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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Aug 08. 2018

쟈비스! 그녀를 깨워줘!

로봇청소기와 함께한 2일 

아이가 평일에 잠시 시댁에 있기로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신랑이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해지더니 말했다. 


"로봇청소기가 있어야 겠어." 

"갑자기 왜. 집에 무선 청소기도 있고 다이슨 청소기도 있는데."

"청소기 돌려놓고 외출하면 침대 밑 먼지까지 다 처리해 준다잖아."


음, 이거, 아이의 스케줄과는 처음부터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 뭘 사달라고 한 적 없고 검소하고 착한 신랑이라, 마음에 드는 걸로 사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아침, 링크를 두개나 보내왔다.


가성비랑도 상관이 없었다. 


그는 이미 들떠있다. 말릴 수 없다. 사고 싶은 걸로 사라고 예산 승인까지 해줬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랑의 처갓집이었다. 베푸는 걸 좋아하는 친정엄마가 우리 얘기를 듣더니 친정에서 놀고 있는 꽤 비싼 로봇청소기를 빌려준 것이다(심지어 마음에 들면 가지라고까지). 캡틴 아메리카 방패 모양 청소기는 이제 안녕인 것인가. 


"신랑아, 이걸로 한번 체험해 보고, 좋으면 마블 로봇청소기 사자, 응?"

"응, 뭐, 써봤는데 로봇청소기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써보지 뭐." 


살살 달래서 예의 로봇청소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사고 싶은 거 못 사서 좀 서운한가? 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신랑은 로봇 청소기 리모콘으로 오른쪽 왼쪽 뒤로 앞으로 조종을 해보더니, 충전기로 복귀하게 하는 것까지 실험을 해보고서 씩 웃었다. 


"이거, 무선자동차 생긴 어린아이 같은데?"

"가만 있어봐. 쟈비스. 집을 청소해줘." (버튼 꾸욱/부웅) "쟈비스, 집(충전기)으로 돌아와." (버튼 꾸욱/부웅)

"좋아?" "응응, 너무 좋아!"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이 없이 자려니 왠지 어색하고 기분도 묘해서 그랬던 것 같다. 신랑이 몇번 깨우더니 포기하고, "30분 있다가 꼭 일어나야 해."를 외치고 출근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계속 잠의 끝을 부여잡고 단잠을 자고 있는데 방안에서 갑자기 부웅, 슉, 쿵 하는 낯선 소리가 들렸다. "뭐야, 깜짝이야!"  정신이 들어보니, 로봇청소기 쟈비스- 님이셨다. 신랑이 쟈비스에게 "나 출근하고 방 청소좀 해줘. 그리고 헤롱헤롱 하는 와이프도 좀 깨워주고." 하고 시키고 갔단다. 고마워요. 쟈비스, 덕분에 지각을 면했네요.

 

(아래 일러스트는 신랑이 솜씨) 그는 그저께부터 코난 <제로의 집행인>을 보겠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배경사진 출처는 여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767716&memberNo=19850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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