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92일 차]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역경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빛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무한한 긍정에 나는 감탄하고 만다. 사람은 자기다울 때 존엄하게 빛난다.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흉내 내고 비슷해지려고 시도하는 순간 타고난 광채를 상실한다.
_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한 때 ‘닮아가는 글’을 쓰고 싶었던 시기가 잠깐 있었다. 논리 정연하고 이성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글의 완성도를 위해 끝없이 수정해야 되는 과정을 거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답지 않다. 이 글은 내가 썼지만 내 글이 아니다’.
분명 몇 달 동안 공부하고 글을 쓰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은 화려하고 멋진 옷을 빌려 입고 관중 앞에서 서있는 무대 위 아이처럼 어색했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고 무대를 내려오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꽤 망설였다. 들인 공과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에 끝까지 끌고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그 글 속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 비대해져서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으로 누군가의 문체나 글의 형식을 닮고 싶었던 시기동안 나는 일상적인 내 글을 쓸 수 없었다. 논리보다 감정에 치우치고 두서없이 휘몰아치듯 자유분방하게 쏟아내던 내 안의 이야기들이 볼품없고 하찮은 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여파는 남아있다. 여전히 나는 글을 쓰며 자기 검열에 빠진다. 글다운 글을 써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를 다그친다. 내 안의 상상력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유쾌하게 달려 나오던 단어들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친다. ‘이렇게 쓰면 싫어하지 않을까’ 내성적인 아이처럼 주눅 들어 떳떳하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의 글들.
이제는 안다. 밝고 화려한 무대 위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저 나만의 은은한 ‘광채’와 은근한 ‘광기’로 빛나야 한다는 것을.
지금부터는 누군가를 ‘닮은 글’이 아니라 나를 ‘담은 글’을 쓰고 싶다.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글, 도대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글. 내 삶과 내 글이 한결같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글. 나는 나를 닮은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