 방문했던 독립출간물을 주로 판매하는 독립 서점에 다시 가봐야겠다.

그들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에 감탄만 하지 말고 "NO-ISBN"의 세계에 좋은 책들을 내 세상으로 들여와야겠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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