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틀을 벗어나서.

신앙과 도그마를 넘어선 인간적 위안의 가치

by 오전 세시

인간은 누구나 삶의 무게 앞에서 때때로 깊은 위안을 갈망한다. 예측 불가능한 현실의 파고 속에서 마음을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찾고,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본질적인 여정일 것이다. 오랜 역사 동안 종교는 이러한 인간적 갈망에 응답하며, 신앙과 교리라는 체계 안에서 삶의 지침과 심오한 위로를 제공해왔다. 그것은 때로 흔들리는 개인을 붙잡아주는 굳건한 기둥이었으며,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헌데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인간이 느끼는 깊은 위안과 삶의 의미는 반드시 특정 신앙 체계나 확립된 도그마의 틀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틀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안에서 충분한 답을 찾지 못하는 이들은 어디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하는가? 어쩌면 신앙과 교리를 넘어선, 보다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위안의 가치가 존재하지는 않을까?


이러한 논의는 종교가 인간 사회와 개인의 삶에 기여해 온 고유한 역할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과 도그마라는 특정 틀을 벗어나서도 우리가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적 위안의 형태와 그 본질적 가치에 주목하려는 시도이다. 때로는 장엄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 속에서, 때로는 예술이 선사하는 깊은 정서적 울림 속에서, 혹은 따뜻한 인간적 교감과 냉철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삶의 고단함을 달래고 그 의미를 스스로 구성해 나갈 수 있을까.




신앙과 도그마의 틀을 벗어나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인간적 위안의 첫 번째 길은, 어쩌면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자연과 예술의 세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들은 특정한 믿음이나 규율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감각과 정신을 일상의 협소한 경계로부터 한 단계 끌어올려, 때로는 종교적 경험에 비견될 만한 초월적 감동과 평온함을 선사한다.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닌 미적 감수성과 깊은 정서적 교감 능력에 기반한 위안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광활한 대자연 앞에 섰을 때, 인간은 종종 언어 이전의 언어로 말하는 거대한 질서와 생명력에 압도당한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의 침묵 속에서 우주의 무한함을 감지하거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숲의 정적 속에서 생명의 숨결을 느끼거나, 혹은 쉼 없이 변화하는 바다의 장엄함 앞에서 자연의 순환을 목도할 때, 개인의 작은 번뇌와 고뇌는 잠시 그 무게를 잃고 보다 근원적인 존재의 리듬과 연결되는 듯한 경이로운 체험을 안겨준다. 이러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은 우리 자신이 거대한 세계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며, 그 광대함 속에서 역설적인 안정감과 소속감, 나아가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어떤 특정 교리나 해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열린 감각으로 자연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주어지는 순수한 위안이다. 마치 종교적 경외감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어떤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세계와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초월의 경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 또한 이와 유사한, 그러나 인간 정신의 창조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초월적 위안을 제공한다. 한 편의 시가 응축된 언어로 삶의 진실을 꿰뚫을 때, 한 곡의 음악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파고를 일으켜 내면 깊숙한 곳을 어루만질 때, 또는 한 폭의 그림이 침묵 속에서 강렬한 메시지와 아름다움을 전달하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때, 우리는 논리적 이해를 넘어선 깊은 공감과 정서적 해방을 경험한다. 예술가의 고뇌와 통찰, 희열과 슬픔이 녹아든 작품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게 만들며, '나'라는 개인의 경계를 넘어 더 큰 이야기와 인류 보편의 정서에 접속되는 듯한 감동을 준다. 이러한 예술적 체험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정신적 고양감은, 특정 신념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 존재의 깊이와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성찰하게 함으로써 그 자체로 숭고한 위안의 가치를 지닌다. 이렇듯 예술은 신앙의 매개 없이도 우리를 일상의 경계 너머로 이끌어, 삶의 본질적인 측면과 대면하게 하는 초월적 통로가 되어준다.


이 글에서 자연과 예술이 마치 심오한 철학적 성찰을 동반하거나, 소위 '고급문화'의 범주에 속해야만 그러한 초월적 위안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위안의 진정한 힘은 때로 지극히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예컨대, 방 안 침대에 누워 에어팟을 끼고 듣는 최신 아이돌의 음악이라던가, 온몸으로 함성을 내지르며 현실의 규율을 잠시 잊게 만드는 락 페스티벌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우리는 분명 일상의 무게를 벗어던지는 해방감과 순수한 몰입이 주는 기쁨을 경험한다. 이러한 순간의 음악들은 복잡한 분석이나 고상한 미학적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우리를 충실하게 만들며, 익숙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활력과 즐거움, 혹은 깊은 감정적 공감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뿐이다. 그것이 때로는 정제된 슬픔의 위로일 수도, 때로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분출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위안을 얻는 자연 또한 반드시 히말라야의 설산이나 아마존의 밀림처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적이고 장엄한 풍경일 필요는 없다. 매일 아침 창문을 통해 마주하는 동네 뒷산의 푸르름, 출퇴근길에 문득 발견하는 길가 작은 꽃 한 송이, 혹은 주말 오후 공원 벤치에 앉아 느끼는 한 줄기 바람과 햇살 속에서도 우리는 문득 번잡한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존재 자체의 평온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이러한 소박한 자연과의 일상적 접촉은 거창한 깨달음이나 철학적 사유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메마른 우리의 감성을 부드럽게 적시고 소진된 에너지를 조용히 충전하며, 잠시나마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조화롭게 연결되는 감각, 즉 살아있음의 기쁨을 선사한다.


자연과 예술이 주는 초월적 위안의 본질은 그 대상의 객관적 가치나 사회적으로 규정된 심오함의 깊이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가 얼마나 자신을 열고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며 개인적인 의미와 감동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구성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미술관에 걸린 대가의 작품이 주는 장중한 울림이든, 휴대폰 화면 속 짧은 영상이 주는 소소한 웃음과 감동이든,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우리를 잠시나마 일상의 굴레와 자기 안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삶의 또 다른 측면과 가능성을 느끼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앞으로 나아갈 작은 힘이라도 얻게 한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러한 순간들이야말로 신앙이나 도그마 없이도 우리가 경험하는 소중한 '초월'의 순간들이며, 인간적인 위안의 진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 예술이 우리 내면의 감성과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때로는 일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위안을 선사한다면, 인간이기에 근원적으로 갈망하는 또 다른 위안의 축은 바로 타인과의 따뜻한 연결,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주는 연대의 감각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로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삶의 안정과 의미를 찾으려는 깊은 욕구를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이들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 서로의 기쁨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슬픔을 기꺼이 나누어 짊어지려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며 깊은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 사랑하는 이의 변함없는 지지, 가족이라는 익숙한 울타리가 주는 무조건적인 평온함은 때로는 어떤 화려한 위로나 추상적인 교리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삶의 예상치 못한 풍파와 시련을 헤쳐나갈 실질적인 용기를 준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깊은 수용과 이해, 그리고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인간적 교감은 특정 신념 체계를 공유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향한 인간적인 관심과 애정, 그리고 공감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순수한 위안이다.


개인의 친밀한 관계를 넘어, 우리가 다양한 형태로 소속감을 느끼는 크고 작은 공동체 또한 중요한 위안의 원천이 된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거나 유사한 경험을 나눈 이들과 함께할 때, 개인은 단순한 개인들의 합 이상의 시너지를 경험하며 고립감에서 벗어나 더 큰 힘의 일부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지역 사회의 작은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으는 모습이나, 공동의 목표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동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끈끈한 동지애, 혹은 공통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보듬고 지지하는 모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신앙이나 도그마의 개입 없이도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훌륭한 버팀목이자 희망의 근거가 되어줄 수 있는지를 목격한다. 이러한 연대의 경험은 '우리'라는 확장된 자아 감각을 통해 개인의 취약성과 불안을 희석시키고, 공동의 선이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와 역동적인 희망을 발견하게 하며, 이는 종종 개인의 실존적 고독감을 넘어서는 강력하고도 현실적인 위로로 작용한다.


자연과 예술이 감성을 통해, 그리고 인간적 연결과 공동체가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풍요로운 위안을 제공한다면, 인간 내면의 더 깊은 차원에서는 이성과 성찰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힘이 작동하여 삶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구성하고 견고한 정신적 평화를 쌓아 올리도록 이끈다. 이는 외부의 조건이나 특정 신념 체계에 온전히 의존하지 않고, 인간 고유의 지적 능력과 자기 인식 능력을 통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삶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설정해 나가는 내밀하면서도 능동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종종 우리에게 외부 세계가 줄 수 없는 근원적인 안정감과 자기 확신을 선사한다.


이성의 빛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복잡한 현상들과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을 열어준다. 과학적 탐구나 철학적 사유, 역사적 통찰은 때로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무지에서 비롯되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혼란을 줄이고, 현상 이면의 질서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서 오는 지적 안정감을 선사한다. 또한, 비판적 사고는 외부의 권위나 맹목적인 믿음, 혹은 대중의 일시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여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의 토대가 된다. 이는 불확실성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의 혼란 없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하는 내적 힘으로 이어진다.


이성과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성찰의 과정은 흩어진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과 삶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명상이나 일기 쓰기, 조용한 자기 대화와 같은 개인적인 성찰의 시간은 외부 세계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며, 때로는 억눌렸던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이러한 자기 이해의 과정은 때로 고통스러울 수 있는 자기 직면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적 갈등을 줄이고 진정한 자기 수용과 내적 조화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며, 이는 그 어떤 외부적 위로나 칭찬보다 근원적이고 지속적인 평온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성과 성찰은 우리가 삶의 의미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외부에서 주어진 것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주체임을 깨닫게 한다. 어떤 초월적 존재나 운명이 미리 정해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숙고하고 선택한 가치와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그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다하는 삶 자체가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자기 효능감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주인의식을 심어주며, 이렇게 주체적으로 구축된 내면의 질서와 의미는 예측 불가능한 삶의 변화와 도전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정신적 지지대가 되어, 외부의 위안에만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이고 성숙한 형태의 위안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신앙과 도그마라는 특정 틀을 넘어서도 인간은 이처럼 다채로운 경로를 통해 깊은 내면적 위안을 얻고 삶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구성해 나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장엄한 자연과의 교감이나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예술적 체험은 일상의 번뇌를 잠시 잊게 하고 때로는 개인적 실존의 경계를 넘어서는 듯한 초월적 감동을 선사하며, 타인과의 따뜻한 인간적 연결과 공동체의 끈끈한 연대는 실존적 고독감을 어루만지고 소속감과 상호 지지라는 든든한 안전망을 제공한다.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향한 깊은 성찰과 냉철한 이성의 힘은, 우리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외부 세계의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신적 평화를 구축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굳건한 토대가 되어준다.


이처럼 인간적 위안의 원천은 결코 단일하거나 배타적인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그리고 인간 정신의 다양한 활동과 관계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가능성이며, 각자의 경험과 성향,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모습과 깊이를 달리하며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신념의 유무를 떠나, 모든 인간이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의 어려움과 마주하고 그 속에서 의미와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풍부한 내재적 힘과 자원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시사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해답을 강요하거나 하나의 길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협소한 태도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처럼 다양한 위안의 길들을 열린 마음으로 존중하고,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진실되고 지속 가능한 평화와 의미를 발견하며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포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신앙과 도그마를 넘어선 인간적 위안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삶 속에 통합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지혜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로 소중한 인간 정신의 다양성을 온전히 긍정하며, 더 나아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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