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로운 ‘벌써’를 위해

[읽고 쓰는 삶 262일 차] 소위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by 윤서린

소위 김하진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중,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갔다고요?]를 읽고.


작가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5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시간의 옷을 잔뜩 껴입은 채로 몸도 마음도 아둔해져”(136면) 버린 자신을 통해 ‘벌써’의 의미를 찾는다.


우리 삶에서 ‘벌써’라는 부사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덧없음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며칠 전 아빠의 10주기를 돌아보며 ‘벌써, 10년이라니…. 세월이 빠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그때 그 시절에 있는데 나만 멀리 떠내려온 느낌. 그래서 이제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아득함에 조금 슬픈 나날이었다.


소위 작가는 우리에게 ‘벌써’라는 부사에서 “감탄과 만족의 의미”(138면)를 더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자기만의 “몰입 거리”를 찾아보라 말하며 자신은 그것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는 고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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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망각의 세계로 인도할 몰입 거리를 찾는 게 더 나은 인생을 위한 필연적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_138면


“몰입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순간은 영원하다.”

_1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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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월의 끝을 향해서 달려간다.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까마득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침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면서 내 시간이 허투루 흘러가진 않았구나 위안이 된다.


아침마다 읽고 쓰는 몰입의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벌써 시간은 흘러가있다. 소위 작가의 말처럼 “허무의 벌써 가 아닌 환희의 벌써”(139면)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모두 환희로운 ‘벌써’를 외칠 수 있게 하루하루 더 가치 있게 채워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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