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손거울을 놓으며 ]

[읽고 쓰는 삶 293일 차]

by 윤서린

책에서 찾은 빛나는 문장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_ 김승옥 <무진기행>


윤서린의 마음으로 쓰는 이야기


[ 마음의 손거울을 놓으며 ]


저는 마음에 손거울을 들고 사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제게 닿기 전에 손거울 비춰 상대의 마음을 반사하는 겁쟁이죠.


저는 좋아하는 마음에 자꾸 ‘왜’라는 이유를 들이댑니다.

‘왜 나 같은 사람을…’

저는 좋아하는 마음에 자꾸 ‘어차피’라는 결론을 내밉니다.

‘어차피 이 감정은 변할 텐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매번 마음에 손거울을 들고 있는 저를 봅니다.

40년 넘게 그렇게 살았으니 고치려 해도 잘 되지 않아요.


지나간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도취된 나를 사랑한 건 아니었나 반문해 봤어요. 결론은 잘 모르겠다입니다.


캄캄한 삶의 암흑 속을 걸어 나와 세상사람들에 섞여보는 요즘입니다. 밀린 숙제를 몰아하듯이 더 자주 웃고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런 제 모습이 생경합니다. 하지만 싫지 않아요. 오히려 이런 제가 조금 좋아졌습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몽글한 마음들이 떠다닙니다.

다정하고 달달한 기분에 취하다가도 저도 모르게 마음에 들고 있는 손거울을 만지작 거립니다. 언제든 그 마음을 반사해서 돌려주고 저만의 세계로 도망칠 궁리를 하는 미래의 제가 얼핏 보입니다.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한심합니다.


마음에 들고 있는 손거울로 저를 비춰봅니다.

미소 뒤에 숨은 겁쟁이가 보이네요. 불편해도 피하지 않고 계속 바라봅니다. 이렇게 제가 겁내하는 ,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글로 풀어보면서요.


제 삶에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봅니다.

바쁜 일상 속에 문득 누군가가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는 것,

예쁘고 귀여운 것을 보면 알려주고 싶어지는 것,

똑같은 음식을 오늘도 기꺼이 같이 먹고 싶은 것,

나만의 힐링 장소를 공유하고 싶어지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서로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다음 만남까지 조르지 않고 얌전히 기다리는 것,

시시한 이야기에도 서로 웃음이 터지는 것,

들었던 이야기를 또다시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

찬바람에 감기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

지금 달이 엄청 크고 예쁘니까 꼭 보라고 말하는 것,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도 축복의 마음을 보내는 것,

위로의 단어를 찾는 대신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이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들의 일상에서 소소하게 떠다니는 여러 감정의 대표 이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늘 조금씩 변해왔던 것 같아요. 그 변화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니 타인과 나의 감정이 변할까 미리 겁먹고 뒷걸음치는 것은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마음에 꽉 쥐고 있던 손거울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다가오는 마음들을 반사해서 돌려보내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이제는 마음에 손거울 대신 촘촘한 체망 하나를 들려주려고 해요. 사람과의 관계 속에 떠다니는 좋아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들을 놓치지 않고 싶어서요.


이 계절,

지나온 수많은 계절보다

그 무엇이든 조금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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