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by 박아담

우리는 연애 때나 부부가 된 지금이나 기념일을 크게 챙기지 않는다. 백일, 이백일 이런 날들은 지나쳤고, 1년 단위나 생일 정도의 굵직한 기념일을 챙겼다. 그 정도는 되어야 기념할만하다고 서로 생각한 것 같다. 빼빼로데이, 밸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뭔 놈에 데이가 많은지 그래도 그런 데이에 편의점마다 쌓여있는 빼빼로, 초콜릿, 사탕을 보노라면 조금 귀엽다고 할까. 상술인 게 뻔히 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라는 통속적인 마케팅이 어쩌면 스치는 일상에 핑계가 되진 않을까, 하는 말랑한 생각을 했다. 하루는 저녁 늦게까지도 밸렌타인데이인지 몰랐다. 장을 보러 마트를 가자니 초콜릿이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고 알았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어 대충 초콜릿, 사탕 꾸러미를 샀다. 집에 있는 귀여운 지퍼백에 고스란히 담아 쪽지를 적어 책상에 올려두었다. 만들고 나니 너무 허접해서 하지 말까, 싶었다. 그래도 이왕 샀으니까! 남편이 와서 초콜릿과 쪽지를 보면서 깔깔깔 웃었고 나는 귀엽지 않냐며 생색을 냈다. 너무 소소해서 이벤트라 하기도 뭐하지만 그 작은 초콜릿으로 우리는 같이 웃었다.

일주일이 더 지난 다음, 남편 방을 청소하려고 들어갔다가 책상에 초콜릿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몇 개 까먹었네- 그런데 쪽지가 사라졌다. 이 양반이 쪽지를 버린 것인가! 씩씩 대려던 참에 거울 꼭대기에 얌전히 붙어져 있는 쪽지를 보았다. 혼자 있는 방안에서 깔깔깔 하고 웃어버렸다. 거울 한 가득 쪽지로 가득 채워주고 싶은 귀여운 마음이 차올랐다. 별게 아닌 게 별게 되었다. 태초의 선물은 직접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현대에서 그런 선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핸드메이드라고 해도 사실 재생산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선물'이라는 근원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혹은 '구매'했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선물할 때 카드를 쓴다고 한다. 어쩌면 태초의 선물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말'이지 않을까. 그 말이 전하는 것은 마음일테고. 선물 같은 말을 자주 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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