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땡, 엄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by 박아담

회사에 신입이 들어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나만큼 인수인계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자료를 주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업무가 전혀 인계되지 않는 듯한 답답함에 신입을 대하는 내 말투도 날이 서곤 했다. 10살은 어린 신입에게 답답해하는 내가 못 견디게 답답해서, 간밤에 잠을 뒤척였다. 나는 왜 어른스럽지 못할까, 좋은 어른처럼 항상 여유 있고 유쾌하고 매너 있게 대할 수는 없을까. 온갖 생각에 마음이 찜찜했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가 다음 공공근로 신청서를 작성하는 걸 도와달라고 점심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왔다. 밥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이런 내 불편한 마음을 한 껏 쏟아냈다. 그러자 엄마는 단박에 우리 딸도 그래? 엄마도 공공근로하는 공원에 다른 아줌마가 일을 너무 못해서 속이 터져!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는 맞장구를 치면서 밥을 다 먹었다. 택시 타고 가라고 해도 엄마는 버스 타고 간다면서 한사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엄마가 또 말했다. 엄마는 그래도 그래~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일은 못하더라고~ 50살 먹은 그 아줌마가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그러면 엄마는 그냥 그래 쉬어 쉬어~ 해버려. 그리고 엄마는 한창 낙엽 청소 때문에 바쁜 시기에 나무 밑의 낙엽은 거름 되라고 두고 사람 다니는 데만 얼렁 치워버린다고 했다.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엄마를 태워 보내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면서 찜찜하고 불편했던 마음이 꽤나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는 참, 성격이 좋다. 자기가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냥 말아버린다. 그러라고 내버려둔다. 그러곤 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엄만, 끈기가 정말 최고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최고인 것 같다. 곧 칠십이 되는 엄마는 평생 미싱 일을 했다. 미싱처럼 두껍게 일했다. 새로운 일감도 잡지 않고 한번 잡은 일감은 최소 10년은 해 먹었다. 새로운 일을 배우면 그만큼 배워야 하고, 손에 익힐 동안 일을 많이 할 수 없으니 벌이도 일정치 않다면서 하던 것만 주구장창 했다. 일이 익숙해질수록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그러면 그만큼이 다 돈이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을 적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말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일하고 또 일하고 코끝에서 피가 와르르 쏟아지도록 고개를 숙여 시다를 하고, 남편이나 자식들은 모두 잠을 자는 깊은 밤에도 부엌 한 구석에서 고개를 꾸벅, 떨구면서 실밥을 떼고, 엄마가 앉아있는 미싱이 엄마까지 미싱이 된 것처럼, 댕댕거리는 미싱소리가 마치 엄마의 심장소리인 것처럼 그렇게나 일을 했는데, 그랬는데 말이다. 칠십이 다 돼서도, 공공근로가 돼야 할 텐데 맘 졸이다가 되면 어디 당선된 것처럼 기뻐하고, 또 열평짜리 임대아파트만 되면 만고땡이라는, 겨우 그러겠다고. 엄마는 대체 뭘 잘못한 걸까. 죽어라 일만 했는데, 그렇게나 미련하게 일만 했는데. 자기는 이제 열평짜리 임대아파트면 만고땡이라면서 우리 딸은 이제 남편이랑 부지런히 돈 모아서 서울에 30평짜리 아파트 하나 마련하면 좋겠다고, 투명하게 소망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고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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