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58일 차] 은유 <쓰기의 말들>
눈 뜨자마자 만년필로 모닝페이지 한 장을 휘갈겨 썼다. 글이나 노래,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들이 쏟아진다. 아침에 이렇게 한차례 머리를 비우면, 혹은 비워내면서 다시 채우면
독서기록을 쓸 여력이 조금 딸린다. 책을 조금 읽다 덮고 뜨끈하게 등을 지지며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진다.
시부모님 아침을 차려드리는 일요일에는 출근하는 평소와 달리 늘어지게 여유를 즐기다가 독서기록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오전 시간에 여유를 부리다 보면 쓰기 싫어지는, 귀찮아지는 순간, 고비가 찾아온다.
오늘도 뒹굴거리며 ‘해야지, 해야 해’라고 다짐만 4시간.
이런 날은 간단히 기록해도 괜찮다며 스스로 긴장의 끈을 좀 풀어준다
아침마다 읽고 쓰는 삶 258일 차. 이미 잘하고 있으니 조바심도 강박도 내려놓자고. 독서기록 쓰는 것 때문에 내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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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는 니체의 책을 읽고 “몰락을 모의”했으나 어정쩡한 상태로 남편에게 들통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자를.” _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과연 은유 작가가 어떤 몰락을 모의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스스로 굳어진 가치, 태도, 관점등을 변화시켜 보려는 노력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에피소드 후 그녀는 ‘적어도 공부하더니 이상해졌다는 말은 듣지 말자’(51면)는 학습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어설프게 알아버린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51면) 스스로에게 읽고 쓰며 계속 묻는 것이다.
또한 글을 쓸 때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51면)에 대한 부분도.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을 머릿속에서 펼쳐봤다. 분명 그런 글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관찰자 입장에서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쓴 글들. 사실 그 글을 쓰면서는 재미있었다. 마치 시트콤 대본을 쓰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발행 후에는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그래서 그 연재를 멈추고 계속 고민했다. 지워야 하는가. 편집해서 다른 형태의 글로 다시 써야 하는가. 물론 지금은 그 글이 시간에 묻혀서 읽는 구독자들이 없지만 나는 항상 마음속에 틀린 시험지를 고치지 않고 품고 사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마음의 빚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얼마 전 연재북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몇의 연재된 글을 지울 결심을 한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도 쓴 것이 아까워서 지우기 망설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앞으로는 남의 삶이 아닌 내 삶에 대한 글로 글쓰기의 방향을 잡고 좀 더 깊게 ‘글 쓰는 삶’으로 들어가 볼 생각이다.
또한 글로만 앞서가는 삶이 아닌 제대로 된 내 삶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 집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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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_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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