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게임 룰 열여섯:

남을 품을 수 있을 때 큰다.

by 티라노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질문이 뭔 줄 알아?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어. 사람이 당연히 네가 해준 만큼 너에게 돌려줄 거다, 혹은 네가 생각하는 상식에 따라줄 거다, 그런 기대를 버리라니까? 안 그래. 사람은 그렇지가 않아." "근데 그래도 부당한 건 부당한 거 아닌가요? 그래도 자기가 팀장인데, 물리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상무님께 먼저 보고해 놓고 팀원들에게 '난 할 줄 몰라, 그러니 알아서들 하고 결과물 가져와' 하고 마사지받으러 가는 건 좀 아니잖아요." "잘 봐, 잘 봐야 해. 그 사람의 행동이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냐의 문제가 아니잖아. 그 사람은 그럴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했어. 어쩔 거야? 네가 어쩔 방도 있어?" "아니죠.." "그 사람이 잘했다는 거 아니야. 문제는 네가 어떻게 그 상황을 해석하고 대응하느냐 이건대, 지금 네가 반응하는 건 아주 하수의 반응이지.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없는 거지. 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용납함이 없지. 사람이 모두 선하다, 알아서 다 잘 행동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틀린 거야. <육룡이 나르샤> 봤지? 그런 희대의 천재 정도전이 왜 죽는데? 인간을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봐서 그런 거잖아. 그리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해. 너도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는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할 걸? 어떤 상황 하에서라도 다 잘만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용납할 줄 알아야 해." "그럼 저만 피곤해지잖아요." "아니지, 그러니까 네가 아직 멀었다는 거야."


상사병.PNG 출처: https://blog.naver.com/seolies/220867942477



그러려니 했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 사부는 어떻게 하는데요?" "나는 그러려니 하지.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아, 어떻게 그래요.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데." "봐 봐, 내가 너한테 똑같은 얘기 몇 번 해주고 있어? 인간적으로 이제 알아들을 때도 되지 않았어? 너 바보도 아니잖아. 머리도 있는 놈이 똑같은 말을 백번씩 해도 못 알아듣잖아. 내가 답답하겠어, 안 답답하겠어?" "그야, 답답하겠죠." "근데 내가 아, 답답해하고 말해, 안 해? 안 하잖아? 왜? 그러려니 하니까. 그럴 줄 알았으니까. 그냥 다시 말해주고 마는 거지." "에효, 전 사부처럼 답답한 거 다 참고 누구 가르쳐줄 자신이 없어요. 그러려니 하다 보면 진짜 화나고 짜증 날 것 같아요." "감정이 일어나는 건 잘 지켜보고 용납해줘. 감정은 네가 아니야. 하지만 쌓이면 폭발하니까 적절히 바깥으로 내보내 줘야지. 하지만 그걸 기초로 뭘 판단하거나 무빙을 하지는 말라는 거지. 그리고 그냥 받아들여. 사람들은 다 선하지 않아. 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알 수 없어. 그니까 사람에게 기대하는 건 틀려. 사람은 믿고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니야. 그냥 사랑해 주어야 할 존재야. 등에 칼을 꽂아도 괜찮아. 내가 널 감당해 주기로 결심했으니까. 사람의 실력은 그런 거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호해 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럼 받아주는 사람 손해잖아요. 되돌려 받는 것이 전무하면 주는 사람만 소진되어 가는 것 아닌가요?" "그럴 것 같지? 근데 그렇지가 않다? 나에게 아무런 이득도 주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씩 품어가면서 나는 강해지는 거지. 레벨업을 하게 돼. 그리고 돌아보면 예전에 힘들었던 게 힘들지 않게 되지. 레벨업을 했으니까. 똑같은 놈들끼리는 싸워. 서로 마음 상하지. 근데 네가 레벨이 한참 위야. 너는 서른 살이고, 옆에 있는 아이는 세 살이야. 너 세 살 짜리이랑 전력으로 한판 붙냐? 걔가 하는 철없는 말에 진심으로 열 받아? 아니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 열 받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뭐다? 역설적이게도 너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거야." "과연 될까요. 괜히 심력만 소모하는 거 같은데." "사람들은 역설적인 진리들은 소화하는 걸 힘들어해.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람을 품을 줄 알 때 큰다는 거야. 그걸 모르는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이류야."


당시엔 내가 휩싸여 있는 감정 때문에 사부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에게 불평하고, 실수를 하거나 나에게 불리한 일을 하면 가차 없이 쳐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과 일하든, 어떤 어려움이 있건 간에 자신의 일을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는 따듯함과 용납함이 있는 사람을 동경하고 닮고 싶었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 셈이었다. 일단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리더가 되고,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대가 지불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는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품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사부, 저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는데 매번 잘 안되었어요. 마음은 도와주고 싶은데 잘못 시작했다가 갑자기 확 기대면 부담스럽고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더라고요." "네 실력이 아직 고만고만한데 딱 봐도 어려운 과제부터 잡으면 어떡해.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풀려고 하면 당연히 어렵지. 비교적 난이도가 낮고 중요도가 높은 사람들을 품는 것으로 시작해야지. 왜냐면 어렵지 않게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덜 부담스러울 것이고, 중요한 사람이라면 도망칠 수 없을 테니까. 가족도 좋지만 어려울 순 있어. 너무 가까워서 잘 안 보일 수 있거든."



다른 사람을 품어주는 사람의 멋:


다른 사람을 품는 리더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직을 한 후 만난 팀장님을 통해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 조금 실감했다.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경이적인 스피드로 해내고, 임원 간 의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균형점을 찾아서 보고서를 쓰고, 여러 팀 간 의사 조율이 필요한 경우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잡음 없이 처리해 내는 사람이었다. 업무평가는 당연히 좋았고, 임원, 팀원, 타 팀 후배들 할 것 없이 모두 이 사람을 인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양한 업무가 유독 집중되어 정신이 없었던 날, 우리 팀의 주임님이 작은 (그러나 큰 일로 비화된) 실수를 한 일이 있었다. 회장님 보고까지 완료된 사항을 다시 수정해서 재보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팀장님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바로 메일로 임원 보고를 했다. "제가 잘 못 판단하여 다시 보고 드리는 점 송구합니다. 업무 마감 기한까지 책임지고 시정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보통 "우리 팀 oo가 실수를 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제 불찰입니다. 앞으로는 관리감독에 더 주의하겠습니다"라는 예의를 차린 면피성 보고를 자주 봐온 나에게는 나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정말 고수는 다른 사람을 품어도 소진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게 자신의 그릇과 지평을 넓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회사에서 지낼 때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팀장님이 계시니까 괜찮아, 팀장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괜찮아, 하고 마음이 알아서 잡혔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도 그런 모습이었다.



지켜주다 보면 강해진다.


사부는 계속 "너는 일단 내 밑에서 배울 만큼 배웠어. 이제부터는 너 스스로 성장해야 해. 그러려면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해. 멘티를 두라고 여러 번 말하잖아. 귀찮을 거야, 힘들 거야, 이런 마음으로 보류해 왔던 숙제를 이제는 할 때가 되었어." 하고 말했다. 하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근데 사부가 사람과 관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 것만으로도 많이 바뀌었다. 누가 나를 세워주지 않아도 내가 사람들을 용납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가족들과의 시간도, 회사생활도, 또 그 외 마주하게 되는 사회생활에서도 좀 더 편안해졌다. 예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자주 싸우던 오빠의 좋은 면, 힘든 순간도 보이고, 오빠와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따뜻하고 애틋한 시선도 느껴지고, 예전엔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부모님의 사랑도 좀 더 예민하게 느끼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좀 더 용기를 내서 숙주 없이도 자생하는 데서 벗어나 누군가의 숙주가 되어주는 경험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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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의미에서, 멘티 구합니다. 워킹맘이라 시공간적 제약이 있어서 온라인을 병행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성별은 상관없지만, 여자분을 선호합니다(해온 고민이 비슷할 수 있으니). 댓글 남겨주시면 메일 드릴게요. ^^

이런데 아무도 안 남겨 주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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