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문장을 맛보는 아침

[읽고 쓰는 삶 252일 차] 은유 <쓰기의 말들>

by 윤서린

새벽부터 알람 소리와 아이폰 시리를 부르는 소리가 수차례 반복 된다. “시리야, 20분 뒤에 알람 맞춰줘” “띠리리 띵 띠리리 띵~” “시리야, 10분 뒤에….” 이렇게 알람을 다섯 번 넘게 다시 맞추고야 겨우 눈을 떠서 모닝페이지 한 쪽을 쓰고 아침 독서를 한다.


아빠 제사를 모시고 여수에서 돌아와 짐정리를 하니 새벽 두 시. 여독이란 게 이런 걸까? 어디를 돌아다니지 않는 내게 장거리 일정은 꽤나 큰 피로감으로 남아있다.


이럴 때는 짧게 치고 빠지는 독서를 한다.

나랑 여수까지 같이 내려갔다가 여수 햇살도 못보고 가방에만 들어있던 은유 작가의 책을 펼친다.


——————————————————————————

은유 <쓰기의 말들>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싫증 나는 문장보다 배고픈 문장을 써라.

_미셸 드 몽테뉴


——————————————————————————


은유 작가는 글쓰기를 같이 하는 학우들에게 단문 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주어, 목적어, 동사로 된 기본 문형에 충실한, 장황한 묘사나 수사가 없는 글을 쓰길 충고한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건조한 신문기사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울림을 주어 단문의 허기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꽤나 글이 늘어지는 편이라서 늘 이 부분이 고민이다. 경쾌하고 명료한 느낌의 단어를 찾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나 또한 쉬운 문장으로 질리지 않게 글을 끌고 가는 힘을 기르고 싶다.


——————————————————————————

단문을 쓰세요, 행간을 살리세요.

_은유

——————————————————————————


다음은 은유 작가가 문장마다 죄다 밑줄 긋고 싶게 만든다는

헤르타 뮐러 <숨그네>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과연, 단문으로 쓰인 글을 눈으로 읽을 때와 손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게 문장을 옮겨 쓸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다.


——————————————————————————

“스카프는 피붓결처럼 고왔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흐르는 듯 부드러운 마름모꼴 스카프를 보고 나는 수치심에 휩싸였다. 황폐한 나에 비해, 스카프는 예전처럼 나긋나긋했다. 광택과 무광택이 섞여 있는 바둑판무늬 그대로였다. 스카프는 수용소에서 변하지 않았다. 바둑판무늬 속에서 조용히 자기 원칙을 지켰다. 스카프는 이제 내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_ 헤르타 뮐러 <숨그네> 중 일부

——————————————————————————-


뮐러의 간결하지만 힘 있는 문장을 읽으며 내 문장도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함을 느낀다. 보기에는 배고픈 문장이지만 읽은 후 그 무엇보다 포만감이 드는 그런 글. 그런 글을 써보고 싶은 아침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1화‘풍경을 더럽히는 존재’들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