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56일 차] 헤르만 헤세
또 시작인 걸까.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은 떠다닌다.
아침 일찍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는 일정 때문인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넋 놓고 날을 새면 아침 일정이 꽤나 얽힐 것이다.
새벽 3시 이른 오늘치 독서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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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필사집 <쓰는 기쁨>
[ 11 월 ]
_ 헤르만 헤세
이제 모든 것은 스스로를
꽁꽁 싸매고 퇴색되어 간다
안개 낀 날들은 불안과 걱정을 배태하고
폭풍 치던 밤이 지나간 아침에는
사각사각 얼음 소리 들린다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하고 이별에 눈물짓는다
그대, 죽음과 복종을 배울지어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거룩한 지식이니
죽음을 준비하라
그러면 황홀하게 더 높은 삶으로 옮겨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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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적뒤적 책장을 넘기며 시 몇 편을 읽다가 [11월]이라는 시에 마음의 발걸음을 멈춘다.
맞아… 11월이지.
제대로 본연의 색을 드러내지 못한 나뭇잎들이 이미 바람에 떨어져 꽤 휑한 나뭇가지들을 시리게 보여준다. 그에 반해 노랗고 주황빛으로 혹은 붉은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나무들도 보인다.
모두 이 시절을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40대의 후반이 끝나가는 시기에 나는 계절로 치면 초가을일까 늦가을일까.
어린 시절 막연히 생각하던 것보다는 꽤 오랜 계절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푸릇하기도 혹독하기도 했던 시간들.
어쩌면 앞으로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수도,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들이 내게 남아있을 수도 있다. 그 시간들을 나는 어떤 모습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삶에 후회는 없었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켜나가면서 살아야 되지 않을까.
인생의 푸르름을 마음껏 누려보지 못하고 견뎌왔던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떨어진 나뭇잎을 다시 나뭇가지에 붙일 수 없듯이 지나온 그 시절들을 이제는 다음 계절을 위한 양분이 되도록 내 손에서 놓아주어야겠다.
헤르만 헤세는 삶은 고통스럽지만 견디는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힘겨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말에 많은 위로를 받곤 한다.
또한 잠들지 못하는 밤을 걱정할 필요 없다는 그의 말을 믿고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로 한다. 분명 잠들지 못하는 이밤들이 모여 나의 사유의 지도를 밝게 비추고 더 넓혀줄 것임을 알기에.
추신) 아침 시간에 예약 발행을 누른다는 것이 습관적으로 발행 버튼을 누르게 되어 조용한 새벽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죄송합니다. 어제 오늘 독서글 발행하면서 나사가 조금 빠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