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 아이만 손해 보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면 어떻게 하죠?
조카와 놀이터에 놀러 나왔던 적이 있었다. 조카는 그네 하나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날름 올라가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카가 그네를 얼마 타지도 못한 시점에! 5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와서 그네가 타고 싶은지 슈렉고양이의 눈망울을 하고 조카를 쳐다봤다.
조카는 그 눈망울을 외면하기 어려웠는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꼬마에게 그네를 양보했다. "좀만 타고 줘."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 꼬마는 그네를 한참 타더니, 조카가 아닌 자신의 누나에게 그네를 넘겨줬다. 조카는 나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꼬마의 누나가 그네를 타고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학교와, 부모님과, 고모(즉, 나)에게 배운 대로 양보의 미덕을 실천했다.
그러기를 15분. 그 꼬마의 누나는 내려올 기색이 없었다. 조카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조카를 위해 고모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네를 차지하고 있는 꼬마의 누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이 그네 말이야. 원래 얘가 타고 있었던 건데, 꼬마한테 잠깐 양보해 준 거였거든?"
"그런데요?"
"그런데 꼬마도 오래 타구, 너도 계속 타고 있으면 양보해 준 얘는 계속 탈 수가 없잖아."
"지금 제가 타고 있으니까 제 건데요."
"아니, 그네는 공공시설물이지, 네 건 아니지. 그리고 공공시설물은 번갈아 사용하라고 있는 거야."
"아, 뭐래는 거야."
"일단 꼬마 다음에 타려고 얘가 줄 서고 있었는데 네가 새치기한 것부터가 잘못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받았다. 결국 양보한 조카만 바보가 된 셈이 아닌가. 나는 조카의 손을 홱 잡아채고, 그네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들으란 듯이 말했다(물론 이 행동도 어른스럽진 않았..).
"야, 우리 다른 데 가서 더 좋은 그네 타자.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이랑 오래 말 섞을 가치가 없다."
조카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다른 놀이터로 향했다. 다른 놀이터에 더 좋은 그네는 없었다. 그냥 비슷한 그네만 있었을 뿐. 하지만 타는 맛은 처음 탔던 그네를 탈 때의 맛보다 씁쓸했으리라.
앞으로 조카의 삶에, 우리 아이들의 삶에 양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만 가득해지면 어떡하지? 양보라던지, 이타심이라던지, 헌신이라던지, 나눔이라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어떻게 하지?
만약 주변에 그런 사람들만 가득하다면, 양보해라, 나눠라, 상대방을 이해해 줘라 등등의 가치나 미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게 옳은 일일까? 아니면, "양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손톱만큼의 손해도 보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고 있어. 그런 사람에겐 너도 양보하면 안 돼. 호구되는 거야"라고, 소인배 같지만 (찌질하게도 들리지만) 실무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게 더 지혜로운 일일까? 아주 씁쓸한 고민을 하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