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글 좀 읽을까, 싶어 밀리의 서재를 들어갔다. 별생각 없이 쉽게 클릭하게 됐고, 단숨에 절반을 통으로 읽어버렸다.
낯선 문체라 반감이 들기도 하다가, 오히려 정확한 어휘로 서술해 나가는 것이 사랑이든 사람이든 '본질'을 관철해 나가는 구와 담의 서사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발췌 -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 말도 안 돼,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일에야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버릴 수 없어서, 돌돌 말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여덟 살을 기억하지 못했고 구 역시 그랬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향해 '너'라고 무른 그 순간만큼은 구도 나도 명징하게 기억했다.
꼭 껴안고서 손바닥으로 서로의 등을 살살 문지르면서, 우리 머리와 어깨와 손가락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이러다 어떤 전설처럼 우리 몸도 증발되어 스르륵 사라질 것 같지 않아? 그런 전설이 있어? 없나? 없으면 우리가 하나 만들지 뭐. 그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물은 금세 식고 우리는 빨리 추워졌다.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일이 싫은 건 아닌데 다 덮어놓고 일만 하는 건 싫어. 영영 그렇게 사는 건 싫어.
그 시절, 내 손을 꼭 쥐고 나의 방향을 가늠해 주던 구의 손과 팔. 그것을 뜯어먹으며 나는 절반쯤 미쳤다. 완전히 미치지는 않기 위해 나를 때리며 먹었다. 내 볼을 눈을 내 사지를 때렸다.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똑똑히 보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몸에도 마음에도 그것이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마음에는 비슷한 공간이 만들어졌고, 떨어져 있을 때에도 그것은 같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나의 미래는 오래전에 개봉한 맥주였다. 향과 알코올과 탄산이 다 날아간 미적지근한 그 병에 뚜껑만 다시 닫아놓고서 남에게나 나에게나 새것이라고 우겨대는 것 같았다. 영영 이렇게 살게 될까 봐 겁이 난다고, 담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원망하지도 않지만 이해하지도 않는 선. 그 선을 지키는 것이 내가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새 겨울이 다 지나고, 봄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이미 여름도 절반이니까.
누나가 알고 있는 내 처지나 누나가 짐작할 수 있던 내 미래가 아니라, 누나가 모르는 '어떤 것'이 누나를 지치고 단념하게 했을 것이다.
헷갈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다해서. 내게 줄 마음을 다 줘버려서. 더는 내가 생생한 생물 같지 않아서.
호명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병명을 알게 되자마자 병은 금세 깊어졌다.
근데, 그런 걸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나, 이모.
지나가지 못하고 고이는데. 고유하게 거기 고여 있는데.
나만 살아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먹지 않고 구와 함께 동동 유리 돛단배가 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그 고요와 암흑에 담겨서, 인간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아름다운 은하를 구경할 수 있을 텐데.
어머니의 머리와 어깨에도 먼지가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이모를 갖는 것으로 나는 내 인생의 행운은 다 써버린 거다.
속에서 단단한 주먹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그걸 다시 집어삼키려니 혀뿌리와 목구멍이 얼얼하게 아팠다.
구의 손에 들린 검은 봉지만이 뱅글뱅글 움직이며 그 골목에 현실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고요하고 아담한 날들이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청설모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서, 구가 말했다.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나를 먹을 거라는 그 말이 전혀 끔찍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저들에게 잡혔으니 이제 곧 먹히겠구나 생각했을 수도 있고.
구는 나에게 노마의 꿈을 나눠주었다.
허기 때문이 아니라도 먹었을 것이다. 그의 손이 탐나서. 그의 발이 탐나서 그의 머리, 그의 얼굴, 그의 성기가 탐나서. 지극히 존경해도 먹었을 것이고 위대해도 먹었을 것이다. 사랑해도, 먹었을 것이다.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겉치레 인사 말고, 너의 고유한 표정과 감정을 갖고 싶었다.
곡물을 체에 거르면 크고 무거운 것은 남고 작고 가벼운 것은 걸러지듯, 몸을 버리고 가벼워진 혼끼리 따로 모이는 우주가 있을 거라고.
고독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야 죽었다고 사라지진 않을 테지만, 물질에 가까운 욕심이나 이기심에서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시간은 상대적이라던데, 이승의 백 년이 저승에서는 열흘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서 열흘만 기다리면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언어나 불을 쓰지 못하던 시대에 '먹는' 행위는 굉장히 위험한 행위였을 것이다. 산짐승과의 혈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먹어서 죽어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먹는' 행위는 지금처럼 단순히 배를 불리는 행위가 아니라 극도로 예민하고 위험한 행위이었을 테고, 확실한 신뢰가 있지 않은 이상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당신을 신뢰해요,라고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외부’의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만지는 것보다 그것이 실재하다고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먹는 행위이지 않을까. 그 연장선으로 담이 죽은 구의 몸을 어찌하지 못하고 먹기를 택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가까운 이를 화장해 본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고작 한 움큼의 잿빛 가루가 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몸은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몸인데, 숨이 사라졌다고 그 몸이 그 사람이 아닌 걸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고유한 것은 몸이 아니고, 숨인 걸까. 이런 나의 공상에 담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숨이 없는 구의 몸도 구,라고. 아마 구도 똑같이 답했을 것이고, 담이 먼저 죽었다면 구도 똑같이 담의 몸을 뜯어먹었을 것이다. 천년, 만만 년이 지나 지구도 인간도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구와 담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상태로 유리 돛단배가 되어 광활한 은하를 구경하는, 고요하고 아담한 일상을 보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