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54일 차] 헤르만 헤세 <쓰는 기쁨>
어제 도서관애서 <사피엔스>를 한 시간가량 읽어서 마의 200 페이지를 넘겼다. 주말 동안 여수에 다녀오면서 이 책을 펼치지 못해서 계획보다 꽤 밀리고 있지만 앞으로 400여 페이지는 차근히 읽어보려고 한다.
모닝페이지를 한 장 쓰고 읽을 책을 두리번거리는데 오늘은 감성 충전이 필요할 것 같아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의 푸가>를 읽었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가라앉아서 이 감정은 그냥 내 안에 두고 독서기록은 다른 책으로 하고 싶어졌다. 결국 헤르만헤세 책장 앞에서 기웃거린다. 긴 글은 버겁고 아름다운 헤세의 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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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시를 모아 둔 필사책이다.
나는 싯다르타, 데미안 속 헤르만헤세도 좋아하지만 사실 헤세의 서정적인 감성을 인간적으로 조금 더 좋아한다. 그는 시인이고 그림을 그리며 정원일을 하고 글을 쓴다. 그의 이런 면모가 나를 설레게 한다.
<이별의 푸가>를 읽고 찬 바람에 시린 내 감성을 이 시를 읽어보며 따뜻하게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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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르만 헤세
그 옛날 어린 시절에
초원을 따라 걸을 때였어
아침 바람 속에 노래가 조용히 실려왔지
파란 공기 속의 멜로디
아니, 그건 꽃향기였어
그 향기는 달콤했고
내 어린 시절 내내 들려왔어
그 뒤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요즘 들어 말이야
내 가슴속에서 다시
그 향기가 슬그머니 울려 퍼지고 있어
그 향기, 그 울림
그러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이젠 온 세상이 아무래도 좋아
이 세상의 행복한 자들과
내 운명을 바꾸고 싶지도 않아
그냥 가만히 서서
귀 기울이고 싶을 뿐이야
향기 나는 소리들이 어떻게 흐르는지
그것이 정말 옛날의 그 울림인지
귀 기울이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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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혼자 걸어 학교에 갔다 돌아오던 길에 보던 풍경은 중년이 된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조금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기억.
집집마다 문 옆에 화분을 내어두던 시절. 담벼락에 작은 화단이 있던 시절.
나는 그곳에서 봉숭아, 분꽃, 샐비어, 맨드라미, 채송화, 국화, 장미, 그리고 이름 모를 여러 꽃을 만났다. 나는 늘 혼자였지만 그 꽃들을 바라보면 혼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향기는 어느새 잊혔지만 그 풍경 속의 나는 아직도 그때를 살고 있다.
더 많은 것들을 내 마음에 들이고 싶은 계절이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꽃향기가 저 기억 너머에서 풍겨오는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기웃거리지말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더 많이 사랑해 줘야지.
내 삶과 내 주변의 것들….
각자의 향기와 울림이 있는 나의 사람들.
소중해서 아름다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