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가교환의 법칙
'사부, 일류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맨날 일류가 되라고 하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는데요.' '일단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일례로 너도 아는 J 같은 경우, 지금 잘 나가는 사장님이잖아. 걔가 다른 것이 잘난 게 아니야. 처음에 봤을 때 안 좋다고 평가받을 만한 부분도 많았지. 그런데 걔는 딱 하나, 진짜 좋은 면이 있었는데 얻고자 하는 것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있었다는 거야. 아, 하나 더 있다. 승부욕과 오기가 있었지. 위닝을 할 때 말이야.. [...].
사실 나도 승부욕 있는 사람이고, 비교당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사부가 늘 J의 이야기를 할 때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저 예를 든 것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내가 J보다 뒤처져 있다고 사부가 평가하는 것 같아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괜한 자격지심에 고깝게 듣지 말고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지금 더 큰 폭으로 성장해 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가장 큰 인생의 룰 두 번째, 등가교환의 법칙에 대해 간단히 풀어본다.
내 캐릭터의 일부 구간, 그 지겨운 35 랩부터 42 랩까지의 구간을 친구가 길러줬고, 평소에도 잘하는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했기 때문에 만렙을 찍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름 고급 템까지 갖추고 던전 공략에 들어갔다. 파티의 일부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길드원들이었고, 몇몇 비는 포지션은 공개 모집을 통해 구한 일면식이 없는 유저들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은 보스몹에서 몇 번 죽고 났더니, 플레이어 하나가 공개 창에 혼잣말로, 하지만 나를 겨냥해서 "아, 진짜. 사제 캐릭 샀나" 하고 말했다. 스스로 길렀다면 응당 잘 사용해야 할 기술을 왜 모르고 뻘짓하느냐 이 말이었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응석 부려가며 게임을 하다 보니 어떤 기술을 써야 할지, 언제 써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했다. 적어도 훈련이 되어 있다면 머리가 나빠도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였을 텐데 훈련도 부족했다. "죄송합니다. 산 건 아닌데, 늘 버스를 타서(도움을 받아서 기르다 보니) 그런가 봐요. 정말 죄송합니다." 창피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저런 낯 뜨거운 소리를 듣게 되다니. 결국 제대로 게임을 즐기려면, 내 포지션에서 한 사람 분의 몫을 하려면, 힘들고 고단한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다. 랩업할때 고생하든, 미뤄놨다가 만랩 달고 나서 뒤에서 두 배로 고생하든, 시기의 문제만 있을 뿐 피해갈 수는 없었다.
"등가교환의 법칙".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2001)에서 계속 언급되는 말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 인생게임에서도 적용된다. 문제는 플레이어들이 공짜 그리고 할인을 좋아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보다 싸게 얻기 위해서 편법을 저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고, 이를 자랑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분노에 휩싸이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에게 유리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1) 편법으로 얻은 것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추가적인 대가 지불이 필요하고, 2)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분노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어 이후 게임에 불리해진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욕망이 좌절되었다고 누가 편들어주거나 위로해 주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간단히 부연해 본다. 좋은 학점을 받고 싶다면 수업시간에 열심히 출석하고, 교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열심히 필기로 정리하고, 복습 및 보충학습을 하면 잘 받을 수 있다(=정액 지불). 그런데 같은 수업을 듣는 필기 잘하는 사람의 필기를 얻어 나올 것 같은 것 위주로 달달 외워도 학점을 잘 받는 경우도 있다(=편법, 할인받아 지불). 나는 편법적인 방법을 자주 활용하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시험문제 예측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이 매우 좋지는 못했다. 반대로 수업을 항상 열심히 듣고 필기도 기가 막히게 정리하던 '필기의 신' P언니는 항상 A학점을 받았고, 실력 또한 출중했다. P언니는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필기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당시 고급 필기를 빌리려면 현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맛있는 밥 한 끼는 대접하는 것이 예의였다)"언니, 이거 그냥 이렇게 빌려주셔도 돼요? 이렇게 열심히 하셨는데, 제가 그냥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맘껏 봐, 나는 사람들이 내 필기를 본다고 해서 직접 필기한 나보다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당당한 언니의 모습이 멋있었다. 예상했던 문제가 나왔고, P언니의 필기를 바탕으로 답안을 잘 작성했는데, 역시나 언니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 P언니는 지금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 중이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할 것이라, 잘 풀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원하는 것에 정액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 일류니까.
"올해 소원이 뭐예요?"하고 질문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로또 당첨"이라고 한다. 별다른 노력 없이 재미 삼아 산 복권이 당첨되어 몇십억이 생기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실제 복권에 당첨된 사람 중 세계적인 부자(혹은 한국에서라도 알아줄 만한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도, 덕분에 정말 행복해졌다고 자서전을 쓴 사람도 내가 알기로는 없다. 가장 잘된 경우라야,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네 정도일까. 정당한 대가 지불 없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거나,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불행을 겪게 됨으로 인해 사후적으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외신에서는 복권 당첨으로 인해 살인사건에 휘말리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왕왕 보도되곤 했었다. 부작용이 끼는 것이다. <십이국기: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에서 공주로 호의호식하면서 살던 쇼케이는 부왕(父王)이 학정으로 인해 탄핵당하고 길거리로 내쫓기게 된 후, 아버지의 치세 하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다. 자신을 '부당하게' 미워하고 괴롭혔다고 주장하는 쇼케이에게 라크슌은 그것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미리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 값어치만큼을 요구받게 된다고. 결과적으로 후불로 지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 노력도 없이 주어진 것은 사실은 그 값어치만큼을 너에게 요구하고 있는 거야. 쇼케이는 그것을 몰랐어. 그러니 미움받지.
<십이국기,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中>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자기계발 분야 강연자,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1회 강연료로 8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가서 들으면 (대가가 하는 말이라 전달력과 설득력이 물론 남다르지만) 강연의 내용 자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 목표를 구체화하고 기한을 정해라, 2) 글로 적는 것을 습관화해라, 3) 건강을 챙겨라 등등) 그런데 이 강연을 실제 찾아가서 돈을 주고 들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미래는 달라진다. 여기에 쏟은 시간, 돈, 노력, 열정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받은 가르침을 실천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상으로 제공받는 것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이 것을 잘 활용한 게, 학원의 "페이백" 시스템인데, 일단 돈을 지급하게 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돌려주는 제도다. 학원의 장부만 따졌을 때는 무상으로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먼저 돈을 지급하고, 페이백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추가로 노력을 투입한 후, 돈을 돌려받는 경우 사람들은 필사적이 되지만(일단 먼저 돈을 내야 하고, 조건을 달성해야 환급 조건이 되기 때문에 무상이 아닌 투자가 된다), "이 강의는 무상으로 제공되고, 진짜 좋으니까 꼭 와서 들으세요."하면 출석률부터 좋지 않다. 당연히 원하는 점수를 얻을 확률도 낮아진다. "투자한 게 아까워서라도" 하는 심리가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라. 돈이든, 시간이든, 심력이든 무언가가 지불되어야 대가가 따라온다.
내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서 얻은 것에는 애착과 자긍심이 깃든다. 때로는 운, 요행, 다른 사람의 시혜적인 베풂(불법적인 것이나, 반대급부를 요하지 않는다면)을 누리는 것도 좋다. 인생은 가끔 우리에게 그런 이벤트를 열어주니까. 다만 운, 요행, 다른 사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우리가 바란다고 해서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는 주어지지 않거나 줬던 것을 철회하겠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다른 사람의 도움의 경우). 이런 것들은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내가 대가를 지불해서 얻어낸 것에 대해서는 단독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 철회하거나 빼앗아 갈 수 없는 온전한 나의 것이다.
그러니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당한 대가가 무엇일지 충분히 숙고하여 섭섭지 않게 그 대가를 지불하자. 그러면 인생은 내가 지불한 것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그 반대급부를 내어준다. 우리가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누릴 수 있는 급부를. 다만 시전 시간이 긴 기술이나, 일정 확률로 성공하는 기술, 랜덤으로 발현되는 등의 옵션이 걸린 기술의 경우에는 정당한 대가를 돌려받는 시기나 방법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주긴 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