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51일 차]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아빠 기일을 맞아 남동생 집인 여수에 와있다. 어제 여수 시가지에 나가서 골목 안에 숨은 작은 책방을 찾아갔다. 조용하고 다양한 장르의 책이 큐레이션 된 멋진 그곳에서 조지 오웰의 에세이 모음집 <나는 왜 쓰는가>를 골랐다.
내가 아무리 독서초보자여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1984>는 안다. 하지만 내용만 알뿐 직접 읽지는 못했다. 집중력 이슈가 있는 나에게 스토리가 있는 책 한 권을 완독 한다는 건 꽤 고난도의 노동(?)에 가깝다. 다행이라면 매일 조금씩 읽는 습관이 들면서 최근 그 노동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작가에 대한 매력이 느껴져야 그의 작품을 읽을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시인이라면 그의 산문이나 에세이를, 작가라면 그의 에세이나 인터뷰를 먼저 찾아본다.
작가의 연혁을 보면서 그의 일생과 삶을 내 머릿속에 구상해 보고 어느 시기에 어떤 작품을 썼는지를 살핀다.
오늘 읽을 책은 매우 친절하게 “조지 오웰”의 인생과 특징적인 부분, 그의 작품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덕분에 나는 그가 식민지 버마에서 영국의 경찰간부로 일했던 그의 과거와 그로 인한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읽은 부분이 그때의 경험에 대한 글이다.
그가 왜 부랑자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된 후 다시 읽는 글의 서두는 이런 배경지식이 없을 때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된다는 것 또한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천연두의 유행으로 거리의 부랑자가 전염의 원인이라 생각하는 당국의 조치로 조지 오웰을 비롯한 마흔아홉 명은 “스파이크”라고 불리는 부랑자 임시숙소에 들어가 차가운 골방에서 지내면 건강검진을 받는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과 차로 끼니를 때우는 그들은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 다시 자신들의 길거리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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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풍경을 더럽히는 존재였다.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정어리 통조림이나 종이봉투처럼.”
_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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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스파이크”(부랑자 임시숙소)에 비자발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신을 포함한 마흔아홉 명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바닷가의 풍경을 더럽히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들. 과연 그들을 다 주어 쓰레기통에 담아 해변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 해결책일까? 왜 그들이 거기에 떠내려왔는지를 어떻게 버려졌는지를 먼저 알려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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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더 정확히 말해 차라고 잘못 부르는 그것 없이 부랑자들이 살 수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그들의 양식이요 약이며, 모든 불행에 대한 만병통치약인 것이다. 그것이나마 매일 반 갤런쯤 홀짝일 수 없다면,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견딜 수 없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_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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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굶주린 부랑자들에게 “차”라고 부를 수도 없는 물 한잔, 그 따뜻한 온기가 있는 차 한잔이 그들의 양식이자 약이라면 나에게는 그 어떤 작고 소소한 것들이 나를 ‘나 자신의 존재’로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걸까.
아마 매일 아침 조금씩 읽고 쓰는 행위, 그리고 내 몸을 통해 나를 표현하려는 어떤 일련의 노력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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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거, 친구. “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한테 담배를 좀 빚졌잖아. 어제 나한테 선심을 썼지. 아침에 나올 때 부랑자 감독이 내 담배꽁초 갑을 돌려주더라고. 친절은 베풀면 돌아온다니까. 자 여기 있네.” 그러면서 그는 내 손에 눅눅하고 다 썩어빠지고, 구질구질한 담배꽁초 4개를 쥐어주는 것이었다. “
_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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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지저분한 차림새에 직업도 집도 없이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신세지만 타인에게 받은 친절을 잊지 않고 되갚으려는 스코티라는 남자. 그가 받은 친절에 대한 보답이 비록 자신이 길에서 주운 다 썩어 빠진 담배꽁초일 뿐이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임이 틀림없는 그것을 기꺼이 몇 배로 내어주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작가의 마음이 나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조지 오웰의 [스파이크]를 읽으며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은것을 상대를 위해 생색없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고 되갚으려는 마음, 우리들에게 풍경을 더럽히는 존재로 인색되는 그들의 그 빈곤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