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게임 룰 열 하나:

비전을 품어야 만랩이 된다.

by 티라노

너의 비전은?


와우를 처음 시작하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할 때에 우리는 외모, 종족, 직업을 조합하여 만들어 낸 캐릭터에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을 붙인 다음에야 비로소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캐릭터를 만들 때는 목표(나름의 사명)가 있다. 나의 첫 번째 캐릭터는 언데드 마법사였다. 마법사가 재미있고, 멀리서 기술을 쓰는 캐스터임에도 불구하고 타격감이 좋다고 하길래 골랐었다. 재기 발랄하고 빠르게 레벨업할 수 있는 딜러를 만들고 싶었다. 몬스터를 순한 양으로 변하게 만드는 "양변"이나 축지법과 같은 "점멸" 능력도 좋았고, 빵이나 음료를 스스로 만들어서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니 다른 플레이어를 치유해 주거나 부활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면서 직업을 치유능력이 있는 사제로 변경했다. 마법사 캐릭터는 만랩을 찍지 못했지만, 사제 캐릭터는 만랩을 찍었다. 나는 게임은 취미로만 가끔 하는 라이트 유저였고, 게임에 재능도 없었지만 사제 캐릭터만큼은 욕심이 났다. 사부에게, '아, 사제는 대미지 스킬이 별로 없어서 레벨업하는데 오래 걸리고 지겨워요. 근데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사부가 바로 '네가 그런 사람이라 그런 거지. 너는 안 그래 보이지만 사람을 낫게 하고 살리는 그런 일을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해 줬었다. 나도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내 비전이나 소명은 그런 방향이었던 모양이다.



비전은 어떻게 찾나요?


오사부가 특별히 강조하며 온라인 강의까지 찍어줬던 내용이다. 막연하게 접근하면서 어려워하는 제자들을 위해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의 모습을 통해 좀 더 기억에 남게 강의를 해줬었다. 간단히 옮겨보면 이렇다.


1. (내가 가지고 싶은 비전을 갖기로 그냥) 결정해라.
2. 내 결정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라.
3.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어라.


일단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루피는 1화부터 자신을 "내 이름은 몽키 D 루피, 해적왕이 될 남자야!"라고 소개한다. 자기 비전에 명확한 인식이 있어, 그것이 루피라는 인물의 자아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루피가 해적왕이 되겠다고 하자, 코비는 "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무리예요"라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 그러자 루피는 이렇게 답한다. "할 수 있냐 없냐가 아니야. 되고 싶으니까 되는 거야. 해적왕이 된다고 내가 정했으니까." 만화니까 가능한 거라고, 루피가 처음부터 주인공 버프를 받아 태생부터 남다른 사람이니까 그런 거라고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마음의 실력이 된다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변한다. 그걸 깨닫는 것은 한 끗 차이를 만들지만, 그 차이가 일류와 나머지를 가르게 된다. 누군가 아주 적절한 비유를 해줬던 적이 있다. 그 한 끗 차이는 각도기의 벌어진 각도의 차이와 비슷해서 전진할수록 그 차이가 명확하게 보이게 된다고.



루피해적왕.PNG 만화 <원피스> 몽키 D 루피

출처: https://blog.naver.com/sh981031/221077439305

참조링크: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ong2ed&logNo=22028965108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비전을 찾는 위 3가지 방법은 되게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실천하기 어렵다. 첫째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일단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자기 자신의 욕망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A라는 것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동시에, A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해야 한다. 설령 A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머지 선택지가 모두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직면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둘째로 결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내가 진짜 갖고 싶던 것이라도 그것이 생기는 기쁨은 잠시지만 통장의 출혈은 크고, 매달 나가는 카드값은 부담스러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내가 A를 하겠다고 결정했다고 그것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진다. 'A를 하겠다고 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나머지를 포기했는데 만약 A도 되지 않는다면 그때의 절망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서 현재 내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을 붙들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려는 결단을 하지 못한다. 셋째로, 일단 대가 지불을 각오했다고 해더라도 자신의 결정에 대해 믿고 나아가는 것은 어렵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공상'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역시 무리겠지?'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갔으면 더 쉽고 좋지 않았을까?' 같은 결정을 번복하게 만드는 달콤한 공상 말이다.



"변호사가 될래요." "뭐?" (일단 결단하기)


나는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흥미가 있는 것만 들어서 어학도 아닌 문학만 골라 들었다. 졸업 때까지 제2전공 과목으로 정치학, 경영학, 법학을 조금씩 듣긴 했지만 깊게 판 것은 없었다. 교직도 별도로 이수하지 않았다. 뭔가 정해야 할 것 같기는 했는데, 그 결정을 내릴 준비도, 감당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아서 결정을 유예했다. 영어는 사실 두루두루 쓸모가 있고, 학교 간판도 성적도 나쁘지 않고, 인턴이랑 교환학생 경험도 있으니 어떻게든 괜찮은 곳에 취업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당시는 지금보다는 취업난이 심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냥 사는 대로 사느라 열정이 없어서 레벨업이 매우 더뎠다. 에너지가 없어서 음주가무 그 외 기타 인생의 재미난 것을 적극적으로 즐기지도 못했기 때문에 방황의 스케일은 작았지만, 그 기간이 길었다. 스펙관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단조롭고 무기력한 일상을 보냈고(목적의식이 없어 의지가 없었으므로 아주 잘하지도 못했다), 애니메이션, 미드, 게임, 책 정도가 소소한 자극과 흥미를 주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때 즈음 내 삶 속의 중요인물이 된 사부가 계속 "비전을 찾아야 해, 이대로는 안돼."하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읊어댔다. "고민해 봤어?" "아, 사부, 고민은 해봤지만 모르겠어요." "더 해봐." "..."


'아, 대체 뭘 하라는 거야.' 속으로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싫어하는 건 뭐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이런 거라도 답을 찾아보면 답이 나오려나.' 하고 사부의 말을 여러 번 되새김질했다. 사부의 집이나 직장은 내 행동반경과는 거리가 있어서 늘 한 1시간, 1시간 반 거리를 왕복해야 했는데, 고속버스나 지하철 창에 비친 풍경을 보며, 내 얼굴을 보며 답을 머리 속으로 썼다 지웠다 했다. 그러면서, '나는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사람이 싫어.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적어도 약한 사람에게 친절하고, 강한 사람에게도 좀 약하거나.' '내가 외모로 보면 좀 왜소하고, 순한 인상이지만 사실은 반골기질이 있지. 납득이 안 가는 건 따져 봐야 하는 성격이고.' '난 그래도 글 쓰고 말하는 건 좋아해. 숫자는 아무래도 자신 없어. 나보다 잘 만지고 잘 만들어낼 사람 많지.' '수공 기능을 쓰는 일은 젬병이야. 약점을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강점을 뾰족하게 다듬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아.' 등등의 수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약자도 도와줄 수 있고, 그 직업을 가지는 것 자체로 무시당하는 일이 줄어들고, '여자니까 그 일이 어울려' 같은 우먼 박스에 갇힌 말 듣지 않아도 되고, 글 쓰고 말하고 논리를 만들어 내는 일인 변호사를 하면 되겠어!" "맞아, 생계가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신념을 지켜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실력은 없어. 생계 부분도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될 테니까." 그래서 사부에게 말했다. "저 변호사가 될래요." 비전을 찾았다고 하기엔 막연한 이유와 희미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결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저 여기 왜 왔을까요. 진짜 힘들어 죽겠어요.

- 대가를 지불하기


그다음은 눈물겨운 "대가 지불"의 단계였다. 법 공부를 진지하게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차가운 이성보다는 뜨거운 감정(감성은 아직 잘 모르겠다)이 앞서고, 성실한 노력보다는 요령과 감으로 공부했던 내가 감당하기에는 로스쿨 생활은 참으로 혹독했다. 카이스트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며 예전엔 법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스펀지처럼 법을 빨아들이는 귀신같은 동기(그 동기가 인턴을 했던 법원 재판장님께서도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칭찬했을 정도였다), 아침 7시 전에 도착해서 밤 10시까지 늘 자습실의 자리를 묵직하게 지키는 성실함 갑 동기부터 학교 내신성적 관리도 잘하지만 그에 성이 차지 않아 국 내외의 변론대회를 꾸준히 찾아 참석하면서도 후배에게 항상 친절한 선배 등 그동안 만나본 적 없는 강한 실력자들을 만났다.


기본 능력치도 나보다 높은데 축적한 공부의 양도 나보다 훨씬 높은 선배, 동기들을 보면서 내신성적, 모의고사 모두 좌절스러운 석차를 받았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저는 늘 수석이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 자신과의 경쟁을 시작했죠."라고 인터뷰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주변을 경쟁 상대로 삼아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서 나 자신과의 경쟁을 시작했다. 3년 새 팍삭 삭고, 새치가 돋았다. 가족 모임에 참석해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별안간 우는 찌질함도 보여 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시험 보고 합격 발표가 나기 전의 4개월 동안 졸업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학교를 다시 다니라는 꿈, 답안지 순서를 바꿔 써서 0점 처리되는데 구제 방안이 없다는 꿈,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찾는데 내 이름이 보이지 않는 꿈같은 악몽을 번갈아 가며 꾸었다. 그런 힘든 대가 지불의 순간이 끝나니 어느새 변호사 자격증이 주어졌다. (되고 보니, 변호사란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글 쓰는 일도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이렇게 키보드를 잡고 있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사족을 붙이자면, 사명과 비전은 여러 개를 가질 수도 있고, 중간에 바꿀 수도 있으니 결심을 지나치게 어려워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될 놈은 된다. -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기


그 힘든 대가 지불의 순간 동안, 사부에게 자주 연락해서 컴플레인 아닌 컴플레인을 자주 했다. "아, 저 여기 왜 왔을까요. 힘들어 죽겠어요." "아, 저 왜 이렇게 순진했을까요. 미리 예습이라도 하고 올 껄." "다들 너무 잘해요. 능력도 뛰어나고. 저 혼자 죽어라 하고 새벽까지 공부하고, 우울해도 참고, 놀고 싶어도 참고, 다 참으면서 했는데도 시험 합격 못하면 끝이잖아요. 아 진짜 그럼 한강 갈 거예요." 같은 컴플레인. '사부가 소명을 찾으라고 했잖아. 내가 잘 못 찾았으면 잘 못 찾았다고 좀 해주지. 아니면 좀 더 미리 대비하라고 해주지' 하는 마음으로 어린애 같은 투정을 많이 부렸다. 실제로 동기 중 몇 명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휴학하거나 자퇴했다. S대 출신에 학점도 좋고 뛰어난 영어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친했던 동기는 휴학을 한 이후 소식이 요원해졌다. 사부는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될 놈은 된다. 원래 뭘 해도 될 놈은 다 돼. 여건이 안돼도, 그래도 될 놈은 된다." '상황에 변명하지 마', 처럼 들리기도 했고, '너는 될 놈이니까 힘내'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무너지는 멘탈을 잡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어떻게든 될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고 힘들어도 엉덩이 붙이고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 일단 결정한 것은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뛰어들라는 것은 그런 의미다. '나는 될 놈이니까 이것도 될 거야. 하지만 만에 하나 안된다고 해도 괜찮아. 나는 될 놈이니까. 이번에 안 돼도 다음에 더 잘 된다.' 이걸 진짜로 믿고 현실로 끌어올 마음의 실력을 갖추라는 의미다.


어떤 결정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결정을 믿는 것이 중요하지요. 내 공격이 내 방어가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51.jpg?type=w2 SBS <육룡이나르샤> 32화 중

출처: https://blog.naver.com/sujin0412/220603618855




비전, 사명을 찾는 일은 사실 쉬우면서도 어렵다. 일단 결단이 어렵다. 하지만 그 후에는 결심한 대로의 인생을 살기 위한 도전과 과제, 그리고 기회가 알아서 찾아와 준다. 해적왕이 되겠다는 루피에게 여러 강한 적들이 나타났지만, 새로운 항로와 새로운 동료도 나타났던 것처럼. 그렇게 큰 꿈을 꾸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시련을 만나 다치고 상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그 시련 속에서 루피는 해적왕으로 매순간 새롭게, 더 강하게 단련되어지는 것이다. 원하는 모습이 되기로 결정하는데서, 도망치지 않고 감당하는 힘겨운 하루하루 속에 당신의 완성형, <만랩> 모습이 있다. 당신의 꿈에 공명해 주고 곁에 함께 있어주는 조로 같은 사람을 만나면 더욱 좋고!


조로_해적왕.PNG 만화 <원피스> 롤로노아 조로

이미지 출처: http://cafe.naver.com/10onepiece/24150


배경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funz005/22031358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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