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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지 Sep 02. 2024

나가며

검은 잎들이 하얘지면 가장 순수한 결정체만이 화해의 손을 내밀 거예요



배설에 가까웠던 연재가 이로써 막을 내립니다. 시작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한 일인극이었는데 이곳에 원고를 공유하며 세상이라는 따뜻한 객석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남겨진 회한과 공백, 공허함을 묵묵히 활자에 흘려보냈습니다. 그렇게 홀로, 떠나간 시절을 종이를 접듯 차곡차곡 배웅했습니다. 힘들 때 무언가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건 행운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구였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긴 하겠지만요. 어쨌든 분하다는 이유로 유해한 것들을 소비하며 반항하기보다, 느리더라도 마주 앉아 흐느끼며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스물일곱의 이십삼일. 이를 ‘이칠이삼’으로 줄여서 불러보니 왠지 ‘운칠기삼’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칠(7)과 삼(3)이 겹친다는 이유로 연결된 단순한 발상이겠네요. 다만, 쓰임은 좀 다릅니다. 운칠기삼이란 노력보다 운 쪽에 육중한 책임을 부여합니다. 올해 상반기를 비추었을 때, 저 또한 노력을 다해 삶을 일궈 나가려고 무진장 고군분투했을 겁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들이닥친 시련은 내 노력의 보답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고 실망스럽기까지 했지요.


수술을 받지 않으려면 저는 어떤 노력을 들이는 게 좋았을까요? 아주 사소한 것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하나 짚어 보아도 질문의 꼬리는 갑갑한 미로판을 두드리며 함정을 확인시키는 꼴이었습니다. 결국은 아주 원론적인 문제,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애초에 정형외과에 방문할 일이 없었다면—이렇게 수술하지도 않았을 테지, 라는 자책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그래서 운칠기삼이라는 명랑한 언어가 떠오른 건지도 모르겠네요. 해로운 사유도 운의 영역에 맡기게 되면 복잡한 실마리가 슬슬 풀리게 된다고 다독이는 편이 한결 무해했습니다.




이 ‘낮은 세상’에서 당신은 많은 걸 사랑해봐야 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가장 사랑한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비행의 발견, 마크 밴호네커




끝으로 좋아하는 책의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합니다. 비행의 발견은 ‘마크 밴호네커’라는 파일럿이 펴낸 에세이입니다. 언젠가 파일럿이 되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비행사는 낮은 세상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가장 성숙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많은 것을 사랑하라는 말은 보기 좋은 것들만 사랑하라는 뜻이 아닐 겁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해보지 않고 많은 것들을 사랑했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요? 많음이란 개수가 아니라 깊이를 가리킬 거예요. 나의 세계가 깨어지는 그 순간을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깊은 사랑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저는 5주 동안 가장 사랑할 수 없는 손상된 영혼을 틀림없이 사랑했습니다.


만물이 소생해 산만하게 날뛰는 계절인 봄과 여름. 어여쁜 4월은 고장난 어깨를 신명나게 들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화사하다는 봄은 제게 거뭇거뭇한 기억을 심어주었습니다. 들풀은 검은 숨을 내뱉고 영화로운 민들레는 목이 비틀어졌습니다. 이대로 가다 싱그러운 여름의 색마저 맡을 수 없는 무감한 인간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내게 주어진 건 가을, 겨울이라는 차디찬 팔레트일 뿐이라서 내 심장이 영영히 해동되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한 계절만 잘 넘기자, 한 계절만 아파하고 보내주자며 얼룩진 계절을 한쪽 팔로 껴안았습니다.


애달프던 봄을 지나 진득하고 축축한 열대의 계절을 사랑하고자 한 영혼이 뚜벅뚜벅 움직입니다. 느껴지지 않을 것 같던 습한 공기가 코끝에 송골송골 맺히기도 했지요. 검정케 물든 여린 구석은 습하다 못해 진물이 터져 나와 여전히 붕대를 덧대고 있네요. 나의 편인 가을, 겨울이 오면 괜찮아지겠죠? 모든 검은 잎들이 하얗게 얼게 되면 가장 순수한 결정체만이 화해의 손을 내밀 거예요. 저는 여전히, 많이 보단 깊이 사랑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사랑을 미결된 삶에 화해롭게 버무려가고 있을 겁니다. 어디서든, 언제라도. 겨울의 왕국 12월에는 행복한 생일도 있으니 이 가사를 흥얼거리게 되네요. Happy birthday johnny, wherever you are.




이혜지의 사소한 고백을 읽어주신 독자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온갖 방식으로 모질게 굴어도

과묵하게 품어주던 활자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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