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참 못할 일이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다가 사랑이 아니라서 변했나,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은 두 가지의 형태로 고장 난다. 여기까지는 넘어오면 안 돼!라고 밀어내는 장력 에너지가 난사되거나 밑 빠진 독처럼 자꾸자꾸 갈증이 나거나. 남편은 전자였고, 나는 후자였다. 고장 난 사람 둘이 만나서 부부가 되었다.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생활이 되기로 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게 치명적인 약점이라 할지라도. 그는 어머니 없이, 나는 아빠 없이 자라왔다. 이렇게 비슷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서로를 애틋해하기도 했다. 나는 아빠와 산 날보다 같이 안 산 날이 한참 오래되었는데, 막상 결혼할 때가 되니 결혼식에서 아빠의 역할이 너무 중요했다. 괜한 심술이 나서 신부 입장은 물론이거니와 결혼식도 오지 말라 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다. 정말 꼬장꼬장한 복수심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빠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을 만큼 냉정하진 못했다. 다만, 그동안 힘들게 키워준 엄마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엄마와 신부 입장을 하고 싶었다. 이혼 가정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도 들었으니까. 물론, 아빠에 대한 일말의 복수심도 있었다. 엄마와 신부 입장에 대해서 그에게 얘기했더니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일부러 상처 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러지 말라고. 복수심은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간파당해 버렸다. 그래, 고모도 오실 테고 뒤끝이 긴 아빠라면 속상한 마음을 아주 오래오래 지니고 있을 테지. 어쩌면 생의 마지막까지도. 그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엄마와의 신부 입장은 리스트에서 삭제됐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빠와 신부 입장을 하는 건 홀로 혼주석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엄마가 눈에 밟혀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상견례에서도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아빠가 시아버님과 술잔을 비우면서 나를 다 아는 척 큰 소리를 냈다. 폭삭 늙어버린 아빠를 낯설어하는 나를 전혀 모르면서. 아빠는 사돈과 사위가 혹시나 자신이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책망할까 봐 자신이 얼마나 나를 예뻐했는지 고해성사하듯이 말을 쉬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가 정리될 무렵 아빠는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하나를 꺼냈다. 내 사진이었다. 엄마, 아빠가 제일 예뻤다고 했던 6살쯤의 나. 다 낡은 사진 뒤에는 ‘우리 딸’이라고 아빠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아빠는 그 사진을 사위에게 거의 하사하다시피 했다. 예비사위는 꽤나 감동받은 것 같았다. 아버님도 자식에 대한 아빠의 마음을 느끼신 것 같았다. 아빠의 작전이 먹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감동받지 않았다. 입술이 삐쭉하고 나올 뿐이었다. 아빠의 너스레 속에 종종거리는 마음도 느껴졌지만 꼴 보기 싫었다. 진작에 아빠와 연을 끊었어야 했는데,라며 나쁜 마음들이 왔다 갔다. 맞은편에 앉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의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난 마음을 그에게 몽땅 들킨 것만 같았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내게 그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사진을 보며 눈이 지금하고 좀 다른 가아~? 하며 다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옆에 계시던 아버님이 원래 커서 쌍꺼풀 생기는 사람도 많다며, 며느리 눈이 제일 예쁘다며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재밌어 죽겠다는 그를 보고 어이없어 웃어버렸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내 속은 전쟁터였는데. 어쩌면 남자친구와 남편의 차이는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면 결혼할만하지 않을까?