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재배치보다 더 중요한 욕망 재배치
"제가요?" "그럼 누구겠냐." "저 욕심 안 많은데." "완전 많지." "전 외제차도, 명품백도 욕심 안 내고, 직장에서도 열심히 하지만 승진이나 보너스, 인센티브도 크게 욕심내지 않고, 그냥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사는게 꿈인데 제가 왜 욕심이 많죠?" "그게 욕심이 많은거야. 네가 날 계속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이유가 뭐겠어. 너는 내가 부럽잖아.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고, 지혜가 있고, 치유함이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잖아? 레벨업을 하고 싶은거지. 이득 안 되는 일은 매우매우 귀찮아 하는 네가 굳이 나에게 시간까지 맞춰가며 날 찾아오는 이유가 뭐겠어. 그래서 나는 알려주잖아. 레벨업을 하려면 이걸 해야 한다, 저걸 해야 한다, 이렇게. 알려주면 어떻게 해? 안 해. 왜 안하냐면, 리스크를 감당해야 되거든. 지금 누리고 있는 안정적인 삶은 그대로 누리면서 레벨업만 하고 싶다고 하는거, 그거 엄청난 욕심이지."
"지금 버는 걸로는 충분하진 않죠." "다들 돈이 없다고 말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중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있다손 치더라도 너는 아니지. 하지만 마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처럼,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지. 그건 외부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그래. 세상으로부터는 항상 모자라다는 메세지를 받거든. 근데 거기에 집중하면 안 되지. 지금은 너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야. 지금은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네가 진정 하고 싶은 일, 그걸 찾아야 할 시기야. 돈을 버는 건 어렵지 않아. 그걸 어렵게 생각하면 안돼.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헉, 그럼 직장을 그만두라는 건가요?" (사부와의 대화를 복기하다가 돈이 벌리지 않으면 직장에 다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해 버렸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자아정체성이 나에게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거지. 근데 지금 돈도 벌어야 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뭐도 해야 하고.. 그렇게 양 손 가득 움켜쥐고 있는 것이 많으면 진짜 중요한 것이 주어졌을 때 잡을 수 없게 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는 욕심쟁이가 맞는 것 같다. 해보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어떻게 하면 다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사부를 쫓아다니며 물어본 것을 보면. 그것도 자주, 아주 집요하게. 이번 편은 특별히 1) 내가 왜 욕심쟁이라는거야! 2) 그래서 이 많은 욕망을 다 포기하라고? 라는 두가지 질문에 대해 내가 열심히 고민하고, 사부에게 물어봤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부디 잘 전달할 능력이 나에게 있다면 좋겠다.
"사부, 근데 일전에 저에게 큰 꿈을 가지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세상에 크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고 하셨잖아요." "지금 버는 돈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 금전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지. 레벨업을 하면 시야가 달라지고 능력치가 달라져. 그때 돈을 벌겠다고 하면 더 벌 수 있지. 지금 회사에 다니고 충성을 다한다고 해서 레벨업이 될까? 레벨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고만고만하게 살게 되지. 너 자신을 찾는게 먼저야. 그게 레벨업의 시작이지." "지금 다른거 포기하고, 열심히 고민했는데 내 꿈, 내 자아정체성을 못 찾으면 어떡해요. 레벨업도 못했는데, 안정적인 직장도 없으면요?" "그리고 '나 자신을 찾아야 하나요?' '못찾으면 어쩌죠?'는 잘못된 질문이야. yes or no의 질문이 아니거든.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하는거야.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뒤는 없어." "에효. 만약 꿈을 찾았는데 꿈만 따라가면 돈이 안되고, 생활하는데 어려우면요?" "일단 찾고 말해. 근데 안 찾잖아? 계속 뭔가 모자라. 세상은 계속 부족하다고 말하고, 넌 그게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 안서지. 너 자신을 몰라, 네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뭘 할 때 행복한지도 모르고 그냥 살아. 남들 하는대로 힘들게 회사 다니고, 힘들게 돈 모으고, 그냥 그렇게 살아. 그럼 나중에 네 인생을 돌아봤을때 뭐가 남을까? 허무하지. 거기다가 여긴 어디? 헬조선이야. 그렇게 산다고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살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거지." "돈이라는 건, 네가 레벨이 높아지고 남다른 경쟁력을 갖추면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 있어. 지금 망설이는 건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이 무서워서지. 너만 그런게 아냐. 다 두렵고 힘들어. 다만 감당하느냐, 도망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레벨이 결정되겠지."
사부가 나보고 '넌 욕심이 많아'라고 할 때 그건 내가 물질적인 욕망이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거나, 욕망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부는 내가 모순되는 두 가지(있는 그대로의 안정 vs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동시에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정체성을 찾고 본질적인 영역에 있는 것을 욕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 것이었다. (자아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는, 플레이포럼 챕터1에서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기왕 인생게임을 시작한 거, 만랩을 찍어주겠어,"라는 마음 자체는 과한 욕심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삶의 안정성을 고스란히 누리면서 만랩을 찍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 그렇다면 현재 삶의 안정성을 가급적 유지하면서도 레벨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최적점(optimal spot)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전략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벨업의 필요충분조건인 <나 자신, 자아정체성 찾기>와 관련된 것들을 코어 욕망으로, 그 외 내가 누리고 싶은 것들을 곁가지 욕망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그리고 코어 욕망과 곁가지 욕망이 충돌하면 코어 욕망이 우선순위를 갖고, 곁가지 욕망은 이루어지면 땡큐, 안 이루어져도 '뭐, 할 수 없지'하고 괘념치 않기로 했다. 그렇게 마인드를 갖고 내가 갖고 싶은 것, 갖지 못해서 마음이 어려운 것들을 찬찬이 들여다보니, 내 마음 속에서 어지럽게 오가는 많은 욕망들이 대부분 곁가지 욕망이었다. 예를 들면, <포르쉐 마칸s> 같은 것.
어쩌다 청담동에 오게 되면 마음이 어렵다. 쾌적한 거리, 화려한 가게들, 그리고 값비싼 외제차가 즐비하다. 갖고 싶다는 욕망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이 아니다. 그 중 가장 내 마음 속에 강렬한 욕망을 불러 일으킨 것이 포르쉐 마칸s이다. 지나가다가 차 뒷모습을 봤는데, SUV 같아 보이는데도 날렵한 모양새도, 흘려 쓴 듯한 글씨체도, 미세한 펄감이 도는 연갈색 색감도, 라이트모양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포르쉐라니, '어차피 가질 수 없겠지. 저걸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나는 평생 가져보지 못하겠지?' (나도 모르게 아주 빈곤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패배감이 들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아주 선명했다는 것이다. 운전연수 아저씨가 '저 외제차 연수 많이 해봤어요. 왜냐 능력이 되거든.' 하고, 자기 PR 발언을 했을 때 '아, 내 차도 마칸s이면 좋았을텐데. 그럼 아저씨가 내 차도 대단하다고 생각했겠지?'하고 맥락과 상관도 없이 마칸s가 내 머리속으로 들어왔을만큼. 그런데 사실 난 혼자서 운전은 해본적도 없고, 차 타고 굳이 돌아다니지도 않는데, 나도 모르게 주입된 욕망과 알 수 없는 패배감 때문에 괜히 내 마음을 괴롭혔던 것이다. 전형적인 곁가지 욕망이다. 이젠 이런 곁가지 욕망 때문에 마음이 어려우면, '아. 갖고 싶은 마음이 들 순 있는데, 깊게 생각할 게 아냐. 이건 그냥 있음 좋고 아님 마는 영역의 것인데 뭐. 나중에 여유 되면 사면 되지.' 하고 한 쪽으로 치워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자아정체성에 대한 인지함이 없으면, 세상이 우리에게 욕망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욕망하게 된다. 강남 부동산, 포르쉐 같은 비싼 외제차, 폼 나는 직장, 명품 디자이너 옷과 가방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것들을 손에 넣기 위해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진짜 중요한 것을 할 시간도, 그럴 심적 여유도 갖지 못하게 된다. 문제는 정말 죽어라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 때로는 죽어라 노력해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얻고 나서도 만족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코어 욕망을 <발견하고>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버킷리스트는 곁가지 욕망으로 점철되게 된다.
M2프로젝트에서 오사부와 다른 멤버들과 함께 2016년 초에 인생계획표와 2016년 목표 선언서를 작성했었다. 그닥 오래된 일이 아니다. 사부를 만나고 2007년부터 내 꿈을, 비전을 찾겠다고, 자아정체성을 발견하겠다고며 고민은 많이 했었는데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금 리스트를 보면 가관이다. 다니는 회사에서 성공하거나, 좀 더 있어보이고 연봉을 올려 이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폼 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왜 내가 이것을 하고 싶고, 이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는 생략되어 있다. 오글거리지만, 부족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살짝 공개한다.
<내 인생 버킷리스트>
1)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2) TED 강연을 한다(무슨 강연을 할지는 정하지도 않았다),
3) 책을 쓴다 (역시 무슨 책인지는 없다)
4)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등등 그 밖에도 다양한 목표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2016년 목표선언서>
1) 회계관리 자격증을 딴다
2) 이직한다
3) 일본어 자격증을 딴다,
4) 마이너스통장의 마이너스 잔고를 모두 해결하고 월 100씩 적금을 붓는다,
5) 체지방율을 19% 이하로 관리한다,
등등 계획이 총 25개쯤 되는데 어느 하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목표 리스트와 실행일정을 보더니 사부가 딱 한 마디 했다. "넌, 아직도, 욕심이 너무 많아." "욕심이 많은게 나쁜 건가요? 다 해내면 되잖아요." "견적을 잘 재야지. 목표의 난이도가 높다면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도 많아질 수 밖에 없어. 진짜로 원하는 것이라면 장기 플랜으로 가져가야지. 목표가 많다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알아야지 이젠, 중요한게 뭔지."
2016년에 나는 1) 이직을 했고, 2) 마이너스 통장 상 잔고는 모두 해결했지만 적금은 붓지 못했다. 3) 체지방율을 19% 한번 찍었는데 지속적으로 관리하지는 못했다. 목표한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은 되지 않을 일이었다. 왜냐면 내 자아정체성과 내 안의 깊숙한 곳에 있던 욕망을 마주하지 않고 세운 계획이었다. 특히 회계공부는 내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거나, 혹시 사업체를 차리게 될 경우에 필요한 것인데 평소에 좋아하는 학문도 아니었고, 그쪽 일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으므로 지금 내 귀중한 시간을 이런데 쏟을 이유가 없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말 좋아하기는 하는지 고민해 보고 검증("코어 욕망"의 발견)해 보는 시간으로 썼어야 했다.
(1)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 그리고 (2)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돈, 시간, 노력이 든다는 것을 종합하면 우리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럼 1) 무엇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일단 찾고(렙업 루트 설정), 2)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루트 외 퀘스트 보상 포기). 나는 내 지난 기록을 보면서, 그리고 친구나 후배들의 연애상담이나 진로상담을 하면서 모순된 것을 바라는 과한 욕망(현재 남자친구에게 만족하지 못함 vs 더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란 확신이 없어 지금 관계를 유지하고 싶음 또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탐색해 보고 싶음 vs 지금 기회가 아니면 대규모 공채 기회는 오지 않으므로 일단 입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욕심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곁가지 욕망에 현혹되어 코어 욕망을 발견하는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목도하고 있다. 영화 <곡성>에서 나온 딱 두 마디만 기억하자. '뭣이 중헌디.' '현혹되지 마소잉.'
배경 이미지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80470&cid=59059&categoryId=59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