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틀을 깨고
이해의 다리를 놓다

소통의 부재가 초래하는 갈등과 대립, 이해와 오해의 경계

by 오전 세시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을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쉽게 오해한다. 서로의 말과 행동은 종종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이로 인해 갈등과 상처가 생겨난다. 이해는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입장과 맥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복잡한 내면과 상황을 충분히 들여다보기 전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상대를 '이상한 사람' 혹은 '나쁜 사람'으로 단정짓곤 한다. 이해와 오해의 경계는 그렇게 좁고도 불안정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 경계를 넘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해는 대부분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과 틀로 재단하려는 순간 발생한다. 우리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볼 때, 그 사람이 처한 맥락이나 감정 상태를 깊이 들여다보는 대신, 자신이 가진 경험과 가치관으로 그 의미를 해석하려 한다. 이렇게 해석된 타인의 모습은 종종 상대의 실제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무뚝뚝한 말투를 그 사람이 차갑고 이기적인 성격으로 단정지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그날 기분이 안 좋거나 말을 간결히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오해는 단지 대화의 어긋남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편견과 선입견도 오해의 강력한 원인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나 과거 경험에 의해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를 특정 틀에 가두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진심은 왜곡되고, 갈등은 깊어진다. 결국, 오해는 타인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는 이기적인 시도에서 비롯된다. 이해와 오해의 경계는 바로 이 틀을 얼마나 초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해란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상대방의 입장과 맥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경험, 가치관,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같은 말과 행동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그가 가진 고유한 맥락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해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때로는 상대의 감정과 입장을 알아차리기 위해 반복적인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며, 자신의 선입견과 틀을 깨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할 때 우리는 오해의 가능성을 줄이고 진정한 공감에 다가설 수 있다. 예를 들어, 무뚝뚝한 사람을 단순히 냉정하다고 여기는 대신, 그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런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헤아린다면, 그 사람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해는 타인에게 다가서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단지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맥락을 함께 살아가는 시도다. 이해와 오해의 경계는, 결국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벽을 얼마나 허물고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결국, 이해와 오해의 경계는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타인을 자신의 틀로 재단하며 쉽게 오해하고, 때로는 그 오해를 진실로 착각하며 관계를 망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이해는 타인의 고유한 맥락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기준을 내려놓는 겸손한 노력에서 시작된다.


물론,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갈등을 줄이고 공감을 넓히며, 관계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다. 이해하려는 의지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이는 우리 삶의 관계 속에서 필수적인 덕목이다. 이해와 오해의 경계는 언제나 아슬아슬하지만, 그 경계를 넘으려는 우리의 작은 노력은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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