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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Nov 05. 2022

법무팀은 왜 맨날 계약서를 이렇게 늦게 주는 거야?

"간단한 거니까 퀵하게."

법무팀은 왜 맨날 이렇게 늦어?


"지난주에 검토 요청한 계약서, 회신 언제 가능하실까요?"

후후. 꽤 긴 세월 동안 사내변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검토 의뢰한지는 얼마 안 되기는 했는데, 원래 하던 업체고, 거래조건도 비슷한데, 퀵하게 승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부연설명이 보통 붙는다. 


법무팀과 일하는 타 부서(법무팀에서는 "현업부서"라고 보통 말한다)에서 보통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안다. 계약서 작성하고 날인하는 일이 본인의 주 과업이 아니라는 점이 하나요, 당장 일에 속도를 내서 진행해야 되는데 계약서 검토, 날인 때문에 업무 일정이 늘어지는 것이 불편하다는 점이 둘일 것이다. 이유를 하나 더 찾아보자면, 계약서 검토, 날인 절차는 사규로 보통 명확하게 정하고 있어서, 계약서 검토의뢰, 날인이 늦어질 경우 현업의 규정 위반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점 계약서 검토를 독촉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의뢰인의 심정을 십분 공감합니다만...


나도 안다. 상대방과 협상하느라, 유관부서와 협의가 필요한 내용을 풀어내느라, 사수와 팀장에게 보고하느라, 때로는 임원 보고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내 의뢰인인 현업부서의 실무자가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급적 계약서 검토, 법률자문이라는 게, 그들 입장에서 '퀵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러나 법무팀 입장에서는 도저히 '퀵하게'가 되지 않는다. 


후후. 왜냐고? 법무팀에는 과거부터 쌓여온 검토의뢰 건이 쌓여있다. 다양한 부서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신사업을 하는 분야가 많아질수록, 새로운 프로젝트에 회사가 관심을 가질수록 업무가 쌓이는 속도도 빨라진다. 일은 많거나 많아지는데 비해, 법무팀 인원은 넉넉하기 힘들다(쿠* 등의 일부 플랫폼 기업은 다르다고 들었다). 보통 법무팀은 경영지원 조직에 속하며 돈을 벌어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을 쓰는 사람들이라 채용, 충원이 어렵다는 말을 여러 회사에서 들었다. 


그럼 쌓여있는 검토의뢰를 어떤 순서로 처리하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입선출'이 원칙이다. 검토의뢰를 먼저 올린 사람에게 먼저 회신을 한다. 그래서 신속한 검토를 읍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의뢰한 검토 건을 처리하고, 순차로 회신하여 드릴 예정입니다. 검토 회신일은 차주 화요일로 예상됩니다"와 같은 챗봇 같은 대답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참 안타깝지만, 원칙은 지켜져야 하니까. 


그럼 계약서 검토를 빨리 받을 방법이 없는가?


다행히도(?) 꼭 그렇지는 않다. 나도 우선 회신해 주는 검토의뢰건들이 있다. 굿 케이스와 베드 케이스를 하나씩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베드 케이스. 계약서가 늦어지는 게 바로 법 위반을 구성하는 경우! 이건 꼭 우선 검토해서 날인까지 빠르게 되도록 챙겨야 한다(공정거래위원회 소관 법령이 대체로 그렇다. 예를 들면 "하도급법"). 현업 실무자에게도 해당 계약건은 늦어지면 다른 계약보다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주지 시키고, 검토하자마자 날인과 교부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그다음, 굿 케이스. 검토의뢰를 알/잘/딱/깔/센으로 올려주는 경우. 검토자도 사람인지라 센스 있게 올라온 검토의뢰는 먼저 검토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심정적인 이유보다도, (1) 기존 업무 히스토리, (2) 검토의뢰 배경, (3) 기존에 검토받았던 유사 건의 계약서 등을 같이 올려주면, 법무팀에서 새로 수소문해서 이를 확인하지 않고 의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회신 의견의 퀄리티가 올라가는 것은 덤이다.) 알잘딱깔센이 아니더라도, 관련 자료를 풍부하게 올려주는 것이 빨리 회신 받는데 도움이 된다. 


보통 검토의뢰 지를 작성하면서 가장 많이 작성하는 문구는 "제반 리스크 검토 바람"으로, 나머지를 공란으로 올리는 것인데.... 후후, 법무에서 정말 모든 리스크를 두루두루 검토해서 회신해야 한다면 검토 기한은 자연스럽게 늘어진다는 걸 알아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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