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게임 룰 아홉:

좌표를 찍어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by 티라노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많은 사람들이 방향성 없는 성공과 구체적이지 않은 행복을 꿈꾼다.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나 있고, 주변에서는 정신없이 계속해서 과업을 던져주기 때문에 그냥 되는대로 사는대로 살게 된다. 착하게 자라라, 공부 열심히 해라, 취직해라, 아이 낳아라, 가족 먹여 살려라, 노후 대비해라 같은 굵직하고 끝도 없는 과업들을 계속 하다보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뭔지 제대로 질문할 기회도 잡지 못한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 행복해지겠지. 그래야 되는 거 아냐?' 마음속 한구석에 이런 마음을 품고 그냥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낸다. '이렇게 힘든 걸 참아내고 있는데 소박한 행복, 화려하지는 않아도 탄탄한 삶이라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건 무언가 잘못된 거야. 그럴리가 없어.'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서 돌아봤을 때 '아 정말 잘살았어, 진짜 만족스러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어느새 벌써 10년이, 20년이 지나가 버렸어.'하고 소진되어가는 사람들이 많을까.


난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는데 행복하지 못한 사람, 삶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이가 들수록 그 무게는 점차 무거워진다. 나도 열심히는 살았지만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확한 목적지와 방향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뭔지 '그 나이를 퍼 먹도록 그걸 하나 몰랐'다. 그걸 모르는데 성공이, 삶의 진정한 기쁨이 소 뒷걸음질에 쥐 잡듯 어떻게든 얻어걸려줄리 만무하다. 내가 원하는 걸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오롯이 집중한다. 그 집중하는 가운데에서 이미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할 때, 나는 참고, 견뎌낸다. 때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을 해야하는 어려움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다면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도 기대도 없이, 그냥 해야 하는 것만 있는 삶은 첫째로 재미없고, 둘째로 잘 살아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꿈꾸는 인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분명히 좌표를 찍어야 한다. <이별택시> 노래 가사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하고 물어보면 기사가 뭐라고 할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손님이 말해야지." 또는 "아무 데나 가주면 되나? 우리 집 앞에서 내려주면 됩니까?" 뭐 이렇게 답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내가 가고 싶었던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할 확률은 0에 수렴한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고 행선지를 말해야 한다. "IFC 몰에서 내려주세요!"와 같이 구체적으로.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이 포스팅에서 인용표시를 한 것은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노래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자극을 받았던 세월만도 십수년인데 아직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뭔지 잘 모르다니, 정말 어려운 질문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사부를 만나고 처음 몇년간 내 스스로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성장폭이 둔화되고, 정체기가 온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다. 사부에게 물어봤다. "저, 요새 좀 방황하는 것 같아요. 쭉쭉 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오질 않아요." 사부는 이렇게 답해줬다. "넌 어느정도는 컸지. 그래서 이제 내가 떠먹여 줄 수 있는 단계를 지나서 그래. 요리를 해서 밥상을 차려줘, 숟갈 들어줘, 씹어줘, 먹여줘 이렇게 해서 길러놨더니 이제는 스스로 씹기는 해야 되는 단계가 된 거지. 너 만의 비전을 찾아야 해. 그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해줄 수 없는 영역이야. 그건 너 스스로 해야만 의미가 있으니까." "아, 비전이요.." 말줄임표에서 뉘앙스가 혹시 읽히는가? '아, 뻔한 얘기잖아요. 꿈, 비전 맨날 찾으라고 하죠, 근데 지금까지 못 찾았잖아요. 인생에 굴곡 없는 평범한 대학생 A인데 뭐 그렇게 거창한 꿈, 대단한 사명이 있겠어요. 있다한들 부자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특출 난 재능도 없는 내가 꿈만 꿔서 뭐해요. 다른 성장할 수 있는 비기를 달란 말이에요!'하는 마음이지만 항상 가르침을 준 사부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입은 꾹 다물고 머릿 속으로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모양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는데 보따리 내놔라, 물에 젖었는데 어쩔 거냐 하고 따지는 격이라 망설이고 있는 상황.


비전을 찾는다는 것은 참 어려웠다. 아니, 지금도 어렵다. 생각해 보면 어려울 이유가 없는데도 어렵게 느껴진다. 출제자가 나고, 대답하는 사람도 나고, 공부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틀린 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틀린다 한들 어떤 불이익도 없는 질문인데 사실 그래서 어렵다. 누가 맞다 틀렸다 알려주는 질문이 아니어서, 고독하게 스스로 해내야 하는 작업이어서 어렵다. 또 만약 내가 어떤 대답을 도출했다가 그대로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면 어쩌나, 내 마음이 변해서 다른 것을 원하면 어떡하나, 내가 원했던 것이 이루어졌을때 '이건 내가 생각하던 게 아닌데'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두렵다. 한번뿐인 내 인생을 걸고 하는 질문이니까. 하지만 대답을 해야 한다. 이건 마치 "<프리오바치오바치>라는 이탈리안 비스트로에 가서 자리에 앉아 메뉴를 받았습니다. 오징어먹물빠네라는 메뉴가 궁금한데, 만약 시켜서 나왔는데 맛이 없으면 어쩌죠?" 같은 질문이거든요. "시켜서 먹어보세요. 맛이 없으면 그냥 남기고 다른 거 시키세요. 만약 그게 싫으면 안전한 해산물 페스카토레 시키세요. 리스크를 감당할 만큼 먹고 싶지 않으신가 보죠. 그런데 계속 주문하지 않고 있으면, 점점 더 배고파지실 거예요!" 답은 뭐라도 주문을 해보면, 나의 인생 메뉴를 곧(곧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 메뉴를 먹을 때의 당신의 만족도는 그냥 먹으라는거 먹을때의 만족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 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네 꿈이 뭐냐?, 비전이 뭐냐?"하고 물어보면 참 막연하고 부담스럽다. 하상욱 시인도 <어쩌다 어른> 강의에 나와 이런 에피소드를 언급한 적이 있다. "넌 꿈이 뭐냐"는 질문을 싫어하는 학생이 있었다고. 심지어 "전 꿈이 없어요."하고 펑펑 울기까지 했다고. 나도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했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었다. 사부가 내 안에 답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여러 번 찾아봤는데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사부에게 재차 질문했다. "제 안에 답이 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보고 물어봐도 답이 없던데요?" "네 과거에 답이 있어. 즐거웠던 순간,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 칭찬받았던 일들,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던 일들 같은걸 떠올려봐." 내 과거를 하나의 책을 읽는 것처럼 주욱 떠올려 보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생각났다. 철봉 매달리기를 1초도 못 버텨 테니스채로 엉덩이를 맞았던 일, 구구단을 못 외워서 창피당했던 일, 친구 따라 논설문 쓰기 대회 나가서 상 받았던 일, <데미안>이 너무 재미있어서 뒷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서 아껴가며 읽었던 일 같은 것들이. 그대로는 정리가 잘 안 돼서 나 스스로와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소소한 얘기부터 시작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만화/영화 주인공이 누구야?", "네가 가장 화났던 순간은 언제야?" "이런 건 정말 참을 수 없어. 그런 게 있다면 어떤 거야?" "누가 선물을 준다면 뭘 제일 갖고 싶어?" "넌 주변 사람 중 누가 제일 좋아? 누구를 제일 닮고 싶어?" 같은 얘기들을 그냥 기탄 없이, 막히면 막히는대로, 논점이 일탈되면 일탈되는대로 그냥 해봤다. 그리고 고민해보다가 사부에게 말했다. '사부, 저 변호사가 될래요.' (인터뷰의 자세한 내용은 별도 포스팅으로 나눌 예정이다.)



목적지를 입력하고, 경로를 설정하세요.


요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리고 언론 기사들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공통적인 정서가 있다. 바로 '다급함'이다. "살아남아야 해. 조금만 어긋나도 끝장이야."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속에서도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래서 회사에서 고과도 잘 받아야 하고, 그 외 자기계발도 해야 하고, 인맥관리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상시적으로 느끼고 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도 생긴다. 나는 그런 마음의 다급함 때문에 내 걱정과 우려를 검증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를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내 자신의 특성과 흥미를 발견하는 것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로 생각했었다.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과업이 정해져 있다면 그런 걸 알아서 뭐하나. 그냥 해야 하는 것을 빨리, 효율적으로 해치우는 게 낫지. 그런데 막연히 어디론가로 걸음만 재촉할 것이 아니라 한숨 돌리고 여기가 어딘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좌표를 찍고 거리를 재고 경로를 설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늦었다고 해도, 영영 잘못 가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할때의 몰입도라면 빠르고 즐겁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공부를 하루에 14시간 하는 건 힘들어도, 와우를 하루에 14시간 하는 건 힘들지 않았던 것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생게임 룰 여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